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잡지 외줄산책(2017)에 실렸던 글이 대학연구네트워크(http://renetuniv.tistory.com/31)과 한국대학학회의 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2018년 1월호(통권 5호)에 수록되었다. 이에 그간 블로그에 안 올렸던 이 글을 아카이브 목적으로 블로그에 게재한다. 해당 글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대학연구네트워크를 통해 배포되었다. 해당 규정을 위배한 경우 민형사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만들어진 2부 리그




이시훈[각주:1]

 



 

0.

지금 대학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죽어가고 있다대학에는 배움과 탐구인간 본원의 자유와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사라졌다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거대한 사회적 열정과 의지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한때 해방구이자 자유과 민주의 요람혁명의 산파였던 대학은 이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정되고 좋은 자리에 학생들을 내보기 위한 욕망과 생존의 문법에 포획당했다불안정하고 유동하는 사회에서 과거와 같이 대학의 존재는 어떤 견고한 지지판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지금의 대학은 거대한 생존의 공간이다우리가 가진 전통적 관념으로 대학은 사라진 채 받아쓰기 기술자와 밤샘 기술자문제풀이 기술자만이 자라나는 학습소만 남았다대학의 가치와 존재 이유소명은 이제 수월성과 돈성과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우리가 알던 대학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신과 신앙의 세계에서 인간 스스로의 이성과 오성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규명하려던 중세 대학의 몰락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대학은 다시 호출된다그렇게 재건된 대학의 존재는 국가 체제 내에서 지배 엘리트와 중간층의 생산과 교육이라는 핵심적 역할을 소화하며 국가기구와 비슷한 제도적 지위를 가지면서도 상당한 자율성과 정치적사회적 자유를 향유하는 특권적 제도이자 공간으로 기능했다이런 근대 대학의 존재는 제3세계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반독재 체제의 근거지였으며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탈물질주의-탈권위주의반전 등의 운동과 새로운 문화적 양식을 낳는 산실이었다.

 

그런 빛나던 과거는 어느새 스스로에 대한 부정과 회의자조로 바뀌고 있다자기 전공에 대한 공부는 해당 전공이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보다는 취업에 더 유리한 전공 여부와 가장 기본 스펙인 학점을 위한 것이고그나마도 인문사회 계열은 그 학점조차도 학점 인플레’ ‘문돌이’ 등으로 폄훼당하며 불신받고 있다살인적인 등록금과 생활비는 이 생활 자체를 영위하고 이어가기 위한 불안정 노동을 요구하고 강제하고 있으며장학금은 어느새 학문과 배움에 대한 장려가 아닌 우수 학생들을 유치/유지하기 위한 대학의 생존 전략으로 전락했다삶과 세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질문과 상상이 상실된 대학에 남은 것은 거대한 먹고사니즘과 생존주의의 논리다학생부터 교수와 교직원대학 제도 전반에 서려 있는 논리는 어떤 의미로 가장 퇴락한 현실주의에 다름아니다이 퇴락한 현실주의는 꿈과 희망상상력과 열정의 안온한 보호구역이던 대학을 죽였다꿈과 이상은 경멸당했으며열정은 어느새 자본의 착취와 탈취를 포장하는 옷감이 되었다이런 현실에서 아직 대학에 남아 있는 오래된 아카데미즘의 망령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고 반발하고 저항하며 자유롭고 살아 있는 대학을 말하지만 이 죽음의 추세를 되돌리기엔 중과부적이다대학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향하여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죽음의 속도가 무척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사멸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의 존재는 우리에게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의 흐름은 누군가에게 지연되고 유보되는 데 비해 누군가에겐 그 죽음의 속도는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다마치 하나의 차원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양자는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른 몇 개의 차원을 사이에 둔 듯하다본질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하지만 왜 죽음을 향하는 시간의 속도가 상대성을 가지는지는 분명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다정녕 그들은 다른 시간의 차원 속에 놓여 있는 것일까?



1.

해방 이후에서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는 군부와 학생그중에서도 대학생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적인 교육과 기술의식사고인식을 얻은 집단이었다대학은 민립대학 운동자강운동근대적 국민국가민주국가 만들기를 위한 담론과 실천의 요람이었다. 60년 4월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연 역사의 길을 그들의 후예들은 묵묵히 걸었고, 80년 5월을 거쳐 체제에 대한 변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온몸으로 받아냈다하지만 그들은 이런 급진적인 운동을 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근대적인 사고와 인식이 자라나는 뿌리였으며한국의 독특한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를 지탱하는 기술관료와 기업의 중간 관리자기술자층의 근간이었다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이론과 담론의 수용자였고 이를 확산하는 계몽적 역할을 수행했다이런 대학생들의 역할과 실천 속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운동들이 자라났다만약 한국에서 대학의 존재의미와 기반이 허술했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금 우리가 겪는 시공간과 다른 곳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대학과 그곳을 거치는 이들이 군의 근대성과 경합하며 국가와 정부자본과 개별 기업갓 자라나기 시작한 시민사회와 여러 문화지식 하부구조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의 역사이다.

 

대학은 이 50년의 싸움에서 군이 표상하는 질서와 근대와의 경합에서 승리했지만 최종적 승리를 획득하지 못한 채 역사의 주체에서 탈각되어버렸다대학은 더 이상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열지 못하고 있으며과거 대학생의 정체성으로 역사를 열던 이들은 다른 옷을 입고 도리어 대학을 옥죄는 역할을 하고 있다대학다움대학스러움은 과거 세대의 향수 속에서만 존재하며 대학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선진적이고 전위적인 하위집단을 형성하고 있지도 못한다.

 

비록 현재의 대학과 대학생이 과거처럼 빛나는 역사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대학과 대학생이라는 주체공간제도문화와 의식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른 의미와 내용맥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대학과 대학생을 둘러싼 관계들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역학 관계와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접근은 기존의 제도 정치 중심의 접근과 차별되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2.

서울은 특별한 곳이다그곳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의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문에서 강력한 표준 권력을 행사하고이 표준에 어긋나는 것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권력을 가진 곳이다서울은 존엄한 곳이다우리는 이 서울의 존엄을 위해 서울 아닌 곳들의 일자리청년과 생명구매력을 싹 쓸어 담아 서울로 이전한다서울은 반짝반짝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서울은 아름답다.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림픽대로의 실황을 들으며 한강변의 야경과 그 체증을 연상하는 내 몸은정작 대구의 담티 고개나 부산의 대티 언덕을 넘어서고 있다서울은 찬란하다이곳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의 파라다이스, 21세기 하이 모던의 공간메트로폴리탄 그 자체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울과 지방 사이에 이런 차이가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는다오롯이 서울을 동경하고 질투하고 사랑하며 증오하는 서울앓이를 할 뿐이다.

 

서울의 빛남과 잘남화려함을 설명하는 대전제는 서울이란 땅이 지정지경학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지만은 않으며 동시에 서울 사람들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래 가장 지적으로 탁월하다든가 가장 성실하고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한강을 장악하면 한반도의 지배자가 된다고 교과서는 설파하지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입된 이런 미신과 신화당위를 걷어내고 서울과 지방 사이의 진짜 관계를 드러내는 역사적 단초를 찾는 일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196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는 신기한 클리셰가 숨어 있다이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의 핵심은 경제 성장과 공업화 단계에서 가족 전체의 풍요를 위해 누가 기회와 자원에 접근하고 누가 희생하여 이를 뒷받침하는지에 있다가난한 일족을 일으키기 위해 똑똑한 장남에게 모든 경제적사회적정신적 자원과 자산을 집중시키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그의 여형제들이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으로 가던 이런 개발 시대의 서사는 놀랍도록 서울과 지방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었다물론 여기서 실제 그 장남이 장녀 혹은 다른 누군가보다 명석하고 지적으로 뛰어난지는 불명이다가부장적 권력의 상속자로 적장자 남성이 선택받듯이 서울이 이 부()를 분배하고 배치할 권력에게 선택받은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드라마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경우는 무척 드물다하지만 누이들의 희생과 헌신양보로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둔 맏이(그가 의사이건 변호사이건 구체적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의 부와 성공이 그의 누이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이양되고 분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히려 적지 않은 집에서는 누군가의 좌절과 희생이 이에 대비되며 내부에서의 갈등을 만들었다.

 

서울 역시 그런 선택과 집중의 산물이다동시에 서울은 그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는 권력의 소재지였다한반도에 일본에서와 비슷한 근대를 구축하려 하던 식민지 총독부 권력이 서울에 있다는 것이 그 당시에 어떤 의미였을까이전의 왕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과 근대적인 행정 지배 체계의 중심으로 서울근대적인 문물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회가 가장 먼저 닿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이 어떤 의미였을까를 상상해보자.

 

이후 군부 권위주의 하에서도 서울은 영남권 해안 도시들과 더불어 불균등 성장 체제의 수혜자였다서울은 한국 대부분의 대기업들의 본사가 소재했고그들이 이 압축적인 성장기에 몸을 불리는 동안 같이 살을 찌워갔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울 아닌 곳들이 식민지에 이은 군부 반공 권위주의 발전국가 체제에서 수혜받지 못한 지역들은 우리 모두’ 더 잘 살기 위하여 향유해야 할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하고 유예 당해야 했고농산물 가격 통제나 청년 유출을 겪어야 했다한국이 OECD에 가입하고 환란을 극복해도 서울은 자신들에게 편중된 이 성공과 부를 나누려 하지 않았고도리어 지방을 타자화하고 식민화했다지방의 소매 사업은 편의점과 SSM, 대형마트백화점의 저인망식 소매 산업에 그 자리를 빼앗겼고지방의 공장들은 서울에 소재한 재벌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했다자연히 이들은 서울의 필요와 글로벌 경쟁과 지구적 생산 체인의 변화에 따라 그 생사가 나뉘어야 했다지방이 이렇게 빈궁해질수록 청년들의 탈 지방은 심화되었고이런 이중적인 내부 약탈 구조는 이제 지방의 생명마저 서울의 활기를 위해 탈취하는 구조로 나아갔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정보화금융화자동화됨에 따라 서울로의 집적과 약탈은 심화되었다한때 경북 내륙에 젖과 꿀이 흐르게 했던(낙동강을 화학물질의 바다로도 만들었다구미의 전자 산업들은 21세기에 들어 경쟁적으로 서울 근교의 천안과 평택파주용인 일대로 재배치되었다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이런 경향과 맞물려 지방의 일자리가 3, 4차 하청 공장의 단순 비숙련 노동이나 프랜차이즈란 이름으로 위장된 서울의 소매산업 지배 구조의 말단에 선 불안정 여성 노동에 대체되도록 했다지방에는 더 이상 우리가 전통적으로 인식해온 양질의 일자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자연히 지방 청년들의 소망은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에 취업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여 서울이나 지경학적 필연성으로 서울로 집적되지 않은 울산창원부산 등으로 가는 것이었다그리고 이런 경향은 도리어 지방의 노령화와 활력의 저하문화적 퇴행과 폐쇄성을 유발했다.

 

이 약탈적인 식민 구조는 그들의 희생으로 큰 장남의 자식들이 그들의 부와 영광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상대적으로 덜 세련되고 가난한 고모들의 자식을 촌스럽고 가난하다 혐오하고 경원시하는데 이르렀다지역의 사투리들은 표준어 지배 권력에 밀려 촌스러운 것으로 전락했고 유머의 소재로 전락했다모두가 그 와중에도 서울 따라잡기서울 배우기서울 흉내 내기에 급급했다한편으론 균형발전이니 분권을 말하지만 정작 지방 정부가 권능과 자원을 더 행사한다고 이 내부 식민 구조가 변화하는지는 미지수였다물론 그나마도 자신들의 부동산 가치와 미래 수익을 위해 내놓길 거부하는 이들의 반발(관습헌법의 관습이 어디서 나온지 생각하자)에 좌초하기 일쑤였다어느새 자신들을 살찌우고 번영으로 이끈 선택과 이를 위해 감내한 양보와 희생의 기억은 마멸되고 과정으로의 불균등이 아닌 그 결과의 불균등만이 의식에 남아버렸다그렇게 이 내부 식민지와 서울 제국의 구조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다.

 

 

3.

인류학자 김현경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학벌주의라 불리는 권력 현상/의식을 크게 학력주의와 연고주의서열화로 구별해 설명했다학력주의는 말 그대로 대학의 진학 및 졸업 여부를 통해 얻는 사회적인 기회와 권력 자원들의 문제를 지칭하며 오랫동안 학벌차별으로 지시되던 의식이다그러나 김현경은 이 글을 통해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졸업정원제 폐지 이후 사실상 전통적으로 학벌을 상징하던 학력주의의 위력이 감쇠하고 연고주의와 서열화의 의미가 강화됨을 지적했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대학 문제는 학력 차별과 서열화에 있었다연고주의란 것이 다양한 매개를 통해 한국 사회에 비교적 폭넓게 확산되어 있고 이에 대한 관용도 역시 큰 편이었고 지역 연고라는 더 강한 매개 고리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학력주의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학벌주의 문제는 사실상 대학을 서열화하고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를 잣대로 사람을 나누는 서열화의 문제로 대체되었다.

 

대입은 늘 전국의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웠고좋은 대학이 사실상 우선적으로 그들을 데려갈 자격을 가졌다물론 더 좋은 대학은 어떤 명시적 선언으로 규정되지 않고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학 간 다툼과 경쟁의 결과도 아니었다더 좋은 그곳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에서 결정되었다이 암묵적인 순위와 서열은 우리가 마음으로 수긍하고 따르는 순간 권력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서열화는 늘 존재했다선택에 있어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아마 인류사적인 물음일 것이다사실 학벌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특정한 잣대로 평가되고 배치되었다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늘 이를 정당화했다약육강식우승열패 등 이 서열을 정당화하는 신화들은 우리의 이데올로기 깊숙이 존재했고 작동했다교육은 한국인들의 입신양명과 출세성공이라는 가장 강력한 욕망이 투영되고 있기에 좀 더 나은 곳’, ‘좀 더 잘 될 수 있는 곳에 대한 열망과 평가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식민지와 전쟁압축적인 공업화는 늘 실력주의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전통적 지주-사대부 지배 체제의 해체 속에서 당시의 사회는 새로운 엘리트 상을 만들지 못했고이 권력의 공백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인정받는 잣대는 공부였다공부를 잘해야만 잘 살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이런 엘리트 상의 공백 속에서 정승의 아들이 하찮은 건달이 되기도 했고머슴의 아들이 고등고시를 붙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그리고 이 실력주의 신화의 핵심에 바로 공부가 있었다자연히 대학 진학률이 낮은 시대에 대학에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엘리트 후보생이자 사회적 성공을 의미했고좀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입시 결과들이 학교들을 평가하고 줄세웠다.

 

하지만 이 실력주의 신화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서열화는 시대의 주객관적 조건과 내용이 변화함에도 비판적으로 성찰되지 못한 채 퇴락한 형태로 재생산되었다이에 실력주의 신화와 서열 질서는 퇴락한 형식으로 후속 세대와 그 부모들의 욕망과 조응하고 있다과거에 대학을 가느냐 아니냐고교를 어디로 가느냐가 그랬다면 지금은 취업에 유망한 학과 혹은 취업에 선호하는 여부에 따라 대학과 학과들이 줄 세워졌다.

 

청년 세대에서 지방이 낙오와 못남실패와 탈락의 이미지를 갖는 뿌리는 이 서열화에 있다특히 외환위기로 인해 들어선 한국의 신자유주의-포스트 발전국가 체제는 노동시장을 극도로 다층화시켰고과거의 대학 졸업-좋은 일자리라는 연계 고리를 무너트렸다유연하고 불안정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서 내부 경쟁은 계속 심해졌고대학 졸업만으로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 진입이 힘들어지며 대학 간의 서열 경쟁 역시 심화되었다어느새 과거 대학이 누리던 변형된 지대효과는 서울의 일부 대학그 가운데서도 일부 학과들에만 돌아갔다.

 

이런 흐름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탈락의 피해를 감내한 것은 과거 실력주의 신화시대의 한 축인 지방의 거점 국립대와 지방 명문 사학들이었다이 대학들에서 제공하는 강의의 질이 좋으냐교수진의 역량이 어떠한가는 부차적인 것이다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계서의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그것만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주며 열등한 타자와 자신을 구별해주고 더 나은 미래에 접근할 기회와 자격을 부여해준다대학의 야구점퍼에 자신의 학교와 학과를 기재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출신 고등학교까지 기재하는 세태는 일견 연고주의적 전략 같지만사실 이는 서열화가 낳은 현상이다스스로의 존재를 비교적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증명하고 타자를 차별하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다이만큼 자명하고 간단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너와 어떻게 다른지 증명하는 방법이 있던가실력주의 신화가 만든 이 서열은 이제 노동 시장의 구조/서울과 지방의 제국-식민지 구조에 편승하여 타락한 형식으로 발현하고 있다.

 

97년 체제 아래 대학의 변화는 급격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사회 구조의 전환과 더불어 곳곳에 편재되고 우리의 맘과 의식, ‘서열 짓기가 조응한 결과다그리고 이 조응을 바로 과거의 실력주의와 공부의 신화가 지탱하고 있다우승열패의 내용은 이제 대학/비 대학에서 서울의 좋은 대학/지방대의 구조로 변화했다물론 이 조응 관계 사이에는 분절적이고 모호한 위칫값을 가진 중간 공간들이 존재한다서울에 있으나 서울 내부에서도 2등으로실패로 취급받는 그런 대학들의 이야기다하지만 이런 중간지대의 존재가 사태의 본질을 변화시키진 않는다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대학이 명문과 지잡으로 양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잡을 만들고 선언하는 서열짓기에 대한 논급이기 때문이다.



4.

재경유능재향무능의 시대에서 서울 아닌 곳에 있는 이들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까서울이 잘남과 미덕훌륭함높은 성공 가능성 등을 상징하게 되고 이로써 서울이 서울 아닌 곳들의 젊음과 활기마저 잃어가는 시대에서 무능과 못남열패의 위치에 놓인 재향 청년들에겐 몇 가지 독특한 의식의 조류가 나타나게 된다이를 살펴볼 때 크게 탈 지방”, “서울병”, “재향 나르시스트”, “혁명가라는 네 범주로 나눠 이들을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탈 지방은 실력주의 신화의 현신이다이 중에 으뜸은 역시 지방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왕 지방에 태어난 이상 고등교육을 서울로 받으러 유학 가는 것이다그렇게 서울에 가서 서울의 온갖 XX푸어들의 일원이 되는 한이 있어도 지방에 있는 것보단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다역시 희망은 지방을 떠나는 것이다거기서 잘되면 혹시라도 제주도나 강릉 같은 서울이 사랑하는 지방서울의 시선에서 조직되고 소비되는 지방에서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들 다수는 서울 사회의 활력을 공급하고 동시에 서울 제국을 재생산하고 지탱하는 존재들이다이들 가운데 간헐적으로 나오는 신화적 삶들은 말은 제주도로사람은 서울로라는 이데올로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좋은 재료들이다.

 

이에 반해 서울병의 유형은 실력주의 신화에 충실하지 못해 서울로 올라가지 못한 이들이다이들은 무척 흥미로운 범주인데이들에게선 서울 제국주의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충실한 추종과 실력주의의 불공정함에 대한 자기연민에 가까운 분노서울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 등 분열적이고 복합적인 감정과 의식이 목격된다는 것이다이들 중 탈 지방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앞서 ‘IN 서울에 성공한 훌륭한 선배들처럼 탈 지방하기를 소망한다개중에 일부는 탈 지역에 성공하지만 대개는 지역의 서비스소비 산업의 중추가 되거나 하층 공무원 집단에 편입되어 이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살아가게 된다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문제를 개별적인 지방의 낙후함과 못남의 문제로 치부하며 문제의 해결로 서울로의 탈출 혹은 서울 스타일의 수용지방의 서울화를 지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혁명가의 부류는 자기의식과 내면에서 탈 제국을 이뤄낸 이들이다이들은 적어도 서울이 만들어내고 유포하는 정상 생활의 기준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다이들은 결국 제국 바깥변두리식민지에 있으면서 이를 통해 중심부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와 모순을 직시한 이들이다결국 본질적으로 이들은 혁명가들이며 가려지고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이들이다마치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티나로서경식이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로 있음으로 그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드러내고 바꾸려 하듯이 이들은 저 제국에 편승하지 않고 지방에서 그것을 드러내고 싸우는 것을 자존으로 하는 이상한 자들이다이들은 우리 시대의 불령선인들임에도 진보좌파의 주류는 아니다진보좌파들마저도 서울병서울 중심주의중앙정치 문제에 매몰되지 않은 이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결국 이들은 마이너리티이며 고독을 견디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재향 나르시스트들은 무척 특수한 집단으로 식민지형 자기애에 사로잡힌 이들이다이들은 나르시스즘에 젖은 서울병 부류와 극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지방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삶을 택했다는 것에서 구별된다이들은 서울에 갈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권력을 따르는데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이 제국의 구조를 해체하고 폭로할 능력과 용기는 없는 이들이다대개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지적 기반이 취약하고 이론과 분석의 정합성과 엄밀함이 떨어진다이들의 근본적 이해관계는 이 모순적 구조가 유지되는 데 있으며 탈제국을 이룬 혁명가 부류와 달리 이 체제와 구조 속에서 지방 식민지가 지향하는 변화나 혁신의 흐름(사실상 서울 흉내 내기)에 편승하고 부합하여 거기서 경제적 급부와 사회적 명예를 얻는다혁신이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실질적으로 구조의 변화를 추동하고 그것을 구축할 의지와 역량이 없고 오히려 심정적으로 그것에 거부감을 가진다오히려 현재 체제의 존속과 이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그들의 영역이며 그들의 이해이다이들의 특이점은 이들이 전통적 학생운동이 소멸한 이후 과거 그들이 수행하던 지방에서의 진보적 시민사회와 정당의 활동가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지역의 정당과 시민사회 활동사회적 경제 등에서 종종 눈에 띄는 이들이다.



5.

직업훈련소 혹은 공부의 종착지로 입시 기구가 된 대학 내에서도 몇 가지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이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보면 인()-대학(IN)-대학()-대학()-대학의 부류로 나뉠 것이다.

 

첫 번째 인()-대학은 말 그대로 대학의 제도와 구조의 모순에 문제를 느끼지 않거나 설사 무제를 인지하더라도 변화 가능성을 포기하고 어쨌든 졸업장 받고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여 좋은 직장으로 옮겨가기 위해 대학 문제를 감내하는 선택이다대학을 출세 혹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한 입시와 직업훈련의 기구로 전락하게 하는 주류의 인식인 이런 태도에서는 대학이 추구하는 이상과 교육배움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와 실적증명 가능한 자격이 더 중시된다자연히 인()-대학의 태도 속에서 대학은 목적과 가치보다는 수월성과 쓸모유용성으로 평가받는다비싼 등록금조차 본인의 삶에서 주는 지대 효과와 성공안정의 기회를 위해 견뎌야 할 것이 될 정도로 이들은 대학의 위기 자체에 둔감하고 대학을 그저 미래를 위해 지나치는 과정으로만 인식한다.

 

(in)-대학의 태도는 여전히 대학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가능성을 믿고 대학 내부로부터의 변화와 개혁을 신뢰하는 태도다이는 대학이란 플랫폼을 고수하는 복각의 운동이며대학이란 제도와 공간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 가능성을 여전히 신뢰하는 운동이다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비판적 교수 집단에서 가장 지배적인 태도이지만 한편에선 과거의 대학상에 갇혀 대학의 존재와 의미를 낭만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 김예슬 선언으로 대표되는 대학 포기의 흐름은 그간 검토되지 않던 탈()-대학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했다()-대학의 핵심은 대학이 더 이상 개인과 사회에 지적도덕적 영역에 있어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있다이는 현재 대학이 마주한 곪아 버린 문제들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지식과 정보의 유통 매개를 대학이 독점하지 않고 있으며대학을 졸업해도 과거처럼 안정적이며 양질인 일자리와 연계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다탈 대학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탈 대학은 단순히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택하라는 조언부터 대학 바깥에서의 배움과 같이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이것이 저항적으로 이뤄지면 아래에 후술될 대()-대학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대개 고졸 9급 공무원 준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학의 흐름은 대학 외부에서 과거 아카데미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체하는 사회적 기구를 통해 대학에 대항하고 지식 하부구조와 담론 구조에서 퇴락한 대학과 맞서는 움직임이다이는 한편으로 ICT 기술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평생학습 체계의 등장유튜브나 MOOC와 같은 고등교육 학습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관련 있다이처럼 뉴미디어와 결합한 대학의 대체 플랫폼을 만드는 움직임 외에도단순히 배움을 대학이란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대학 바깥에서 대학에서 나온 연구자와 학생들이 만드는 다양한 학술기구나 학술운동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운동은 대학 내부에서 탈락한 교수자원들 혹은 현재의 대학 체제에 실망하고 분노한 연구자들이 만드는 대학 외부의 대학인 경우가 다수이다그만큼 재정적으로 취약하고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대안대학이 정착하고 제도화되긴 무척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학의 퇴락과 느린 죽음에 대처하는 여러 태도에도 불구하고 대학 자체의 존재 이유와 대학이 하나의 제도이자 공간으로 가지는 역사적 소명에 대한 검토는 무척 부족하다동시에 대학이 입신양명의 통로인 상황에서 배움과 연구가 어떻게 가능한지대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방대한 지성사적 기획의 가능성 등은 온전히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대학이 그 자체로 지니던 어떤 특권적 지위를 사실상 상실하고 대학의 자유와 자율성마저 국가와 자본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학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역할규범에 대한 검토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이는 단순히 우리의 짧은 경험에 대한 술회로는 불가능하며 훨씬 장구한 대학의 역사적 기원과 그 변화 과정에 대한 추적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한편 이렇게 재검토되고 고찰된 대학의 역할과 의미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정녕 대학 외부에서 대학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그런 의미에서 대학 체제 내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공간들은 새로 대학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의 공간이다이미 경쟁 체제에서 밀려나는 대학이기에 도리어 이 경쟁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여지가 생길 수 있다문제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밀려 나가기에 더 경쟁질서와 논리에 충실하려는 정치적 압력을 견디는 힘이다만약 대학 내부의 역학 관계에서 합의와 전망을 통해 그런 정치적 내파력을 구축할 수 있다면 지방대학이야말로 대학의 변두리에서 대학을 재건하는 공간경제적 출세와 사회적 계서의 상승에 대한 욕구가 아닌 온전한 배움과 비판비평의 공간으로 대학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현재의 대학 세계를 움직이고 규정하는 권력의 변방에 기회가 있다오래된 아카데미주의자들이 갈망하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를 넘어직업 훈련소와 최종적 공부의 종착지,청년 노동의 공급자수월성 교육의 현장을 넘어선 새로운 변화와 실험그 모태로 변두리를 상상하고 검토해야만 한다이런 실험과 변화를 통해 대학이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현재의 대학과 구별되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면 이는 우리가 새로운 대학을 상상하는 뿌리가 될 것이다.



re:0.


지방 대학은 한국 사회에서 잘남과 못남성공과 실패올라감과 떨어짐을 결정하는 이중의 잣대 아래에서 못나고 실패하고 떨어지는 배역을 맡고 있다그것은 한 개인의 실질적인 역량이나 의식철학인품 등 인격적 요소와는 무관하게 지방대학에 다니고 지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자존을 갉아먹고자신을 부정과 비관의 파도에 내던지게 한다.

 

동시에 지방대학을 다니는 것은 자기 삶의 공간을 한국 사회의 2부 리그로 정하는 일이다개중에 가끔 놀라운 경쟁과 노력으로 1부 리그에 올라가 온갖 불안정함(그 노력과 경쟁의 결과가 생을 가로지르는 불안정이라니)에 닿곤 하지만 대개 2부 리그에 있다는 건 그의 미래 역시 평균적으로 2부 리그 안팎을 배회함을 뜻한다그들 대부분은 지방의 서비스 산업의 사원이나 하청 네트워크의 하급 관리자엔지니어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것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삶의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1부 리그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겸허히 거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그들의 부모가 원전과 공장전깃줄에 땅을 빼앗기듯 그들은 자신의 생명과 시간과 활기먹고 사는 모든 것들을 서울이 상징하는 중앙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자존감과 행복마저 차압당한 지방지방대의 현실이지만 정작 지방으로부터의 저항의 기운은 요원해 보인다학벌주의 반대 운동의 핵심이 이 구조에서 수난받는 지방대생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거나 그 출신들이 다수란 사실은 이 운동에 대한 회의감만 증폭시킨다.

 

지방에 있음은 단순히 무능하고 떨어지고 탈락한 삶을 뜻하지 않는다하지만 이 실력주의와 실적주의의 신화 속에서 이런 말은 그저 막막하고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하지만 중앙에 서 있지 않기에서울에 살지 않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시선이 존재한다변두리변방에 선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그런 의미에서 모든 재향 청년은 훌륭한 혁명적 계보학자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그들을 규율하고 옥죄고 제한하는 이 권력이 어디로부터 연원하고 있는지 그들은 누구보다 잘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불안정하다하지만 그들의 수난은 서울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않고지방+청년이란 단어의 결합이 만드는 길항작용은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지방에 있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단지 문화적으로 서울에 비해 공연이나 전시가 좀 적거나 없고경제적으로 취업이 힘들고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 정도로만 보일 뿐이다하지만 내부 식민지화된 지방의 위상서열화된 대학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청년이 세 가지의 화학적 결합은 한국 사회에서 무척 독특한 형태의 지잡대생이란 결합물을 낳았다.

 

지잡의 미래는 서울을 따라가는 데에 있을 수 없다그들은 근본적으로 서울 따라하기의 실패자들이고 낙오자들이다서울과 대학 서열 모두에서 실패한 이 이중의 낙오자들에게 다시 서울을 좇고더 높은 서열을 위해 노력하길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비극이다우린 이들에게서 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경계를 오가고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에게서만 자랄 수 있는 그 마음그 감각그 시선으로부터 서울에 있었다면좋은 서열의 대학에 다녔다면 할 수 없는 일들상상할 수 없는 담대한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단순히 지잡의 위치에 있기에 이 구조적 모순의 뿌리를 직시할 수 있는 것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도출해내야 한다전통적인 대학이미 퇴락해버렸고 죽어가는 대학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자존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대학을 지방으로부터 상상해보자그것만이 이 이중의 억압과 지배의 구조를 넘어서는 길이다주류에 기입되지 못한 자들이 연대하고 함께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자이를 자존 삼아 그 주류를 넘어서는 상상을 해보자혁명은 원래 그런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만국의 잡놈 만세만국의 촌놈 만세변화의 담지자 만세.


 

도움받은 책들

 

강준만, 2008,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 지성사.

서경식 외, 2007, 교양 모든 것의 시작노마드북스.

서동진, 2009,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배게

오찬호, 201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요시미 순야, 2014,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

지주형, 2011, 한국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기원책세상.

  1. 대구에서 20대를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언저리 라이프로 보냈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 공동 창립자와 대표를 맡았다. 대학연구네트워크 공동 설립 제안자를 맡고 있다. [본문으로]

분권은 정말 우리가 처한 청년 문제에 유의미한 해법일까? 분권이 이것을 해결 할 수 있을까?

 

 

 

0. 어제 지방분권추진운동 대구경북본부 주관 세미나에 다녀온 이후 분권이란 화두에 포획되어 그에 관한 사고의 연쇄에 갇혀 버렸다. 이는 오늘 오전까지 이어진 이 보잘 것 없는 사고의 연쇄애 대한 메모이다.(http://seehun.tistory.com/439 에서 이어진다)

 

어제 난 청년 문제나 내부식민지화 된 지방의 문제가 단순 분권이라는 정치, 행정적 혁신만으로는 해소가 불가능 함을 지적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제조업 대공장과 같이 노동공급을 흡수 할 수 있는 산업의 문제, 대학이 한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위상의 문제이며 그 근대국가가 자본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지적했다.

결국 내부식민지로 지방의 문제나 청년 문제 역시 일정한 한국 자본주의의 경로 속에 놓여 있으며 여전히 난 이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분권의 유효함에 대해 불신과 회의를 갖고 있다.물론 그렇다고 지방분권이란 당위의 유의미함과 그들의 활동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문제라고 제시한 현상과 그에 대한 해법 사이의 타당함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지배 계서의 최상단(이자 동시에 이것은 평면에선 센터이다)에 독점된 권력을 그 하위 단위로 하향 이양 하는 분권이 과연 이 권력 독점과 집적, 집중이 만든 문제들을 유의미하게 해소 할 수 있을까? 물론 분권은 지역의 왜소화와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는 분명히 시사점을 지닌다. 하지만 분권이 이뤄진다 하여 이 내부 식민지 구조와 서울 제국으로 표상되는 수도권 집적 체제가 종결을 맞을 수 있을까?

과거 브래튼우즈-GATT 체제 시기 한국의 군부 반공권위주의-발전국가라면 인위적으로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자본과 생산 체인을 정치적으로 배치 하고 배분 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의 달러월스트리트-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과연 자본에 대해 그런 정치적 압력을 얼마나 행사 할 수 있는지는 무척 회의적이다. 그런데 하물며 일개 국가 보다 작은 하위 단위가 권력을 이양 받아 이를 수행한다? 무척 의문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재정을 좀 더 자율적으로 편성하고 행사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수도권 집적 체제의 완화나 해체로 이어진다는 논변은 너무나도 많은 중간 과정을 필요로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경제적 문제, 특히 내부식민지로 지역의 문제를 분권으로 돌파하는 시도는 사실상 유효성이 떨어진다. 물론 요컨대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이 바스크 지역의 고유한 에스닉 아이덴티티와 지역성에 기댄 국민경제 아래의 좀 자율적인 지역 경제를 도모 할 순 있을 테고, 자율성이 배가 된 재정에 따라 공공부문의 확대나 복지 공급의 효과는 증대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타파되기 힘들어보인다. 물론 지역 단위로 법인세나 최저임금 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유치하는 시도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지만 이미 집적과 집중의 보너스를 누리는 수도권으로부터 혹은 저임금, 저지대를 향유하는 동남아시아로부터 자본과 설비가 이전하는 유인이 된다기에 그것은 좀 무리한 지점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오히려 지역화폐(LETS)와 같은 지역 내부 경제를 만드는 시도나 지역에 강한 뿌리를 둔 새로운 생산양식의 이행을 도모하는 것 역시 가능하겠지만 이는 분명히 너무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 역시 존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권, 아니 권력의 하향 이양이 이 내부 식민지로 지방(특히 지방 청년) 문제에 있어 가지는 유의미함은 상대적으로 비물질적이고 의식적인 부분, 심성적 부분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권력은 종종 행위를 하게 하는 힘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언가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옳음과 나쁨/훌륭함 내지 잘남과 후짐 등을 규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속성이 만들어내는 삶과 자존의 표준적인 형태는 늘 우리를 압박한다.그런데 이를 해체하고 가장 하위 단위인 개인들에게로 나눠버린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물론 그 이양 받은 이들이 자신들에게 그 권력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행사 할 마음가짐을 가져아 의미있는 권력이겠지만 적어도 권력의 중심이 만들어내는 보통, 표준, 일반의 잘남, 훌륭함, 멋진 삶은 좀 기각되고 다양하고 비경합적인 삶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이런 기제가 만들어내는 정상이나 보통의 그것 이외의 것들을 쉽게 환대하지 못하지 않나. 표준어라는 보통의 존재는 그들이 사투리라고 하는 우리의 언어들을 희화화 하지 않던가? 서울의 그것은 늘 지역을 후지고 낙후되고 구린 것으로 만들지 않던가? 우리가 서울이 될 수 없다면, 서울이 만드는 그 잣대와 기준을 파괴하는 것은 방법이 아닐까? 이는 우리가 의식 속에서, 마음과 심성 속에서 서울을 지양 극복하는 방법으로 권력의 하향 이양아닐까? 저 제국과 권력의 물질적 토대의 파괴가 쉽지 않더라도 그것을 지탱하는 그런 비물질적 토대들과 싸우고 그것이 이단시하던 것들을 환대하고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긍정 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구리고 후지고 못난 것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자존이 되고 환대하여 연대를 만들고 그 잘난 서울 제국을 포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아주 추상적인 망상이다. 그 구체와 실천은 사실 불분명하지만 이왕 정치적 상상이라면 단순히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과 권력, 자원을 주는 의미로 분권 보다는 우리 삶을 규율하고 제한하고 쪼그라들게 하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으로 권력의 해체와 이양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물질적 조건에 대해 타협하고 수긍하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심성과 의식 속에서 우리 자존을 조금이라도 긍정 하고 저들을 지양하고 싸울 힘이 있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이야기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수도권의 힙함과 싸우는 지방의 촌스러움을 자존으로 삼아 긍정해본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언어-비민족 세계주의는 이론 태도에서 시작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밥 먹고 이런 망상을 해본다. 그놈의 분권 때문에 다언어-비민족 세계주의까지 와버렸다. 망했어

'아래로의 이전'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가?

0. 이건 오늘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와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주관한 세미나를 다녀오며 든 몇 가지 소회와 의구심에 대한 정리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정식 글을 좀 내볼까 하는 고민 역시 존재한다.

0-1. 오늘의 핵심 주제는 지방 청년 문제이다. 주변의 분들은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는 내가 한국 자본주의나 한국 사회운동사와 더불어 가장 뿌리내리고 사는 주제란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세미나에서는 유감스럽게'지방-청년'이라는 한국 사회에서의 고유한 층위를 가진 집단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것이 '지방' 따로 '청년' 따로 논다는 느낌을 너무나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일부 발표는 너무나도 개별 사례 중심으로 진행하며 자신이 제시한 물음에 대해 정교하게 풀어나가는 과정이 거의 결여되어 있어 큰 아쉬움이 있었다.

'아래로의 이양'의 당위와 그 실천으로의 결함.

내 의문을 한 문장으로 풀어내면 결국 이 문제이다. 한국에서 지방분권이란 담론은 크게 지방정부와 그 아래 단위로 중앙의 권력과 자원, 결정 능력을 이양 시키는 것에서 부터 단순히 지방정부의 역량과 자율성 강화(연방제를 포괄하는)으로 그 수준과 상이 나뉜다. 문제는 이것이 청년 문제와 같이 거대한 ‘축적 체제’ 수준의 문제에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물음이다. 오늘의 주제가 ‘지방 청년 문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부 식민지로 지방의 문제와 청년의 문제는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의 문제이다. 선택과 집중, 집적이라는 핵심적인 공업화 전략은 지역 간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 되었다. 이는 마치 지난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언술한 바와 같이 맏아들이 대학가서 잘되면 그의 대학진학을 위해 희생한 모두에게 좋은 기회와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이 대학 간 아들이 가정을 일으켜 세워 모두 행복할 것이라는 전통적 이데올로기의 확장판이었다. 한편 지방은 끊임없이 서울의 사례를 가져와 그것을 모델로 삼아 쫓아가고, 서울은 더 나아가 글로벌한 사례들을 가져와 외국을 모델로 그것을 쫓아가는 2중의 따라잡기(Catch up)이 작동했었다.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된 지방과 서울 간의 의료 격차 10년설은 이 2중의 따라잡기 구조의 본질을 유효하게 잘 보여준다.
문제는 과거 국내의 이 이중구조가 하나의 리그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의 지방과 서울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리그로 나뉘어버렸다. 수리와 같이 특정한 지경학적 이점을 요구로 하지 않는 사업들은 나날이 수도권으로 이전하여 집적과 집중이 주는 이윤의 수혜를 향유하였고, 어느새 지방에는 수도권으로 옮겨간 핵심 산업의 수직계열화된 생산 네트워크의 하부 요소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윤율과 노동의 질은 철저히 최상단의 서울 소재 대 자본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지방이 산업과 경제 그리고 인식과 에토스로부터 소외되고 멸시 되는 것은 이런 거대한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로 속에 있는 것이다.
청년은 어떤가? 청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초기 공업화 단계를 지나 기술과 시설 투자가 고도화 되고 ICT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생산공정에서의 노동 탈각, 고성장 시기의 종식과 축적의 금융화 속에서 전통적으로 대규모 노동 공급을 흡수하던 대공장의 쇠락, 그나마 있는 대공장들이 수도권과 남동권 일부 해안지대로의 이전과 같은 맥락 속에 놓여 있지 않은가? 서울에 있다는 것만으로 더 많은 급여와 사회적 평판을 향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한 지리적 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은 핵심 산업과 그것에서 나는 일자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이는 당연히 좋은 양질의 일자리의 규모의 위촉으로 이어졌고, 이를 둘러싼 경쟁이 만들어진다. 이 속에서 지방 청년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문제는 오늘의 토론이 지방 청년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지구화와 금융화라는 한 축과 국내적인 서울제국의 약탈성을 전혀 다루지 못한채 무척 표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 정부에서의 청년 조례를 이야기 하지만 여기서 청년이 하나의 ‘세대(Generation)'으로 청년인지, 특정한 ’연령집단(Cohort)'로 청년인지는 세밀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편 이 지방 정부들의 청년 조례까 청년들이 처한 의식/감정/물질적 위기들에 얼마나 유의미하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진 못했다. 물론 주요 지방정부들의 청년 정책과 그 근간에 대한 좋은 정리와 묘사였지만 이런 것이 실제로 어떤 유의성을 지니는데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실업 문제는 분명 전지구적인 축적 양식과 생산과정의 변화로부터 연원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방 혹은 국민국가 내의 하위 단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용에서 탈락한 자들에 대한 구제와 원호, 탈상품화된 재화의 공급과 재교육의 제공 정도일까? 좀 더 하면 해당 지역의 공공부문에서의 고용을 증대하는 정도는 가능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론 이 거대한 청년 실업과 유출 문제에 분권이 유의미한 해법이라 할 수 있을까? 실천적 문제에 있어 너무나도 형편없을 정도로 텅 빈 공백지가 우리 앞에 내던져저 있는데 답은 다소 공허하고 원론적이다.

지구화에 내포된 다양한 정책적, 정치적 변화에 지방과 하위단위로의 권력 이양이 대응책이 된다면 그것은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와 이 축적 양식 외부를 만드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내향적 발전이란 개념만으로는 이를 대체하지 못한다. 한때 기대 받던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섹터가 사실상 기각 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권력을 아래로 이양하는 분권의 정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응은 초국가적인 유동하는 자본에 대항하는 초국가적인 연대와 연합은 아닐까?

분권은 정말 우리가 처한 청년 문제에 유의미한 해법일까? 분권이 이것을 해결 할 수 있을까?


지방에 사는 2등 인간? '지잡'으로 불리는 청년들

[대선기획-100인의 편지 32] '지방 청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2017428일 오마이뉴스 기고



이시훈(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변두리는 빛이 들지 않는 곳이다. 그곳은 권력을 잃고 언어를 잃고 타자화 당하고 멸시받는 이들의 공간이다. 우리 시대의 변두리는 어디인가? 그리고 우리는 변두리에 어떻게 다시 '권력''활기''목소리'를 부여할 것인가? 이는 유사 이래 정치에 부과되는 숙명 같은 것이다.

  누구에게, 어디에게 권력을 주고 공간과 세계, 권력과 자원을 어떻게 분할하고 분배할 것인가? 이 정치의 결정에 따라 누군가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커진다. 그렇기에 변두리와 중앙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관계이다.

  이는 다른 의미로 처음부터 주어진 중앙과 변두리 관계는 없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이 변두리와 중앙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구축되었는지를 추적하여 재구축할 수 있음을 동시에 뜻한다. 우리가 적어도 최소한 지난 촛불에서 그토록 갈구했던 최소한의 참된 민주-공화국에 살고자 한다면 내부 식민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만들어진 변두리'들은 없어져야 한다. 그것이 법적 평등과 동등, 부당한 차별과 착취에 대한 정치적 정의의 관점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만들어진 제국, 만들어진 식민지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 헌법재판소의 어느 결정을 생각해본다. 참여정부가 수행한 가장 큰 혁신적 시도였던 행정수도 이전을 좌초시킨 그것은 이 거대한 중심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보여준다. 그 결정은 서울이라는 우리 시대의 중심은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편 우리의 관습과 의식, 규범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와 구조 속에서 변하고 운동한다. 결국 서울이라는 이 거대한 제국의 중심은 정치적 선택과 권력과 권력 간의 협력과 합의, 투쟁의 결과이다.

  보수적 법관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관습헌법이라는 초헌법적 표현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좌초시켰다. 그들은 그저 서울 사람들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과 그들이 향유하는 재화와 자원들을 지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들의 시선은 서울을 위해 세운 송전탑에 땅을 빼앗긴 농민들과 그들의 전기를 위해 일상적으로 원전의 불온한 회색 방호벽을 보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정의는 이 나라 전체 대중과 공공의 정의라기보단 지극히 서울이라는 이 중심부 기득권을 위한 정의였다.

  하지만 그들은 관습헌법에 따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논리를 내놓으며, 서울이 사실 어떤 경제적 효용이나 필연성과 같은 내적인 이유로 중심의 위치를 획득한 곳이 아님을 스스로 폭로했다. 이렇듯 서울은 오로지 그곳이 이 나라의 수도이자 중심이라는 일련의 관습적 사고를 통해 지지되고 정당화 되고 있었다.

  이는 다른 의미로 이 나라의 수도가, 권력과 자본의 중심이 서울이 아닐 수 있음을 증명한다. 단지 그 어떤 의식과 편견만이 서울을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 변두리만 아니라 중심도 구성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한편 중심의 존재 양식 역시 새롭게 구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중심과 변두리의 관계의 내용과 양식 역시 의식과 실제의 변화를 위한 투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충남 일대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내는 화력발전소 전기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일까? 노량진과 신림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청년 다수는 어디서 온 이들일까?

 

일자리는 없고, '지방거점 국립대학'의 위상은 떨어지고...

 

  서울은 우리 시대의 원더랜드다. 그곳은 또 우리 시대의 블랙홀이다. 동시에 서울은 메트로폴리탄이며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지상천국이며 이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은 그 변두리들의 사람과 자원, 땅과 에너지, 노동을 수탈하여 유지되는 곳이다. 서울은 이처럼 변두리들을 식민화하여 착취하지 않고는 지탱되지 않지만 정작 서울은 변두리들을 멸시하고 타자화 시킨다.

  ''이라는 지칭은 어느새 더욱 분명하게 후진적이고 낡고 오래되고 구린 '서울 바깥'에 대한 멸시의 언어가 되었고, 사투리는 어느새 가난하고 천박하고 교양없고 동시에 웃긴 말이 되어 희극과 오락 프로그램에서 조롱거리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많은 이들에게 대구나 광주는 도쿄나 베이징보다 심리적 거리가 먼 곳이 되었다. 그나마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때문이라도 촌 취급은 면하는 듯 보인다.

  이 지역 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겨가는 만큼 이 변두리에서 수도권 중심부로의 엑소더스(Exodus)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기존의 일자리를 따라 서울과 그 인접 지역으로 옮겨 가야 했고, 청년층은 그나마 있었던 양질의 일자리들이 사라짐에 따라 그래도 좀 더 기회가 있어 보이는 서울로 옮겨 갔다.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건 공무원이 되거나 아니면 저임금 하청기업 노동자나 서비스직 노동자가 되는 것 뿐이다. 개중에 일부는 울산의 조선이나 자동차, 부산의 선박 부품과 해운 등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최근 조선과 해운의 급격한 쇠락은 이제 이 탈출의 흐름을 더욱 분명하게 서울로 향하게 했다.

  한편 다수의 서비스업과 소매업 역시 중앙의 지배하에 잠식되어 갔다. 백화점-대형마트-SSM-편의점으로 이어지는 소매시장 지배 체계는 지역의 구매력들을 빠르게 중앙으로 가져갔다. 이런 중앙 중심의 소매시장은 지역에 유의미한 경제적 기여를 전혀 만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역 내부에서의 자본 증식은 이뤄지지 못했고, 지방에 남은 다소간의 하청 기업이나 서비스업을 통해 얻어진 구매력은 도소매 지배 체제를 통해 다수가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지역에 만들어진 부가가치라고는 고작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상징하는 마트 캐셔와 판촉사원, 편의점 알바와 같은 직업들 뿐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변두리 지역들은 아주 상징적이고 급격한 유출에 노출된 곳부터 느리게 죽어가고 있다. 전지구적인 생산네트워크의 유연화와 재배치, 자본 축적 형태의 금융화와 전산화, 대기업의 소매업 지배는 이제 더욱 분명하게 지역의 위상과 가치를 해체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이런 급격한 쇠락과 이탈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주 좋은 사례다.

  대구지역의 유력 국립대를 다녔던 00학번과 12학번의 사촌 형제들은 그 대학에 간다는 것에 대해 전혀 상이한 반응을 보였다. 이 상이한 반응은 이 12년 사이의 중앙과 변두리 관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쉽게 읽어 내도록 해준다. 이른바 지방거점 국립대학은 과거 수도권의 주요 대학들과 대학 서열을 다투었지만 서울-지방 관계와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대학 서열 구조가 이중적 구조(1부 리그인 서울권과 2부 리그인 지방)로 재편되면서 결국 제아무리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을 간다고 해도 그래봐야 '촌 지방에서 잘난' 대학이 될 뿐인 것이었다.

  '지잡대'라는 멸칭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변두리가 한층 더 식민화되고 동시에 타자화 됨을 보여준다. 결국 과거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의 식민지 내부 엘리트들이 국내 제대와 민립대학에서 제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근본적으로 그들이 식민지 2등 신민들의 엘리트이듯이 더 이상 경북대나 부산대와 같이 과거 한국의 학벌 계서(階序)에서 높은 위치에 있던 대학을 간다 한들 결국은 '지잡' 내부의 엘리트일 뿐이다.

  결국 같은 '대학'이라는 학력을 가진다 해도 그들만의 대학 리그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며 내부 식민지는 격리된 공간 내에서 위치하여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과 구분, 배제의 기제들은 지방을 타자화된 변두리와 사회경제적 탈취를 넘어 명실상부하게 스스로를 무능하고 실패한 2등 인간으로 사고하게끔 만들었다.

 

재경유능 재향무능(在京有能 在鄕無能)의 고정관념

 

  이 식민지 같은 2등 동네에도 삶이 이어지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전통적인 사고 속에서도 지역에 남은 혹은 떠나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들 다수는 학업이나 직업을 위해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잡'이라는 멸칭 아래 묶여 있는 이들이며 단지 자신의 고향 내지 인근의 지역에 남아있거나 떠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원과 정보, (문화, 경제, 사회, 인적)자본의 네트워크에 배제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에 남은 청년들은 우리 사회와 권력에 기입되지 못한 이들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점증되어 가는 세대 간 투쟁의 한 축이지만 동시에는 수도권-비수도권 구도가 만들어내는 학벌과 직업, 삶의 경제적 문화적 자산의 균열의 한 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노년층 다음으로 불안정하고 동시에 사회 최말단에 놓여 있는 이들이다. 실제 SNS와 서울 지역 고학력 청년 또래 집단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반 가부장, 페미니즘, 젠더 담론들이 실제 저학력, 지방 청년 또래에 얼마나 유의미하게 확산되고 있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서울 중심주의적 의식/무의식은 의외로 많은 곳들에 존재하며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지방과 지방의 청년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지방에 있음'의 문제를 구성되고 배치된 권력의 결과라기 보단 능력의 문제로 환원하여 이해하고 있다. '지잡'의 삶을 사는 것이 결국 그들의 무능의 탓이라는 것이다. 결국 수능을 못쳐서,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부모를, 지방에 사는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로, 스펙을 많이 또 높게 쌓지 못했기에 그들은 이 서울 바깥의 변두리에 있다고, 중앙에 있는 이들은 그렇게 정당화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권력 있고 언어 가진 이들의 논리는 어느새 변두리의 주체들의 의식/무의식 속에 내면화 되어 있다.

  하지만 서울의 존재는 앞에서도 보았듯이 선택되고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서울과 지방의 문제를 단순히 왜곡되고 천박한 능력주의만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논리와 현상의 실제 사이에서 설득력과 정합성을 가지지도 못한다. 게다가 이미 동등하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이 구조를 은폐하고 왜곡하며 동시에 이 구조의 기득권에 편승하는 논리일 뿐이다.

  이 천박하고 왜곡된 실력주의가 만들어낸 질서 속에 지방의 청년들은 한편으론 박탈되고 배제되고 소외되면서도 이 실력주의 내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나마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믿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그들은 노량진으로 그리고 지역의 공시촌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겐 그들이 처한 이 정치적이고 동시에 역사적인 상황과 맥락에 대해 사고할 물리적 발판이 없다. 그들에겐 오로지 지금 이대로 떨어지느냐 아니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고 버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갈 뿐이다. 한국의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정작 학벌주의의 상단에 있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는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많은 숙고의 거리들을 던져준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치

'학습과 모방을 통한 따라잡기에서 구별짓기와 이중구조로의 분리'

 

  더 이상 지방과 서울의 문제는 동등한 하나의 리그 내에서 벌어지는 모방과 학습을 통한 따라잡기 게임이 아니다.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앨리스 암스덴이 한국 경제의 압축적 공업화를 설명한 이 경구는 사실 일정 부분 서울과 지방의 관계에서도 오랜 시간 적용돼 왔다. 가부장적이고 병영주의적인 국가의 풍토 속에서 지방은 마치 똑똑한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희생한 큰 누나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보내 동생이 성공하면 어느정도 큰 누나가 그 사회경제적 성공에 편승하고 일정한 적하효과가 있으리라 믿었던 그 시절의 논리가 지방과 서울 사이에도 통용됐다.

  학부와 대학원의 존경하는 은사이신 김태일 교수님이 1990년대 영남대에 처음 오셨을 때 학생운동을 하던 내 선배들의 표정을 보며, 나름 악전고투 하던 서울과 다르다 느끼셔서 그 차이를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저희가 2년 늦심더"였다.

  이 말은 우리의 서울-지방 관계의 과거 모습을 많이도 설명한다. 서울과 지방은 서로 물자와 인력을 교류하며 서로가 서로를 끌고 견인해갔다. 하지만 이제 지방과 서울은 동등한 리그 속에 있지 않다. 이 나라 내부를 둘러산 권력과 축적 양식의 변화는 지방을 자신들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한 큰 누나 보다는 무능하고 가난한 내부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금 서울에 있다는 그 자체로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서울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이들의 잘남의 결과가 아님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무수한 지역의 희생과 강요된 양보의 결과이며 지역이 마땅히 향유했어야 했던 것에 대한 유보의 결과이다. 모든 것이 집중되고 집적된 결과 수도권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과밀화된 공간이 되어 지방과는 또 다른 의미의 고통의 공간이 되었다. 우리 시대는 이제 이렇게 왜곡된 공간적 질서들을 다시 배치하고 구성해야 한다.

  분권이 중요한 정치적 기획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사실 더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만 아니라 공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권력을 새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는 그런 것들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고 그 배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지닌다. 우리는 이제 20세기의 '선택과 집중'이 만들어낸 왜곡된 공간 질서를 해체시켜야 한다.

  연장된 20세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변곡점으로 최근의 정치 일정에서 다시 한번 지방의 문제가 논의되고 숙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고려의 대상은 '청년''지방'이라는 두 화두가 중첩되는 지방 사는 청년들의 '미래'에 있어야 한다. 권력도, 목소리도, 일자리도, 풍부한 삶의 환경도 없는 공간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지방청년들에게 이런 식의 희생과 양보, 배제와 소외를 강요하고 전가하는 세계에 정의로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부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이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쌓아가야 한다. 퇴락한 서울 제국주의에서 빛 잃고 목소리 잃은 이들을 위해 의식과 규범, 관습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외면당한 고통과 부정된 책임

<세월호 참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

 

 

이시훈

(본색 소사이어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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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세 계절이 흘러갔다. 세 계절이 흐르는 동안 딸 잃은 아비는 이 나라의 큰 도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한 여름의 땡볕 아래 앉아 50일에 이르는 목숨을 건 단식으로 딸 잃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과 설을 보냈지만 유가족은 웃을 수 없었다. 여전히 열 명의 주검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깊은 진도의 심해에 잠들어 있었다. 계절이 흐르는데도 사건의 수습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이 어처구니없고 황망한 죽음 앞에 슬퍼하면서도 진실과 책임을 묻는 고독한 싸움을 진행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집권세력과 집권여당은 이 사안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 부정하고 있으며, 책임을 묻는 요구를 철저히 파당적, 인격적 공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참사의 수습과 후속대책에 있어 유가족들과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조율을 때로는 대변의 역할을 해야 할 야당은 온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섣부른 타협 시도로 전도유망하던 야당의 수장은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야당의 기능 상실로 집권 보수당이 논의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보수 일변도의 언론 환경에서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균열점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사고로 폄훼되고, 어느 종교 집단의 탐욕이 낳은 비극으로 치부되고,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고통과 이에 대한 책임 요구는 이기심이라고 공격받았다. 근래 새롭게 대두된 한국의 넷우익들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해 사회 통념과 도덕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비난과 막말을 쏟아냈으며, 자식 잃은 아비의 단식에 폭식 투쟁이라는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가질 정도의 모욕으로 응답했다. 결국 통과된 특별법이란 것은 사실상 탈진해버린 유가족의 의사는 충분히 토론되고 반영되지 못한 법이었다. 물론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요구에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특별법 제정의 대원칙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는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의 프로파간다에 묻혀버렸다. 힘겨운 유가족과 시민들의 요구와 투쟁에도 불구하고 관철되지 못한 특별법과 특별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조사위원회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지나며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통해 그 안팎에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들이 드러나는 하나의 총체적 균열이며 성찰적 계기다. 그 가운데서도 핵심은 바로 국가의 책임 문제다. 어떠한 경위와 배경으로 그런 문제 있는 배가 운항을 할 수 있었는지, 배가 여러 결함과 문제를 떠안고 출항하는 것을 왜 국가가 막지 못했는지부터 왜 피해자들이 구조되지 못한 채 가족과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사고의 구조와 수습 과정에서 보인 미심쩍은 부분들과 국가의 역할 부재 전반이 바로 국가 책임의 영역이다. 이는 지난 10년의 민주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드러난 신자유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이며, 무능한 정부 조직과 관료 조직의 문제이며 또한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는 국가의 정직성, 공적 신뢰의 문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근대 이후 국가의 역할로 자명하게 수용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라는 공리의 문제다. 결국 세월호 참사에는 선주와 운영사, 선원, 배의 출항과 운영 감독 책임자, 구조 책임자 등이 져야할 만큼이나 국가가 져야할 책임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국가는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그 사건 자체가 드러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현실의 단면을 통해 우리에게 강력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이어진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취약해진 국가의 역할, 공공성, 책임 전반의 문제, 타자의 고통과 호소에 대한 응답 가능성의 문제를 통해 반추할 수 있는 개인의 윤리성과 공감,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희석하고 왜곡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세월호 참사에 존재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성찰적 계기가 한국 사회에 생명력을 지니고 유의미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낙관적인 답을 하긴 힘들어 보인다. 지난 2013년 여름, 김영오씨의 긴 단식 투쟁과 이어진 원내에서의 정치적 교섭의 결과, 여러 곡절을 거쳐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은 진상 조사위원회의 구성과 위원의 선임은 물론 정부와 여당 측 조사위원들이 보인 파행적 행동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진상 규명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로 기억과 성찰, 조사 전반에 강력한 시각적, 상징적 계기가 될 수 있는 세월호 선체의 인양은 경제적 논리로 유예되고 있다.

특별법과 조사위원회의 무력화, 선체인양의 지연, 넷우익과 보수 언론의 선전으로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의미 역시 자리 잡지 못하고 퇴색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세월호 참사의 마무리는 국가의 책임 없음선언과 금전적 보상(배상이 아니다)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국가적 책임, 구조적 책임이 외면 부정되고, 개인의 소통, 공감 불가능이 드러난 가까운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 냉전의 종식 이후 열린 증언의 시대1990년대 증언의 시대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처가 바로 그것이다. 김학순 여사는 최초로 이 문제를 증언함에 있어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 인정을 요구했고, 송신도 여사는 총리의 공식적 사죄를 요구하는 소를 제소하기도 했으나 이 증언의 시대는 일본 사회에 성찰을 기반으로 한 진보를 낳기보다 이른바 역사수정주의로 불리는 우익의 반동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증언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고노 담화, 호소카와 연설, 무라야마 담화로 이어지는 발언에서 부분적 사죄와 강제성의 잠정적 인정을 했으나 이것이 국가 수준의 전면적인 책임 인정의미 하지 않았으며, 자연히 국가에 의한 배상이 아닌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통한 경제적 급부의 지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양자 사이에는 국가의 책임, 구조적 책임, 성찰의 기회의 마멸이라는 많은 유비점이 존재한다. 이에 이 글은 세월호 참사의 가장 우려되는 미래상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여성평화기금)’을 상정하고, 여성평화기금을 만든 1990년대 일본의 경과와 그 과정에 나타난 책임 희석의 논리를 살피고자 한다.

 

 

. 전후 일본의 책임과 배상 문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국가 책임 논쟁은 1991년 고 감힉순 할머님의 종군 위안부 강제동원 증언을 전후하여 표면에 떠오른 일본의 전쟁,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와 그 논의와 유사하다. 1989년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후 육군 강경파에 의해 주도된 침략전쟁의 역사 한 가운데 섰으며, 1945년의 무조건 항복을 외친 당사자, 일왕 히로히토(쇼와 천황)이 세상을 떠난다. 비록 동경 극동군사재판에 기소되지 않으며 직접저인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히로히토가 침략과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를 의식한 듯, 당시 총리 다케시타 노보루의 근화(謹話)에는 히로히토의 침략 책임을 감싸고 변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케시타 노보루는 근화에서 히로히토가 비록 선전 교서와 종전 교서의 최종 결정권자지만 그 전쟁과 침략이 히로히토의 본의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전쟁은 히로히토가 원했던 바가 아니며, 그 결정은 단지 당시의 총리대신과 각의, 정치인과 군부의 책임인 것이다. 이는 식민지 조선과 태평양 전쟁, 중일전쟁 등 히로히토의 이름으로 이뤄진 모든 침략과 전쟁, 범죄의 책임소재를 당시 수상과 정치인들에게 의한 것으로 격하시키고 결과적으로 히로히토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언술일 뿐이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 종군 위안부 문제를 위시한 과거사 책임 문제는 새 국면을 맞이한다. 시작은 앞서 이야기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다. 하지만 이 국면은 단순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증언된 이상의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우선 냉전 구도가 해체되며 냉전 구도에 억눌려 있던 일본의 침략, 식민지 책임 문제가 드러났다. 비록 일본이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시절이던 1972년 중일공동성명을 통해 국교 수립과 동시에 중국 측의 전쟁 배상권 포기를 이끌어 냈으며, 한국과도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 청구권 문제를 매듭지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외의 국가와도 정부 간 청구권 문제를 매듭짓지 않은 경우가 있었으며, 과거사 문제가 하나의 대중적 열의가 투영되는 이슈로 자리 잡는 것을 이런 외교적 방법이 해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을 전후해 한일 간에 위안부 이슈가 대두된 시점에서 일제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 피해자이며 일본에 거주하던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총리의 의회를 통한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동경지법에 제소한다. 이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도 많은 사회단체들이 송신도 할머니에 적극 연대하며 여론을 형성했다.

19937월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단독 과반수가 무너지며 1955년 체제의 균열이 나타난다. 호소카와를 중심으로 한 비 자민당, 비 공산당 연립정권이 들어섰고, 연정 수립 직전이던 19938월 미야자와 내각의 관방장관이던 고노 요헤이가 위안소의 운영, 위안부의 동원과정에서의 강제성과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이는 이전의 일본 정부의 입장에 비해 분명 진전된 입장이었으며 사과와 책임 인정의 단초를 제공하는 유의미한 담화였지만 담화 자체가 침략, 전쟁범죄에 관한 책임표명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고노담화 직후 들어선 호소카와 내각 등 비() 자민당 정권에서도 책임 문제에 관한 더 이상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호소카와 내각에 이어 사회당과 자민당 연립정권인 무라야마 내각이 출범한다. 사회당 출신인 무라야마 총리는 집권 기간 동안 두 개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하나는 1995년 태평양전쟁과 이전 시기 일본이 행한 침략과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를 표한 무라야마 담화이며 다른 하나는 담화 이전 1994년 국민성금을 통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골자로 하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여성평화기금)’의 설립이다.

무라야마 내각 시기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이전보다 진전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무라야마 담화 역시 여전히 천황의 전쟁, 침략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태평양 전쟁 등 일본의 침략 자체가 불가피 했거나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사죄에 이은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정리된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담화 이전에 설립된 여성평화기금 역시 이런 흐름과 궤를 함께 한다. 여성평화기금의 구성에서 정부의 역할은 운영재정의 부담에 그친다. 기금의 조성은 일본의 보통 국민들의 모금으로 이뤄졌으며, 무라야마 내각을 이은 하시모토 자민당 내각에서 기금의 부족분을 정부 재정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즉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배상에서 국가는 책임과 역할을 회피했다. 결국 기금의 조성과 운영, 기금을 통한 배상(기금의 지원을 배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과정 일체에서 책임의 주체인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과거의 잘못과 고통 받는 이들을 돕고자 하는 선량한 보통 일본 국민의 마음과 역할만 드러날 뿐 이다.

배상은 어떤 잘못된 행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이다. 하지만 책임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배상은 그야 말로 말장난 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 서독은 나치 독일을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국가가 아니다. 양자 사이엔 하나의 강렬한 단절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이란 국가에서 전전(戰前)과 전후(戰後) 체제 사이에 과연 그런 단절성이 존재하는가? 일본은 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것이 현재의 상징천황제다. 천황이 비록 과거와 같이 정치적 실권(비록 그것이 작동하지 않을지라도)을 지닌 존재는 아니지만 여전히 일본이란 국가를 그 인신을 통해 표상하고 있다. 헌법이 비록 변경되었지만 천황제의 형태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전전과 전후 모두 동일하다. 태평양전쟁의 선전 교서와 종전 교서의 최종권자는 전쟁 후에도 상징천황제의 형태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전쟁을 주도한 이들 상당수가 동경의 극동국제군사재판소를 통해 처벌되었지만 적잖은 정치엘리트들은 전후의 일본을 구성하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현재의 일본이란 국가는 과거 서독 보다 과거사에 대해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책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본 국가는 단 한 번도 자국의 책임을 명백히 인정하고 사죄를 표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해서 일본과 천황의 이름으로 수행된 침략과 범죄, 전쟁을 몇몇 문제적 개인들의 행동으로 치부하고 있고, 천황과 일본 국가는 이에 대해 그저 도의적 책임만을 이야기한다.

이런 일본의 전후 책임 문제에서 우린 몇 가지 중요한 책임 희석의 논리를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로 피해자의 고통을 철저히 돈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제주의적 접근으로 여성평화기금이 그 전형이다. 일본은 인도차이나 국가들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의 피침략 국가들 그리고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과거의 책임을 철저히 돈으로 해결해왔다. 그 과정에서 어떤 책임 있는 사죄의 표현은 잘 이뤄지지 않아왔다. 그런 접근은 시간이 흘러 위안부 문제가 대두된 시점에서 이어진다. 여성평화기금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위로금을 중요한 보상수단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은 앞에서 말했듯이 오로지 돈의 문제로 환원된다. 특히 여성평화기금을 통한 보상은 그 과정에서 가해자의 책임은 드러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그저 선량한 일본 국민 개인들의 선의에 따른 보상만이 드러난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사과, 고통에 대한 응답, 역사에 대한 평가와 재발방지의 노력은 드러나지 않는다.

두 번째 접근은 책임 부정의 논리다. 현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을 맡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는 과거 일본 국회에서 자신의 세대는 전쟁 당사자 세대가 아니기에 반성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으며 반성하지도 않겠다고 발언한다. 즉 과거의 잘못을 현재의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부당하다는 논리이다. 일견 다카이치 사나에의 이 발언은 일리 있어 보인다. 실제 일본은 195,60년대 여러 피침략 국가에 여러 명목으로 전쟁 배상금을 지급했다. 이를 통해 형식적으로는 일본이 과거의 침략에 대해 사죄하였고, 결정적으로 현재 세대는 그 침략 세대가 아니기에 자신들에게 과거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길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 그 논지이다. 그리고 이런 책임부정의 논리의 다른 한 축은 위안부의 동원에서 일본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 후자의 논리에서 강제동원은 그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위해서 갔던 이들이 주장하는 거짓일 뿐이다.

세 번째 접근은 다소 유치하고 졸렬하다. 그것은 위안부의 강제 동원 문제를 희석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발적 참여, 매춘, 어느 정도 눈치 채고도 따라간 사람의 존재, 즉 자발성의 문제를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즉 위안부 전체를 강제로 동원, 수탈된 순수한 여성과 어느정도의 자발성을 지닌 불순한 여성, 혹은 순수한 처녀와 그렇지 않은 이로 분할하는 시도가 이 논리의 핵심이다. 이는 아주 악질적인 논리다. 이 논리는 피해자 집단을 온전히 하나의 총체적 폭력과 성범죄를 경험한 피해자 집단으로 사유하지 못한다. 물론 위안부의 이미지들 특히 정대협이나 소녀상이 표상하는 이미지만으로 사유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분리된 접근은 사안의 본질, 즉 구조적이고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동원과 여성 수탈, 국가에 의한 성범죄라는 본질을 은폐하고 개인이 그 사실을 인지했느냐, 어느 정도의 자발성 있었느냐와 같은 문제로 전화해버린다. 그 결과 자발성이 있었던 것으로 간주된 이들은 피해자임에도 마치 보호될 필요가 없는 이들로 전락되고, 본질은 은폐되고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가 부각된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바라보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과 증언을 그저 부끄러운 일을 들춰내는 것으로 여기는 의식 역시 이런식의 순수성 논쟁과 맞닿아 있다.

 

 

. 위안부 책임 희석의 논리와 세월호 책임 희석의 논리 사이의 유사성

 

세월호를 둘러싼 책임 문제는 여성평화기금에 이르는 90년대 일분 정부의 책임 회피 논리와 많이 닮아 있다. 여기에서도 철저히 경제주의적 시각과 책임 회피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고, 사실 그것의 질적인 측면에선 훨씬 저열하기 그지없다.

우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경제주의적 접근은 크게 두 층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접근이며 하나는 여론 형성의 차원이다. 전자의 경우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사건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지닌다. 사건의 해법과 책임의 이행은 단지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다. 언론과 일부 네티즌들이 유포하는 보험금 문제, 보상금 문제를 이런 논리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식의 인식에서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하고 있는 책임과 진실규명의 요구는 그저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이기적인 활동으로 전락한다. 이는 앞서 위안부 문제에서 여성평화기금의 보상방식, 그리고 송신도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의 사과 요구에 대한 조소에 담겨 있는 정서와 일맥상통하다. 그리고 하나 여론 형성의 차원에서 경제주의적 접근 역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다. 세월호 참사 이후 5월 초순부터 보수적인 언론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의 경제적 후파, 내수시장과 소비심리의 위축 이야기에 모락모락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론 형성 과정에서 보수 언론이 가진 강한 헤게모니는 머지않아 바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점점 세월호 참사를 유벙언과 구원파의 문제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유가족과 피해자들 그리고 외부세력의 행동에 지나치다는 의견들이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경제주의적 접근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활동을 철저히 공격하고 평가 절하하였고, 그들의 도덕적 기반마저 침식시켰다.

또 하나, 책임 회피의 논리 역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다. 책임 회피의 논리는 크게 국가 책임 인정 여부에 따라 나뉜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책임 회피의 논리는 현 정권에 대한 책임 추궁 불가를 주장한다. 즉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이명박 정권을 위시한 지난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달려왔던 과거 정권에 있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지 만 1년이 갓 지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의 구조적 책임을 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 이 첫 번째 책임회피 논리의 요지이다. 이는 마치 위에서 언급한 현 아베 신조 내각의 총무상 다카이치 사나에의 발언과 유사하다. 즉 과거 정권(과거 세대)의 오류와 실책을 왜 현재 정권(현재 세대)에게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고는 국가를 매우 파당적이고, 인격화해서 이해하는 논리적 전제의 오류를 갖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비단 민형사적 책임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이 존재한다. 그리고 국가의 책임과 정권의 책임을 등치시키는 오류 역시 존재한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박근혜 정부에 요구하는 책임은 박근혜 개인과 김기춘 개인에 대한 책임 요구가 아니다. 그들이 국가라는 기구, 체제에서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요구를 박근혜, 김기춘 개인에 대한 책임 요구로 오독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는 사건의 책임이 갓 들어선 현 정권이 아니라 이전 정권에 있다는 식의 사고가 가능한 것이다. 이미 이야기 했듯이 이 구조적 책임은 단순 한 인격이나 파당에 대한 책임과 다르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져야하는 책임은 이 구조적 책임이다. 이것은 과거 정권이 국가라는 구조 속에서 수행한 규제개혁정책 대한 책임이며, 그리고 현 정권이 바로 그 정권의 체제를 계승하는 정권이기에 더욱 분명히 져야 하는 책임이다.

과거 히틀러 나치스 정권의 홀로코스트와 폴란드 침략과 이후 서독 사민당 정부의 사과는 이런 면에서 아주 중요한 사례를 제시한다. 나치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이후 독일은 4대 연합군에 의해 분할, 직접 통치를 겪게 된다. 그렇기에 서독은 나치당의 독일제국과 국가 체제로서 구분되는 점이 있다. 그럴히게 서독 그것도 과거 나치에 저항했던 사회민주당 내각이 사과와 책임을 표하는 과정을 우리는 구조적 책임의 실천 과정이란 맥락으로 이해하고 주목해야 한다. 빌리 브란트의 사과가 가능했던 것은 이전 시대의 국가, 구조적. 책임의 문제를 한 개인의 인격, 파당에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비록 서독이 나치독일을 명시적으로 승계하지 않더라도 서독이란 국가와 나치독일은 독일사의 흐름과 맥락,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의 경험에서 하나의 선상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이전 국가의 이름으로 이뤄진 침략과 범죄에 대해서 책임과 사죄가 국가 체제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이행할 의무가 서독에 있는 것이다. 결국 빌리 브란트 정권이 폴란드에 참배하고 사과 한 것은 서독 국민들이 그리고 서독이란 국가가 발 딛고 있는 역사적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 정권은 이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순수한 피해자라는 허상 역시 세월호에서 비록 크게 드러나진 않더라도 곳곳에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를 문제 있는 배를 저렴한 배삭으로 이용하려던 이들이 당한 사고로 이해는 이들이 세간에 존재한다. 이는 마치 위안부 문제를 자발성과 기만성의 잣대로 분할하려는 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사실 이는 어떤 반박을 할만 한 가치도 없는 문제제기다.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시장에서 개인이 비슷한 효율에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향유하려는 것을 하나의 선으로 취급하지 않았나? 세월호 희생자들이 배의 문제를 인지하고도 자발적으로 탔건, 모르고 속아서 탔건 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애시당초 그런 배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관리 체계와 운영의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점이다.

세월호 참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 모두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문제는 바로 자명한 책임의 문제에 대해 이를 부정하고 폄하하고 희석하려는 조직적, 지적, 정치적 시도가 이어지고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놀랍게도 양국의 정치 구조, 권력 구조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즉 세월호 참사와 위안부 문제는 양국의 정치와 사회에 내재된 어떤 모순이 드러난 계기이며, 그것의 변화를 촉발 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위안부 문제의 배상 방안으로 일본 측이 추진한 여성평화기금 역시 세월호 참사의 수습 방안의 한 모델로 집권세력에 의해 제시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특별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배상을 논의하는 것은 다소 시기상조로 여겨질 수 있다. 현재에 더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전반이다. 하지만 선체의 인양이 요구되고 정부와 청와대에 대한 조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완전한 진상규명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결국 국가는 스스로의 책임을 온전히 지려 하지 않을 공산이 크고, 현실적인 배상을 위해 여성평화기금과 같이 관영 기금도 민영 기금도 아닌 모호한 형태의 배상 기금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비록 국가가 세월호 참사에 직접적 책임이 없지만 국가가 국민이 겪은 부당한 희생과 피해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질 것이며, 다수의 선량한 국민의 협력과 모금이 이런 국가의 선의와 함께하는 여성평화기금식의 배상 모델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이 세월호 참사와 위안부 문제 사이의 유사성 내에 존재한다.

 

 

. 나오며

 

그동안 이 글은 위안부 책임 문제의 도래와 여성평화기금의 형성 과정을 살피며 이 과정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 문제에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았다. 두 역사적 사건 모두 책임의 문제에 있어 많은 유사한 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새월호 참사에는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재난과 사고가 국가 책임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존재하며, 이는 이전의 사건과 세월호가 구분되는 가장 분명한 특징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세월호 참사의 수습 과정의 종착역으로 아시아여성평화기금과 같은 형태의 무책임의 배상 체계가 존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비록 일본의 여성평화기금이 와다 하루키와 같은 양심적 지식인과 활동가들에 의해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지속되며 나름 개인과 집단의 대표로 어느 정도의 책임을 다 하려 노력한 것에 비해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날 것으로 우려하는 국민모금 모델은 그정도의 양심과 책임마저 부재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의 경우 위안부 문제가 이른바 국체의 책임 문제로 이어진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수준과 맞닿아 있는데 비해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의 경우 세속화된 권력의 정당성, 안정성 문제와 맞닿아 있기에 국민모금식의 배상 체계가 들어선다면 그 과정은 여성평화기금 보다 훨씬 부도덕할 공산이 크다.

다른 한편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1990년대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열린 증언의 시대와 거기서 나온 증언들이 동아시아 전체에서 하나의 역사적, 정치적 합의와 공통의 기억, 지역적 이니셔티브로 나아가지 못한채 개별적인 증언으로 노화되고 마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90년대 중반 전후 50주년을 전후해 이른바 과거를 미화하고 현재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일련의 보수 우익의 운동이 존재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새역모에 의해 추진된 역사 교과서 집필이었다. 이후 일본 사회에서 과거 전쟁과 침략, 가해의 기억과 책임이 착근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경제적 위상의 불안정화, 중국의 부상, 민족주의적 적대의 심화와 맞물리며 일본의 우경화와 더불어 이른바 보통국가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피해자에 의해 증언된 고통의 기억이 사회적으로 착근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이러한 일본의 경우와 함께 5.18과 민주화 운동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기억투쟁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 하나의 성찰적 계기로 남아야 할 세월호 참사가 진상 규명과 책임 규명에 실패하고 책임에 수반되는 배상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할 경우 생떼 같은 목숨들이 남긴 그 무언의 증언 역시 뿌리 내리지 못할 것이다. 국가의 무책임과 자본의 탐욕, 관료의 무능과 부도덕한 언론이 낳은 세월호 참사는 과연 어떻게 수습 될 것이며,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학생회는 대리인이 아니다.

최근 국 선언에 관해 인제대와 울산대에서 벌어진 일들은 상당히 주목할만한 경우이다. 두 곳 모두 총하갯ㅇ회는 공통적으로 학생들의 여론 수렴의 부족을 근거로 시국선언 참여를 거부했다. 물론 시국에 대한 인식과 접근, 입장에 차이는 있지만 이 두 대학의 총학은 모두 공통적으로 학내 여론 수렴의 문제를 거부의 이유로 들었다.

문득 예전의 두 사례가 생각난다. 하나는 내가 졸업한 학과의 일이다. 내가 졸업한지 좀 되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터졌을 당시 난 아직 학과에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왜 영남대 사학과(아 나의 사학과는 죽고 역사학과라는 남이 거기 있더라..)는 왜 이 문제에 대해 대자보나 입장이 안나오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였다. 일부에서 이에 대해 학과 학생회의 참여를 촉구하였지만 당시 과 회장은(사실 누군지도 모른다 ㅜ 난 화석..) 전체 학생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당면한 역사학계에 대한 모욕과 도발을 넘겼다.
이에 되게 비교되는 사례는 바로 2007년 대선 당시 내가 있던 문과대 학생회가 2007년, 2008년 집행부의 이름으로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경우다. 우린 어떠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린 학생회를 과연 정파적으로 전유한 것인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학생회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유한 것이라면 난 욕을 먹어도 싸겠지만 우린 학생회가 단순한 대리인, 대행자가 아니란 판단 하에 그렇게 일을 진행했다. 과거 전대협 이래 현재 한대련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통적 학생운동의 흐름 속에서 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하되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대리하는 곳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입장이 존재하였고 이 입장과 의지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대표했으며 학생들도 그런 학생회 집행부를 선출했다. 이는 일종의 리더십과 팰로우쉽 관계가 구축되었고, 학생회의 고유한 입장과 판단에 대한 재량권이 부여된 것이다. 고로 우리 07년 일촌맺기 학생회 집행부나 08년 참 학생히 집행부가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였다 하여 우린 단과대 2800명의 정치적 의사를 박탈하거나 왜곡하였다고 보기 힘들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차이다. 대의 기구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이해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즉 대의 기구 자체의 주체성, 의지가 존재하는 것이고 대중은 대의기구를 이를 바탕으로 선출하고 지지한다. 대중들 속에는 이 의지, 주체성의 내용에 반대하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입장과 의지의 차이가 입장이 다른 이들의 주체성에 대한 박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전체 학생들에 대한 여론수렴이란 논리는 왜 등장한 것일까? 이는 결국 학생회 더 나가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정당 정부 등을 대리자로 이해하는 데에서 연유한다. 즉 그 조직 자체의 의지, 주체성을 소거하고 구성원들의 개별적 의견 모두를 수용하고 따르는 역할로 학생회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회의 정치적 문으력, 무채깅ㅁ에 대핸 정당화 기제인 동시에 일부에 의한 전유를 근거로 공공성을 무력화 하는 시도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식의 대리 논리가 팽배하다. 여기서 우린 민주주의가 '단지 모두의 이야길 듣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리더십을 부여받고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면 때론 대중의 의지나 요구와는 다소 시간차가 있더라도 먼저 책임지고 치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후에 평가받고 결과에 대해 책임 지면 되는 일이다. 이러한 구조 원리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하고 고민하지 않기에 '여론수렴'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안그래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학생회의 타임테이블을 고려할때 여론 수렴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임기를 마무리 할 것이 자명한데도 여론 수렴을 핑계 대는 것은 그냥 하기 싫다는 것에 대한 우회적 선언이다. 그리고 이 대리 논리는 이런 정치적 무책임, 무능력, 면피를 정당화 하고 있다.


11월 1일오후 5시 30분 작성

서울대 학생이 쓴 서울에서 집회 전략을 보고 예전에 하이네였나..여튼 비교적 직전의 촛불 정국때 비슷한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 시민들은 시청 광장에서 즐겁게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놀이터를 열고, 소위 말하는 선수들은 강남, 신촌, 수유, 건대 앞, 대학로, 영등포 등에서 게릴라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학생의 구상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의 선상인듯 했다.

그 내가 사랑하는 소설이자 영화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분한 그레고리우스가 찾은 아마데우 프라도의 묘비에는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라는 글귀가 세겨져 있었다.

국가가 일부 지배집단에 전유당하고, 공적 권력의 공공성이 침해당하며 정치가, 제도가 다시 재권위화 될때 저항은 공민의 의무다. 저들을 쓰러트리고 저들을 끌어내리는건 의무다. 하지만 건곤일척의 승부, 모든 역량을 한 곳에 모으는 일점 돌파의 승부로는 아주 작은 결과만을 얻을 뿐이다. 지속성 있고 생활공간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떠들고 노래해야 한다. 비록 세상이 개판이라도 우리가 안죽었다는 걸 외쳐야 한다. 그 길은 광화문에서 외치는 청와대로 가자..그 사이다 같은 구호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길이다.


11월 3일 오전 1시 33분 작성.


지상담병(紙上談兵):제갈량 증후군

  

기원전 260, 삼진(三晋)의 분립으로 일어서서 한때 진()에 대적할 만큼의 대국으로 중국 화북에 우뚝섰던 조()의 세력이 한 판 싸움에 꺾여 버린다. 진의 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장평 전쟁은 햇수로 3년 간 진과 조의 대치 속에서 지구전으로 흘러 갔다. 진의 대장으로 가는 곳 마다 승리하여 사신의 이미지였던 백기가 이 지구전을 타파하기 위해 새롭게 대자응로 부임했지만 조의 노련한 명장 염파의 지구책 앞에선 이전 같은 시원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에 백기는 조나라에 소문을 낸다.

조나라에는 염파와 더불어 또 한명의 명장이 있었다. 조의 선왕인 조 혜문왕 당시 혜문왕의 동생인 평원군에 기용되어 진의 한 공격을 놀라운 인내와 결단력으로 물리친 마복군 조사였다. 그런 조사에겐 온갖 병서에 통달한 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들이 마복군의 뒤를 이어 조나라의 명장이 되리라 여겼지만 조사는 자신의 아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뽐내기 좋아하고 거만하다 하여 장군이 되지 말라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백기는 지구책으로 이 전쟁을 팽팽하게 이끄는 염파를 끌어내리기 위한 반간책으로 아직 어떤 경험도 없는 조사의 아들을 이용한다. 조나라에는 백기가 염파가 아니라 조사의 아들 조괄을 두려워 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조 효성왕은 재상 인상여와 조괄의 모친의 간언에도 단호히 염파를 대신하여 조괄을 대장군에 임명하여 백기에 대항토록 했다.

결과는 많은 이들이 아는 조군의 궤멸이었다. 조나라의 무령왕과 혜문왕 시기의 강고한 조나라군은 지구책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선 조괄의 선택에 모두 몰살당하고 포로가 되어 40만명이 일거에 생매장 당한다. 이 한번의 인사에 이제 조나라는 과거 전국 칠웅의 패권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로부터 종이 위에서 군을 움직인다며 조괄을 비웃는 지상담병이란 성어가 나오게 된다.

 

사실 이런식의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 하다. 요컨대 삼국지의 마속이나 하후무, 조상, 염우를 위시해 무수히 이런 경우를 본다.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과시하고,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며, 자신이 재능 있으나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 정도가 공통점일 것이다. 한신이나 이목, 육손처럼 일거에 재능을 인정 받고 중요한 위치에 기용 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그들이 재능을 인정 받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의 그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조괄과 같은 부류와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인터넷의 발명과 월드와이드웹의 확산은 인류 문명사에서 한번도 경험한적 없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공간에 대해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기대했다. 적어도 이 공간 내에서는 누구나 같은 말 할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 말과 목소리의 값이 같은건 아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소비주의와 고독의 낙원에서 정치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속에서 나오는 제갈량병이다. 그것은 일종의 경도된 확신이며, 자기 인정의 욕망이며, 자신에 대한 도취였다. 정치를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이럴 줄 알고~~”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의 탁월함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인정 받는 것에 갈급해 하는 그런 이들의 모습이다.

예측과 분석은 그것을 제시하는 이 개인의 탁월함만을 위할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일이 이리 되고 저리 되리라 보는 이유에는 설사 어떤 비관적 상황이 오더라도 근본적으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을 이뤄내기 위함이다. 중요한 것은 A는 망한다, B는 어디에 배치된다 등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끼치는 파급을 살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제갈량병을 앓는 이들 상당수는 분석과 예견, 혜안의 탁월함을 위해 정작 우리가 그것을 고민하는 목적을 상실한 이들이 많다. 조괄은 병법에 밝고 통달했지만 결국 그 아비와 달리 40만이 넘는 이들 그리고 더 나가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이어지는 그 목숨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조의 40만은 땅 속에 파묻쳤으니 비록 종이 위에서 악의와 관중을 넘나든다 해도 결국 그것의 근본적인 목적 없이 그 재능만을 갈구하고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개인에게도, 그가 속한 조직에도 별로 좋은 영향은 안 될 것이다.

 

지진의 교훈

​​1. 독점의 폐해
전체 인스턴트 메신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카톡, 둘이서 검색, 광고 점유율 합쳐서100%에 가까운 다음과 네이버. 통신부문까지 이번 위기에서 가장 먼저 무력화 되었다. 생태계는 다양성과 혼종이 안정을 이룬다.

​​2. 우리는 시스템과 국가를 믿을수 있을 것인가?
여름 내내 소음이던 재난 메세지는 정작 최악일수 있는 재난 앞에선 요지부동이었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고. 핵발전소에 대한 우려와 불신은 높아졌다. 세월호-후쿠시마 시대의 국가와 국가가 제공하는 시스템이 무엇이었는지 사람들은 의외로 뼈 속까지 학습되어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론은 이미 우리의 뼈와 살 속에서 지워져가고 있다.

​​3. 신도시라는 재난
대구로 치면 상인 성서 안심 범물, 수도권으로 가면 일산 평촌 등등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신도시 초기세대에 지어진 성냥갑 아파트들은 지진이 조금 강하면 훅하고 무너질꺼다. 그 아피트 중 하나에 살아서 더 무섭다. 내진은 커녕 부실시공만 아니면 좋겠다.

​​4. 탈핵!!
이런데도 원전을 해야할까. 물론 즉각적인 탈핵은 불가능하지만 단계적인 탈핵이 필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21세기 대부분의 지진은 핵발전소가 밀집한 이 지역에 밀집해 있고 노후 원전 비율도 높다. 생산성등의 이유나 즉각적인 전기료 인상은 불가능 하더라도 어쨌든 핵발전을 세워야 한다. 폐로와 탈핵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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