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은 정말 우리가 처한 청년 문제에 유의미한 해법일까? 분권이 이것을 해결 할 수 있을까?

 

 

 

0. 어제 지방분권추진운동 대구경북본부 주관 세미나에 다녀온 이후 분권이란 화두에 포획되어 그에 관한 사고의 연쇄에 갇혀 버렸다. 이는 오늘 오전까지 이어진 이 보잘 것 없는 사고의 연쇄애 대한 메모이다.(http://seehun.tistory.com/439 에서 이어진다)

 

어제 난 청년 문제나 내부식민지화 된 지방의 문제가 단순 분권이라는 정치, 행정적 혁신만으로는 해소가 불가능 함을 지적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제조업 대공장과 같이 노동공급을 흡수 할 수 있는 산업의 문제, 대학이 한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위상의 문제이며 그 근대국가가 자본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지적했다.

결국 내부식민지로 지방의 문제나 청년 문제 역시 일정한 한국 자본주의의 경로 속에 놓여 있으며 여전히 난 이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분권의 유효함에 대해 불신과 회의를 갖고 있다.물론 그렇다고 지방분권이란 당위의 유의미함과 그들의 활동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문제라고 제시한 현상과 그에 대한 해법 사이의 타당함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지배 계서의 최상단(이자 동시에 이것은 평면에선 센터이다)에 독점된 권력을 그 하위 단위로 하향 이양 하는 분권이 과연 이 권력 독점과 집적, 집중이 만든 문제들을 유의미하게 해소 할 수 있을까? 물론 분권은 지역의 왜소화와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는 분명히 시사점을 지닌다. 하지만 분권이 이뤄진다 하여 이 내부 식민지 구조와 서울 제국으로 표상되는 수도권 집적 체제가 종결을 맞을 수 있을까?

과거 브래튼우즈-GATT 체제 시기 한국의 군부 반공권위주의-발전국가라면 인위적으로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자본과 생산 체인을 정치적으로 배치 하고 배분 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의 달러월스트리트-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가 과연 자본에 대해 그런 정치적 압력을 얼마나 행사 할 수 있는지는 무척 회의적이다. 그런데 하물며 일개 국가 보다 작은 하위 단위가 권력을 이양 받아 이를 수행한다? 무척 의문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재정을 좀 더 자율적으로 편성하고 행사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수도권 집적 체제의 완화나 해체로 이어진다는 논변은 너무나도 많은 중간 과정을 필요로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경제적 문제, 특히 내부식민지로 지역의 문제를 분권으로 돌파하는 시도는 사실상 유효성이 떨어진다. 물론 요컨대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이 바스크 지역의 고유한 에스닉 아이덴티티와 지역성에 기댄 국민경제 아래의 좀 자율적인 지역 경제를 도모 할 순 있을 테고, 자율성이 배가 된 재정에 따라 공공부문의 확대나 복지 공급의 효과는 증대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타파되기 힘들어보인다. 물론 지역 단위로 법인세나 최저임금 등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유치하는 시도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지만 이미 집적과 집중의 보너스를 누리는 수도권으로부터 혹은 저임금, 저지대를 향유하는 동남아시아로부터 자본과 설비가 이전하는 유인이 된다기에 그것은 좀 무리한 지점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오히려 지역화폐(LETS)와 같은 지역 내부 경제를 만드는 시도나 지역에 강한 뿌리를 둔 새로운 생산양식의 이행을 도모하는 것 역시 가능하겠지만 이는 분명히 너무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 역시 존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권, 아니 권력의 하향 이양이 이 내부 식민지로 지방(특히 지방 청년) 문제에 있어 가지는 유의미함은 상대적으로 비물질적이고 의식적인 부분, 심성적 부분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권력은 종종 행위를 하게 하는 힘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언가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옳음과 나쁨/훌륭함 내지 잘남과 후짐 등을 규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속성이 만들어내는 삶과 자존의 표준적인 형태는 늘 우리를 압박한다.그런데 이를 해체하고 가장 하위 단위인 개인들에게로 나눠버린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물론 그 이양 받은 이들이 자신들에게 그 권력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행사 할 마음가짐을 가져아 의미있는 권력이겠지만 적어도 권력의 중심이 만들어내는 보통, 표준, 일반의 잘남, 훌륭함, 멋진 삶은 좀 기각되고 다양하고 비경합적인 삶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이런 기제가 만들어내는 정상이나 보통의 그것 이외의 것들을 쉽게 환대하지 못하지 않나. 표준어라는 보통의 존재는 그들이 사투리라고 하는 우리의 언어들을 희화화 하지 않던가? 서울의 그것은 늘 지역을 후지고 낙후되고 구린 것으로 만들지 않던가? 우리가 서울이 될 수 없다면, 서울이 만드는 그 잣대와 기준을 파괴하는 것은 방법이 아닐까? 이는 우리가 의식 속에서, 마음과 심성 속에서 서울을 지양 극복하는 방법으로 권력의 하향 이양아닐까? 저 제국과 권력의 물질적 토대의 파괴가 쉽지 않더라도 그것을 지탱하는 그런 비물질적 토대들과 싸우고 그것이 이단시하던 것들을 환대하고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긍정 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구리고 후지고 못난 것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자존이 되고 환대하여 연대를 만들고 그 잘난 서울 제국을 포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아주 추상적인 망상이다. 그 구체와 실천은 사실 불분명하지만 이왕 정치적 상상이라면 단순히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과 권력, 자원을 주는 의미로 분권 보다는 우리 삶을 규율하고 제한하고 쪼그라들게 하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으로 권력의 해체와 이양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물질적 조건에 대해 타협하고 수긍하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심성과 의식 속에서 우리 자존을 조금이라도 긍정 하고 저들을 지양하고 싸울 힘이 있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이야기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수도권의 힙함과 싸우는 지방의 촌스러움을 자존으로 삼아 긍정해본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언어-비민족 세계주의는 이론 태도에서 시작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밥 먹고 이런 망상을 해본다. 그놈의 분권 때문에 다언어-비민족 세계주의까지 와버렸다. 망했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