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담병(紙上談兵):제갈량 증후군

  

기원전 260, 삼진(三晋)의 분립으로 일어서서 한때 진()에 대적할 만큼의 대국으로 중국 화북에 우뚝섰던 조()의 세력이 한 판 싸움에 꺾여 버린다. 진의 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장평 전쟁은 햇수로 3년 간 진과 조의 대치 속에서 지구전으로 흘러 갔다. 진의 대장으로 가는 곳 마다 승리하여 사신의 이미지였던 백기가 이 지구전을 타파하기 위해 새롭게 대자응로 부임했지만 조의 노련한 명장 염파의 지구책 앞에선 이전 같은 시원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에 백기는 조나라에 소문을 낸다.

조나라에는 염파와 더불어 또 한명의 명장이 있었다. 조의 선왕인 조 혜문왕 당시 혜문왕의 동생인 평원군에 기용되어 진의 한 공격을 놀라운 인내와 결단력으로 물리친 마복군 조사였다. 그런 조사에겐 온갖 병서에 통달한 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들이 마복군의 뒤를 이어 조나라의 명장이 되리라 여겼지만 조사는 자신의 아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뽐내기 좋아하고 거만하다 하여 장군이 되지 말라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백기는 지구책으로 이 전쟁을 팽팽하게 이끄는 염파를 끌어내리기 위한 반간책으로 아직 어떤 경험도 없는 조사의 아들을 이용한다. 조나라에는 백기가 염파가 아니라 조사의 아들 조괄을 두려워 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조 효성왕은 재상 인상여와 조괄의 모친의 간언에도 단호히 염파를 대신하여 조괄을 대장군에 임명하여 백기에 대항토록 했다.

결과는 많은 이들이 아는 조군의 궤멸이었다. 조나라의 무령왕과 혜문왕 시기의 강고한 조나라군은 지구책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선 조괄의 선택에 모두 몰살당하고 포로가 되어 40만명이 일거에 생매장 당한다. 이 한번의 인사에 이제 조나라는 과거 전국 칠웅의 패권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로부터 종이 위에서 군을 움직인다며 조괄을 비웃는 지상담병이란 성어가 나오게 된다.

 

사실 이런식의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 하다. 요컨대 삼국지의 마속이나 하후무, 조상, 염우를 위시해 무수히 이런 경우를 본다.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과시하고,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며, 자신이 재능 있으나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 정도가 공통점일 것이다. 한신이나 이목, 육손처럼 일거에 재능을 인정 받고 중요한 위치에 기용 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그들이 재능을 인정 받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의 그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조괄과 같은 부류와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인터넷의 발명과 월드와이드웹의 확산은 인류 문명사에서 한번도 경험한적 없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공간에 대해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기대했다. 적어도 이 공간 내에서는 누구나 같은 말 할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 말과 목소리의 값이 같은건 아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소비주의와 고독의 낙원에서 정치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속에서 나오는 제갈량병이다. 그것은 일종의 경도된 확신이며, 자기 인정의 욕망이며, 자신에 대한 도취였다. 정치를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이럴 줄 알고~~”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의 탁월함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인정 받는 것에 갈급해 하는 그런 이들의 모습이다.

예측과 분석은 그것을 제시하는 이 개인의 탁월함만을 위할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일이 이리 되고 저리 되리라 보는 이유에는 설사 어떤 비관적 상황이 오더라도 근본적으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을 이뤄내기 위함이다. 중요한 것은 A는 망한다, B는 어디에 배치된다 등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끼치는 파급을 살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제갈량병을 앓는 이들 상당수는 분석과 예견, 혜안의 탁월함을 위해 정작 우리가 그것을 고민하는 목적을 상실한 이들이 많다. 조괄은 병법에 밝고 통달했지만 결국 그 아비와 달리 40만이 넘는 이들 그리고 더 나가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이어지는 그 목숨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조의 40만은 땅 속에 파묻쳤으니 비록 종이 위에서 악의와 관중을 넘나든다 해도 결국 그것의 근본적인 목적 없이 그 재능만을 갈구하고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개인에게도, 그가 속한 조직에도 별로 좋은 영향은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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