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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변절론(을 쓰기 위한 초고)

변절론(을 쓰기 위한 초고)


1. 2007년에서 2008년 넘어가는 무렵이었는지 조금 더 지나 2008년 봄이었는지 모르겠다. 졸업을 앞뒀는지 졸업을 했는지 종욱이형이 대학원 직한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고, 석원이형은 얼마전의 선거에서 단대 감사위워장이 되었다. 병우형은 갓 시작한 연애로 즐거워 보였고, 난 뭐 학생회 막내인생 시즌2를 시작했던것 같다.

인문관 4층, 감사실이라 불리는 골방에 나는 세 선배들과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 소재는 뜻밖에도 김문수와 이재오 등 소위 말하는 변절한 이들.

사실 당시만 해도 적과 아군, 우리편과 나쁜놈을 거의 선과 악에 대입해서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던 나한테 그 '변절'이란 것의 존재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그때 종욱이형과 병우형이 이재오와 김문수가 왜 변절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사실 이 질문의 중요성은 그러고도 제법 흘러서 이해한다.) 그러자 석원이형은 원래 그들이 그런 인간이었다라고 강력한 확신의 조로 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때가 시작이었던것 같다. '과거'에 대해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이걸 설명해보고 싶다.


2. 시간의 영속성을 의심하는 날은 다른 의미에서 사람이 고정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날일 것이다. 너무나도 뻔하고 통속적 표현이지만 세계에 영원한 것은 없다. 당시 감사실 골방에서 내게 '영원할 것'만 같던 선배들은 요즘은 얼굴 조차 보기 힘들다. 정치적 입장 역시 그런것일 테고.


3. 누군가는 내게 이야기했다. 1990년대 초, 동구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북의 실태가 드러나고 특히 북의 대홍수와 대기근 그리고 김일성의 죽음, 문민정부로의 이행이 변절의 가장 중요한 기원이라고, 이 말은 여전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린듯 하지만 왜 이게 틀린지 논증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대개 인간의 사고 구조는 '믿은 것'을 '믿기'위해 그것이 틀렸음에도 '믿을' 근거를 찾는 동물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념과 지향의 위기가 있다고 해도 나름 자기 인생의 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기억과 경험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 내지 동지들과 했을 결의와 선언의 무게란것이 습자지 한장 무게는 너끈하게 넘겠지? 그리고 사실 "나는 변절한다."라는 자기 선언이 말 처럼 그렇게 쉬운 것일까? 나름 노동운동, 재야운동, 반유신 운동을 하며 그토록 적대하고 저주했고 비판하고 죽이고 싶었을지 모르는 이들과 같은 배를 타는 결정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걸 우린 다 알고 있다. 그런면에서 단순 북과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가 변절이라는 현상을 만들었다는건 설득력에 결함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4. 누군가 조사와 대규모 면접 같은걸 해보면 좋겠다. 우리가 소위 "변절"했다는 이들의 심리와 그것을 내적으로 정당화 하려는 노력들을 말이다. 예전에 누구였더라 뉴라이트의 한 대장이 자기는 주체사상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체사상이란 것에 대한 가치판단 이런거는 필요 없어 보인다. 단 이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많은 이들은 그런 식의 자기 정당화를 하고 있을것 같다. 그것들을 모아보면 어떤 변절의 심리학 같은게 나오지 않을까? 그걸 추적하다 보면 그들이 왜 과거와 단절된 삶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번외개소리1.
소시적에 민주화 운동, 민중운동, 노동운동 등등 하셨으면서 4,50대가 되어 가족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부동산에 투기하고 주식에 투기하는 것은 변절일까요 아닐까요...급 궁금

번외개소리2. 역시 난 원리주의 근본주의랑 안맞어....

여튼 변절이란 선택을 한 사람을 욕하는건 무척 쉽다. 씹어서 어제 먹은 돼지갈비 결 처럼 찢고 빻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런데 그들의 그 선택을 설명, 이해 하는 시도는 어렵다.(이해가 받아들이란게 아니라고 사족 달아야 하는..) 많은 선배님들, 선생님들 이야기가 듣고 싶은 밤이다.

김문수의 수성 갑 출마 이후 여러 반응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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