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름, 훈육국가의 회귀(대구신문, 2015. 11. 22)
이시훈
(본색 소사이어티 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일본의 만화 가운데 ‘도서관 전쟁’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여러 속편과 외전,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나오기도 했던 이 만화는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 만화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추동력은 미디어 양화법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환경으로부터 연원한다.
21세기 일본 의회에서 통과 된 ‘미디어 양화법’은 미풍양속과 건전한 사고를 헤치는 것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일본 정부의 특무 기관에 의한 검열과 검속을 합법화한 법이었다. 그리고 이 특무 기관 양화대에 의한 무차별적인 검열과 언론, 출판, 표현, 예술 탄압에 대항하여 특수한 치외법권 구역으로 도서관을 보호하는 도서관법이 성립되게 된다. 그리고 만화는 양화법을 집행하는 양화대와 표현과 출판,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는 도서관대의 대립과 갈등,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의 성장을 버무려 이야기를 풀어간다.
만화가 상정하는 세계관과 설정들은 다소간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 맥락은 단지 신선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웠던 만화의 세계를 하나의 ‘예언’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만약 이 억지스러운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이렇게 풀어낸다면 어떨까? “국가가 자율적으로 국민이 수용하고 접해도 되는 건전하고 올바른 사상과 이념, 가치와 정신, 윤리와 세계관을 취사선택하고 제약하며 규율하는 그런 사회”, 만화는 그렇게 오래된 우리의 경험과 조응하여 하나의 ‘예언’이 되었다.
2008년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 이후 이어진 7년여의 보수 정부는 끊임없이 국민들의 사고와 의식에 대한 감시와 개입을 이어왔다. 특히 현 정부에 들어 그러한 경향은 정점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과 군의 특무 조직이 국민을 상대로 수행한 인터넷 심리전(이라 적고 선거 개입이라 읽어야 마땅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카카오톡 감청 문제 그리고 근래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이런 경향과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아마 국정화 된 역사 교과서의 제목에 구태여 ‘올바른’이란 수사가 들어간 것만 보더라도 집권 보수 세력이 시민과 세계를 특정한 이념과 가치, 규범들로 재편하고 재단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도서관 전쟁’ 작중의 일본이 미풍양속과 국민의 선량함을 지킨다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 하에 모든 창작과 언론, 출판을 검열 검속했다면 한국 정부와 집권 세력은 우리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어떤 기준들에 의해 세계를 검속, 검열, 편집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 전쟁’이 보여주는 또 다른 예언은 단일한 가치와 질서로 시민의 사상과 이념을 재단하는 시도가 어떻게 급진화 되고 폭력적, 억압적으로 작동하는지에 있다. 양화법에 맞서 도서관법이 만들어지고 도서관과 출판,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도서대가 활동하던 초기에 벌어진 양화법을 지지하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한 도서관 습격 사건으로 도서관을 지키던 이들 다수가 죽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도서관과 양화법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도서관 전쟁’의 후속 작품들에서 양화대는 더욱 더 강고한 집행을 위해 여러 사건들을 조작하여 사태를 심화시킨다. 이런 과정은 절대화되고 경직된 교조, 즉 도그마가 낳는 필연 같은 것이었다.
한국은 이미 오랜 시간 군부 권위주의를 경험하며 가부장적인 훈육국가의 지배를 겪어왔다. 국가와 지배 집단은 그들이 설정한 가치와 올바름을 향해 끊임없이 시민들이 걸어가도록 채찍질 했고, 그 길에서 벗어나거나 그 방향을 거부하고 다른 길을 지향한 이들에 대해 ‘빨갱이’ ‘간첩’등으로 부르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한편 그런 훈육국가는 국가와 지배세력의 낮은 정당성과 구성원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연유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민을 외부의 위협과 오염으로 지킨다는 일은 다른 말로 그 만큼 그 체제와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결국 현 정부와 집권 세력이 만들어가는 일련의 훈육국가는 시민들이 지니는 다양하고 다원적인 가치체계와 행동 규범, 그 개개인들이 모인 사회에 대한 집권 세력의 불신이 전제되어있다고 봐야한다. 고로 언제까지나 시민들이 훈육되고 보호하고 계몽하고 계도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은 그런 질서의 마지막을 예고한다. 우리는 파시즘과 전체주의, 메카시즘 그리고 미국 네오콘 이래 우파들의 애국주의가 어떻게 득세했고, 어떻게 급진화되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체제인지 기억하고 있다.
잊지 말자, 특정 가치의 절대화와 과잉 강조야 말로 그것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징조다. 국정화 교과서의 제목에 구태여 ‘올바름’이 들어간 사실만큼 그것의 올바름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징조가 없다는 것을.
(원본 링크: http://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18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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