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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정념적인, 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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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텀페이퍼 땜시 끙끙 앓던 처음에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블록에 관심이 있었는ㄷ 지금 내 의문은 신자유주의의 파산 선고에서 불구하고 왜 명백한 대체 축적 체제가 등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부 포스트 케인즈로 가는 냄새는 풀풀 풍기는데 뭔가 새 판을 짜는 시도가 하나의 현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리자의 사례는 사실 '승리'에 대한 어떤 주의주의적 갈구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시민의 60%가 고난의 길을 지지하게 하고 나름 트로이카에 빅엿을 먹이는 과정들 자체의 의미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그리스 그리고 수 많은 나라들이 처한 이 상황에서의 탈출구다. 그런면에서 치프라스와 바루파키스는 아직까진 보여주진 못했다. 아 한가지는 분명하다. 일국적 케인즈 주의는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하다는거 정도를 보여줬을려나?
많은 선배 동료 활동가와 지식인들이 시리자의 집권과 이후 행보에 희망을 느끼지만 동시에 시리자의 행보에는 우리가 풀지 못하는 숙제도 존재한다. 자본이 전 지구적으로 운동하는 현실에서 운동, 주권, 연대, 민주주의 등 우리가 나름 그것에 대항하는 전략들은 그다지 국제적으로 운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또 개별 국가들이 놓인 상이한 조건과 맥락은 그것들의 장애물로 작동한다. 그런 상황에서 시리자에게서 희망을 얻는것에 회의적이다. 오늘 새벽의 투표가 나름 문명사적 의미가 크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지만 이규철 옹의 말마따나 그것이 만드는 결과는 독일에서 슬로베니아에 이르는 유럽회원 국가 상당수의 긴축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의 중요성에 별 관심없는 진보진영 일부에 대한 환멸도 든다.)

2. 새삼 느끼고 스스로도 반성하지만 세계는..칼 슈미트식으로 이야기하면 적과 동지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더 많고 무한한 공간들로 가득차 있다. 큰 틀에서 우리편, 큰 틀에서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때론 그 아군이 적보다 위험할때가 있다. 오늘 이규철옹과의 통화에서 다시 느끼지만 극단을 선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그것을 바꾸는 과정에선 역시 수사나 문학적 접근, 정념적 관점을 경계하는게 옳은듯 하다. 나는 그토록 레토릭만 남은 공허한 적대를 비판하며 나 스스로는 문학적 비판만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 본다. 그렇다고 인간성을 거세하자는 것은 아니고 ㅎ

3을 적으려다 말이 많다 싶어서 이만...
아 피곤하다. 하루종일 뭔가를 했는데 자기전에 손에 남아 있는건 없다. 아 머리 갂은것 정도가 성과려나...아침에 소수의견 예매했는데 과연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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