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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무책임 국가와 전가되는 고통

무책임 국가와 전가되는 고통(대구신문 2015. 6. 22)

 

이시훈(본색소사이어티 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 박사과정)

 

 

며칠 길거리와 지하철, 사이버스페이스 등에서 재미난 현상 한 가지를 포착했다. 하나의 이슈가 있을 때, 오프라인과 온라인 여론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 경우들이 있다. 그것도 오프라인 공간이 대구라면 대개의 경우 온라인 여론과 오프라인 여론의 차이는 더욱 대조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근래 온오프라인에서 들리는 하나의 탄식은 대개 국가의 무능에 대한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사실 이 땅의 역사에서 국가의 무능은 비단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몽골이나 일본, 여진의 침략에 가장 앞장서서 몽진을 감행한 조선 왕조의 왕실이나 한강 사수를 외치면서 동시에 한강 다리를 끊고 대전으로 도망간 초대 대통령의 이야기는 그저 이 오래된 무능과 무책임의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민주화 이후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 요컨대 외환위기와 카드 위기, 금융위기, 양극화와 상대적 빈곤의 심화, 청년실업과 등록금 문제, 부동산과 주거 문제, 사립학교 문제 등 한국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이 책임 있게 해결된 기억이 있는지 되짚어보자. 비록 이런 사회경제적 문제와 모순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진전도 보여주지 못하는 현재는 무능과 무책임의 역사가 그렇게 예전의 역사만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무능 혹은 무책임의 역사의 한 편에는 고통과 부담, 재난을 사회의 가장 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전가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땅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민주공화국을 구현하고 있는 제 6공화국에서도 이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에 들어 이런 역사는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바로 이 질적 변화가 일반적 시각에서 그다지 긍정적으로 여길 수 없는 변화라는 점이다. 세월호에서 메르스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서 국민은 더 이상 국가의 공공 안전, 공공 보건에 대한 신뢰를 나날이 잃어가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삶과 생명의 보호라는 당위를 최소한의 역할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비단 오래된 사회계약론과 같은 이론들 혹은 제헌헌법이나 제 6공화국 헌법의 전문을 인용해 논증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명한 당위다. 하지만 현 정부에 들어 이 당위가 흔들리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안전 강조를 위해 안전행정부로 개칭되고, 국민안전처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세월호에 탑승한 이들은 승무원의 도주와 국가의 책임 방기의 결과 전 국민이 바라보는 생중계 화면 속에서 죽어가야 했고, 메르스는 온갖 질병과 아픔을 안고 병원에 기대어 있던 노인들, 응급실에서 입원 병실이 나길 애타게 기다리던 환자와 보호자들을 덮쳤다.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들을 되짚어 보자, 일부는 건강한 상태에서 감염만으로 명을 달리한 것으로 의심되지만 대부분은 병원을 떠돌아다니며 그들의 만성질환을 다스리는 노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높은 확률로 의료와 주거, 노후 생활 전반에서 경제적 부담과 고통을 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집단에 속해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적인원 1만명에 가까운 자가격리자 다수는 자산 소득 없이 직장에서의 노동소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개중에는 하루 벌어 삶을 연명하는 이들도 많다.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대부분이 살던 안산 단원구는 안산의 대표적 공장 노동자 밀집 주거지역이다. 고통은 그렇게 가장 평범하고 약한 이들에게 전가된다.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 고통과 부담의 전가는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하고 힘든 이들부터 서서히 삶과 생명을 향유할 권리를 박탈해간다. 그렇기에 국가의 정치와 행정에겐 높은 수준의 권력과 동시에 책임이 부과되는 것이다. 메르스는 분명히 머지않아 안정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메르스 사태(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해결 과정에서 드러난 신뢰 할 수 없는 정부, 정보와 선택의 불투명성, 무책임과 불안정과 같은 것들에 있다. 권력은 그들이 책임져야할 이들을 위해 작동하기 보다는 자기 권력의 안정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메르스 첫 번째 대책은 괴담과 유언비어 유포의 처벌이었고, 잠재적 경쟁자들이 취한 다른 대책을 폄훼하며,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거대 병원의 이익을 옹호하는 선택을 했다. 또한 이번 국민일보 보도 통제 시도에서 보이듯이 정보와 언론의 문제에 있어 불투명성이 증대하며 그렇지 않아도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악화시키고 있다. 세월호에서 메르스로 이어지는 이 비극의 연속에서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무책임과 전가의 역사를 끊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