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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누가 책임 질 것인가

누가 책임 질 것인가?(영대신문 1614호)



이시훈(본색 소사이어티 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1. 24년전, 19915월 서울의 대기는 19876월 이래 가장 치열한 학생들의 가두시위와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대립 속에 뿌옇고 매캐한 최루탄 가루가 학생들의 구호로 가득했다. 426, 등록금 문제 해결을 요구하던 명지대 학생들의 가두시위 도중, 아직 새내기 티가 역력한 한 경제학과 학생이 쇠파이프로 무장한 백골단의 무차별적 폭행으로,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이름은 강경대, 그의 죽음으로 전국의 대학생들은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가장 강경한 싸움에 나서게 되었고 열사 정국, 분신 정국, 5월 열사 투쟁으로 불리는 이 싸움의 과정에서 11명의 학생, 청년, 노동자 등이 분신하는 사상 초유의 연쇄 분신이 일어나게 된다.


2. 죽음과 열기, 분노, 최루탄이 가득하던 그해 58, 전민련(전국민주민족운동연합) 사회부장이 서강대에서 분신 후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한다. 11명의 연쇄적인 분신 과정에서 김기설의 죽음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당지 재야 민주화세력의 구심점으로 있던 전민련 간부의 분신을 검찰과 경찰은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몰아갔다. 즉 누군가 김기설의 죽음을 조장, 방조하고 그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것이고, 이는 즉 노태우 정권을 위기로 몰아가던 5월 열사 정국을 뒤엎고,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의 도덕성을 공격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이 유서대필 및 자살 방조를 했다며 그를 기소한다.


3. 간암으로 투병 중인 한 사내의 이름이 다시 세간에 나타난 것은 23년만의 일이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현실에서도 그는 그가 과거에 국가와 검찰, 경찰에 의해 씌워진 굴레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세상에 나타났다. 결국 그는 24년 만에 대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를 판결 받았다. 하지만 무죄가 주는 감정은 매우 양가적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온당한 판단이었으며 동시에 어떤 벅참과 환희를 안겼다. 하지만 동시에 그 판결에 이르기까지 걸린 지난한 시간들 그리고 죽어가는 당사자의 파괴된 삶들은 그 판결을 마냥 즐거워하지 못하게 한다.


4. 24년의 세월이 흐르며 6명의 대통령이 바뀌었고, 시대의 외연은 24년전 서울을 읽어내기 힘들 정도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에 책임져야 할 이들과 국가는 책임지기는커녕 너무나도 안온하고 잘 지내고 있어 보인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후에도 국회의원을 거쳐 근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는 대법관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거쳐 모 대학의 재단 이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수라를 진행했던 검사 역시 검사장을 지내며 명예롭게 은퇴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이 부당함을 외면했던 언론들은 아직까지 국내 메이저 언론으로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이런 개인의 책임을 넘어 국가 역시 강기훈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려하지 않고 있다. 사건이 노무현 정부 말미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다시 재론 되고 대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이 난 지금에도 국가는 한 마디 유감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과거 인혁당 사건 등의 사례에서 민사적 배상의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과연 배상금일까?


5. 일본의 철학자 다카하시 데츠야는 책임을 뜻하는 “responsibility”의 뜻풀이를 통해 책임을 고통 받는 이에 대한 응답 가능성이라고 정의했다. 만약 그의 규정을 따른다면 책임을 외면하는 이들은 강기훈의 고통을 외면하고 응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부른다. 100년도 넘은 그란데 아르메(프랑스 육군)의 명예에 대한 허위와 반유태주의 정서가 만든 이 사건을 되짚어 볼 때 우리는 이 사건을 폭로하고 보복성 좌천을 당한 조르쥬 피카르 중령과 나는 고발한다.’라는 팜플렛으로 이 사건에 관한 여론을 바꾼 에밀졸라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들의 모습을 진실이나 정의에 대한 실천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부당하게 고통 받고 있는 타자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이들의 노력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뻔뻔한 프랑스 정부와 육군을 상대로 드레퓌스 석방을 이끌어 냈다. 역사적 순간은 마냥 돈 있고 권력 있는 이들의 선의와 자발적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따지는 이들의 노력이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적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응답을 요구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보도연맹, 인혁당, 광주, 박종철, 강기훈에서 세월호로 이어지는 무책임의 역사를 종언케 하는 역사를 이루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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