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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로봇과 러다이트

며칠 전, KBS에 로봇이 만들 미래 세대에 대한 토크가 나왔다. 거기에 나온 과학자, 공학자들은 로봇이 만들 시대에 대해 너무나도 아름답고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그런 미래상으로 이야기 했다. 사실 보는 내내 그들의 그 유토피아적 기대가 어처구니 없고 불철저한 사고라고 비웃으며 봤었다.

 

과연 로봇은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누군가는 나에게 공학의 출발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이념에 있음을 이야기 했다. 그래 어쩌면 공학은 그 목적을 달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가혹한 육체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대신 더 무서운 고통과 마주해야 했다. 우리는 대개 유럽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러다이트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제임스 와트 이래 자동화된 공작 기계가 출현하고, 반자동화된 대량생산의 토대가 발생한 첫 결과는 전통적인 수공업 노동자들이 공장 노동자로 전락한 것이었다. 이런 경향은 나날이 강화되었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중엽 테일러리즘이라는 노동관리 기법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포드주의 생산관리 기법으로까지 나아갔다. 우리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목도했듯, 인간은 노동에서 나날이 소외되고 과거의 육체노동과 또 다른 형태의 고통에 놓이게 되었다.

 

로봇이 발전하면 어떨까? 지금이야 로봇의 움직임이 인간의 그것에 비해 섬세하지 못하고, 로봇을 만드는데 있어 매우 정밀한 제조 과정이 요구되지만 인간 근육, 관절, 신경에 대한 연구와 이들의 로봇에 대한 응용, 부품의 미세화 정교화, 유기화는 다수의 생산직 노동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이미 지금도 상당수의 공정은 로봇이 대체하고 있지 않나?) 심지어 인간을 대하는 영역들조차 아마존의 드론 택배가 보여주듯 점차 로봇이 들어오는 영역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당장 약국, 회계 등 우리가 아는 많은 직업들이 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자본가는 자신의 이윤 창출과 비용 절감을 위해 그들의 선조가 자동화 기계에 대해 그랬듯이 초기 투자를 감내하고서라도 로봇을 설치 할 것이다. 그나마 현재 진입 장벽이 되는 초기 투자 비용도 3D 프린트와 같은 새로운 제조 메커니즘의 도입을 통해 간략화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과연 로봇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 전망은 로봇의 전면적 배치는 과거 노동자들의 선조들이 그러했듯, 또 다른 러다이트와 소외로 이어질 것이란 것이다. 자본은 결단코 로봇을 인간의 행복과 편의, 복리증진만을 위해 활용하지 않을 것이다. 명목상으론 행복과 편의, 복리증진 등이 걸리겠지만 그 내부의 기제는 분명 더 많은 이윤, 더 적은 비용일 것이고, 이는 굳이 머리를 많이 굴리지 않아도 자명해 보이는 사실이다.

 

로봇이 전면에 배치되는 순간, 인간이 경제 부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물질을 매개하지 않는 노동이 될 것이다. 컨텐츠와 플랫폼을 만들고, 기획하고, 설계하고, 그리고, 창조하고, 변화시키고, 개발하는 것만이 인간의 일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면 인간은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의 축적, 관계와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으로 몰리게 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누군가는 미래 사회에 학벌은 무의미할 것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로봇이 전면화 되는 사회에서 지식은 권력이 되고, 학벌은 권력에 접근할 가장 분명한 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처럼 공고 가서 대 공장에 들어가 생산직으로 큰 돈 벌 수 있는 시대가 저문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지식에 접근하고 이를 응용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결론..미래는 사교육 시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