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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미론(味論)-어느 냉면집 이야기

촌놈들이 대구 음식이 맛없다 카는데 그건 맛난 음식을 안먹어서 그런거다. 갠적으로 대구는 역시 국수랑 육개장!ㅋ 요즘은 영혼의 고향 안지랑. 찜닭과 짬뽕의 성지네 뭐네 하지만 육개장은 나름 역사성도 있고 와자와 구분되는 고유한 '맛'도 있다.
벙글벙글에서 육개장 한 입 해보면 양파랑 계란 푼 서울 육개장은 육개장이 아니라 소고기국임을 알게된다는 지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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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하면 대개 앞의 쪽글에 이야기했듯 육개장, 갈비찜, 곱창, 짬뽕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대구에는 나름 서울의 어지간한 냉면명가에 밀리지 않을 냉면집들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부산안면옥이다. 예전부터 짐작하기로 이 집이 피난 와서 부산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려니 햇는데 근래 가게 입구에 붙은 점포의 역사를 보니 원래 북에서 안면옥이란 이름으로 냉면을 하다가 피난때 부산에 와서 지금의 상호인 부산안면옥이란 이름을 달고 냉면을 팔았고, 대구로 와서 지금의 자리에 자리 잡은지가 제법 오래 되었다고 적혀있었다.


뭐 냉면집 역사 이야길 하려는 것은 아니고.


난 이집 냉면을 매우 좋아한다. 메밀 냄새 풀풀 나고 닝닝한 국물의 물냉면과 쫄깃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면발과 뭔가 부산에서 많이 먹은것 같은 양념장 그리고 맛난 명태회가 올라가는 비빔냉면을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대개 이 집에 오면 비빔냉면을 먹는다. 그것은 이 집 비빔냉면이 하나의 고유명사로 내 머리 속에 굳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A라는 메뉴를 연상하면 "가"라는 가게가 떠오르듯 이 집은 내게 비빔냉면으로 각인되어 있다.(그렇다고 물냉면을 안먹는건 아니다. 주로 비빔을 먹는거지)


이제 한 열흘 된 일이다. 본소 모임날이었는데 모임 후배 둘과 함께 이 집에 냉면을 먹으러 갔다. 함흥식 둘, 평양식 하나.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이집 냉면은 우리가 고기집이나 분식집에서 먹는 냉면을 흉내낸 음식과는 미감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인지 물냉면을 먹은 후배가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고 나와 다른 후배의 비빔을 한저씩 맛 보더니 비빔이 자기 입맛에 더 맞다고 하고 난 냉면의 유래와 변천에 관한 대하 서사를 풀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우리 옆 테이블에서 물냉면 두 그릇을 먹고 있던 할매들이었다. 그중 한 할매가 물냉면을 먹는 후배에게 "물냉면 어때요?" 라고 물었고 후배는 "제 스타일은 아닌것 같아요"라고 외쳤다. 아마 맛은 없는데 내 입장 생각해 맛 없다 못했는것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이까지면 괜찮은데 그 할매가 아 이게 무슨 냉면이고 냉면이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고 라면서 계속 궁시렁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아 사실 우리에게 '맛'을 묻기 전에 이미 그 할매는 인근한 강산면옥 물냉면을 상찬하고 있었기에 난 그 할매의 <물냉면 정체성>을 어느정도 간파하고 있었다.

<이게 그 부산안면옥의 비빔냉면이다. 위는 물냉면 사리 추가분, 닝닝한 육수에 메밀 냄새가 킁킁 풍긴다>


내가 이 이야길 새삼 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그 닝닝한 평양냉면의 유구함과 위대함, 미감을 상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맛"에 녹아 있는 어떤 해석 권력을 그 장면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은 생각보다 다층적이다. 이미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혀가 느끼는 미각이란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른바 5미라 불리는 전통적인 미각 사이에서의 조합과 균형이 미각에서의 맛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후각, 시각 그리고 혀와 입술, 잇몸의 촉각 그리고 그 음식과 나 혹은 그 음식을 매개로 한 관계들일 것이다. 대개 나이 든 이들에게 맛은 휘발성 강한 기억을 회상케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대개 일반적인 맛에 대한 지향은 가장 마지막의 관계 요소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즉 누구와 먹고, 얼마나 익숙하게 자주 접했는가가 한 음식의 맛에 대한 맛 경험이 음식의 맛 있음과 맛 없음을 결정짓는 강력한 단서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맛 역시 (사회적)구성물일수 있다. 단 그 구성원리가 다층적일뿐이다. "이것이 맛이야"라는 지배적인 맛 선언이 있을수도 있을 것이고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맛 의식이 형성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좀전의 할매들은 지배적인 물냉면맛에 경도되어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맛을 배제하려 한 것이다. 그들의 경험세계에서 물냉면은 강렬한 다시다와 설탕, 식초, 소금, 간장, 겨자, 양념장으로 점철된 것이었고 원형에 가까운 물냉면의 그 순수한 닝닝함과 걸래 쌂은 향은 맛이 아닌 것이다.



한편 또 "맛"에 관한 재밌는 경험을 하나 했는데, 위의 사진은 내가 대학원을 다니는 학교 앞의 죠스철판이라는 음식점이다.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양념에 재워 여러가지 야채랑 하여 철판에 볶아낸 곳인데 음식이 좀 짜고 조미료맛이 있었지만 나름 양도 푸짐하고 음식질도 제법 준수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걸 같이 먹은 대학 후배가 이야기 하기로는 학교 졸업생 중 학교 주변과 대구를 대상으로 페이스북에서 맛집 페이지를 운영하는 이들이 이 집을 맛 없는 집으로 낙인 찍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후 내 주변의 반응에서 많은 이들이 이미 이 가게에 대해 강력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맛의 해석권력이 직접적인 "맛 경험"이 아니라 그들이 인용하는 사회적 자원에 의해 결정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여튼 난 이런쪽으로 전문은 아니지만 사회학이나 여론 연구하는 이들이 이런 것을 하나의 주제로 경험저 연구를 진행해보면 어떨까 싶다. ㅎㅎ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