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의 이전'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가?

0. 이건 오늘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와 대구광역시 청년위원회가 주관한 세미나를 다녀오며 든 몇 가지 소회와 의구심에 대한 정리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정식 글을 좀 내볼까 하는 고민 역시 존재한다.

0-1. 오늘의 핵심 주제는 지방 청년 문제이다. 주변의 분들은 주지하다시피 이 문제는 내가 한국 자본주의나 한국 사회운동사와 더불어 가장 뿌리내리고 사는 주제란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오늘 세미나에서는 유감스럽게'지방-청년'이라는 한국 사회에서의 고유한 층위를 가진 집단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것이 '지방' 따로 '청년' 따로 논다는 느낌을 너무나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일부 발표는 너무나도 개별 사례 중심으로 진행하며 자신이 제시한 물음에 대해 정교하게 풀어나가는 과정이 거의 결여되어 있어 큰 아쉬움이 있었다.

'아래로의 이양'의 당위와 그 실천으로의 결함.

내 의문을 한 문장으로 풀어내면 결국 이 문제이다. 한국에서 지방분권이란 담론은 크게 지방정부와 그 아래 단위로 중앙의 권력과 자원, 결정 능력을 이양 시키는 것에서 부터 단순히 지방정부의 역량과 자율성 강화(연방제를 포괄하는)으로 그 수준과 상이 나뉜다. 문제는 이것이 청년 문제와 같이 거대한 ‘축적 체제’ 수준의 문제에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물음이다. 오늘의 주제가 ‘지방 청년 문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부 식민지로 지방의 문제와 청년의 문제는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의 문제이다. 선택과 집중, 집적이라는 핵심적인 공업화 전략은 지역 간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 되었다. 이는 마치 지난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언술한 바와 같이 맏아들이 대학가서 잘되면 그의 대학진학을 위해 희생한 모두에게 좋은 기회와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이 대학 간 아들이 가정을 일으켜 세워 모두 행복할 것이라는 전통적 이데올로기의 확장판이었다. 한편 지방은 끊임없이 서울의 사례를 가져와 그것을 모델로 삼아 쫓아가고, 서울은 더 나아가 글로벌한 사례들을 가져와 외국을 모델로 그것을 쫓아가는 2중의 따라잡기(Catch up)이 작동했었다.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된 지방과 서울 간의 의료 격차 10년설은 이 2중의 따라잡기 구조의 본질을 유효하게 잘 보여준다.
문제는 과거 국내의 이 이중구조가 하나의 리그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의 지방과 서울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리그로 나뉘어버렸다. 수리와 같이 특정한 지경학적 이점을 요구로 하지 않는 사업들은 나날이 수도권으로 이전하여 집적과 집중이 주는 이윤의 수혜를 향유하였고, 어느새 지방에는 수도권으로 옮겨간 핵심 산업의 수직계열화된 생산 네트워크의 하부 요소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윤율과 노동의 질은 철저히 최상단의 서울 소재 대 자본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지방이 산업과 경제 그리고 인식과 에토스로부터 소외되고 멸시 되는 것은 이런 거대한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로 속에 있는 것이다.
청년은 어떤가? 청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초기 공업화 단계를 지나 기술과 시설 투자가 고도화 되고 ICT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생산공정에서의 노동 탈각, 고성장 시기의 종식과 축적의 금융화 속에서 전통적으로 대규모 노동 공급을 흡수하던 대공장의 쇠락, 그나마 있는 대공장들이 수도권과 남동권 일부 해안지대로의 이전과 같은 맥락 속에 놓여 있지 않은가? 서울에 있다는 것만으로 더 많은 급여와 사회적 평판을 향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한 지리적 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은 핵심 산업과 그것에서 나는 일자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이는 당연히 좋은 양질의 일자리의 규모의 위촉으로 이어졌고, 이를 둘러싼 경쟁이 만들어진다. 이 속에서 지방 청년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문제는 오늘의 토론이 지방 청년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지구화와 금융화라는 한 축과 국내적인 서울제국의 약탈성을 전혀 다루지 못한채 무척 표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 정부에서의 청년 조례를 이야기 하지만 여기서 청년이 하나의 ‘세대(Generation)'으로 청년인지, 특정한 ’연령집단(Cohort)'로 청년인지는 세밀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편 이 지방 정부들의 청년 조례까 청년들이 처한 의식/감정/물질적 위기들에 얼마나 유의미하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진 못했다. 물론 주요 지방정부들의 청년 정책과 그 근간에 대한 좋은 정리와 묘사였지만 이런 것이 실제로 어떤 유의성을 지니는데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실업 문제는 분명 전지구적인 축적 양식과 생산과정의 변화로부터 연원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방 혹은 국민국가 내의 하위 단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용에서 탈락한 자들에 대한 구제와 원호, 탈상품화된 재화의 공급과 재교육의 제공 정도일까? 좀 더 하면 해당 지역의 공공부문에서의 고용을 증대하는 정도는 가능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론 이 거대한 청년 실업과 유출 문제에 분권이 유의미한 해법이라 할 수 있을까? 실천적 문제에 있어 너무나도 형편없을 정도로 텅 빈 공백지가 우리 앞에 내던져저 있는데 답은 다소 공허하고 원론적이다.

지구화에 내포된 다양한 정책적, 정치적 변화에 지방과 하위단위로의 권력 이양이 대응책이 된다면 그것은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와 이 축적 양식 외부를 만드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내향적 발전이란 개념만으로는 이를 대체하지 못한다. 한때 기대 받던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섹터가 사실상 기각 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권력을 아래로 이양하는 분권의 정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응은 초국가적인 유동하는 자본에 대항하는 초국가적인 연대와 연합은 아닐까?

분권은 정말 우리가 처한 청년 문제에 유의미한 해법일까? 분권이 이것을 해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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