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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지방시에 대한 소회를 빙자하여 적어보는 지방대 문제

지방시에 대한 소회를 빙자하여 적어보는 지방대 문제



난느 열렬한 지방시 독자였다. 비록 얄팍한 지갑사정으로 책을 사보진 못했으나 과거 연재는 늘 꼬박꼬박 챙겨봤었다. 아주 짧게나마 한교조 영남대분회 선배들 신세를 지기도 했고, 학부때부터 비전임 강사, 연구자 선배들께 들은 이야기, 다른 대학 대학원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읽어 나갔다. 물론 우리 대학원은 분위기가 엄청 좋다. 사적인 일을 시키시거나 하는 경우도 없고. 여튼 지방시는 특히 초기 대학원 이야기는 내 이야기 보단 나와 멀지 않은 남들의 이야기로 몰입해서 읽혔다.


그런데 그의 신원과 학교가 밝혀졌다. 그는 소위 원세대라 불리는 연세대 원주캠에서 학위를 했고 그곳에서 강의를 했다. 그런데 순간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연대 원주캠을 온전한 의미의 지방대로 볼 수 있을까?


한국의 지방대학은 2중의 차별과 배제의 구조 속에 놓여 있다. 하나는 수도권과 지방의 구조다. 요컨데 우리는 대개 지역 보단 지방이란 말을 익숙해 한다.그런데 이 지방이란 말은 확고한 중심부를 전제한 말이다. 즉 중심부로서 수도권과 주변부로써 지방이 존재하는 것이다. '방'이란 말 자체가 과거 천자나 왕을 세계에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일컫는 말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에 비해 지역은 이런 권력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비교적 수평적이고 병렬적인 개념이다. 동시에 한국에서 이 지방과 수도권의 관게는 명백한 피식민의 관계다. 한국의 발전국가의 신화가 만들어낸 현실은 수도권에 대한 집적과 집중, 과밀화다. 수도권은 지방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사람과 자원, 공장, 자본, 문화 심지어 우리 동네 이마트는 쓰레기처리 업체 조차 분당에 있을 정도다. 그러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환류되는 것은? 그런게 있을리가 없다. 문제는 서울에 사는 이들은 이런 제국으로서의 서울을 자각하기 힘들다. 서울 촌놈 대부분은 지역과 지방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감각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도 적었듯이 그들 대부분은 대구나 부산 보다는 동경이나 북경을 더 가깝게 느낀다. 근본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이 제국과 식민모국으로 서울의 내부자다. 부단히 깨닫고 노력하고 의식하지 않는 한 그들 대개는 그저 그렇게 내부자로 살아간다. 여튼 이런 결과 피식민 중에서도 물적 토대가 좀 견고하게 있는 울산, 창원, 부산이 있는 PK나 서울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누리는 충청도 북부 지방 정도만이 이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두번째 지방대 문제에는 학벌의 문제가 존재한다. 학벌의 문제는 불과 90년대 중반 학번때만 해도 완전히 수도권-지방 관계와 겹치지 않았던것 같다. 요컨데 서울대를 못가서 부산대나 경북대를 가는 일들이 있었고, 연고대를 못가면 서상한 중경외시가 아니라 영남대나 조선대, 동아대를 갔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외환위기 등 여러 계기들은 지방대의 대학 배치표가 전국적인 배치표의 한 하위분류가 도게끔 했다. 더이상 서울대와 부산대, 경북대는 불과 30년 전에 누리던 비슷한 조건과 인풋을 향유할 수 없다. 부산대나 경북대는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인풋에서 비교하기 힘들었던 대학들과 경쟁하고 혹은 그보다 하찮게 여겨지고 있다.

좋은 학벌만이 자기 삶을 자력으로 바꿀 기회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지방대가 더이상 그런 학벌이 주는 기회구조로 부터 소외 된다는 것은 지방대 자체가 2등 시민이 뛰는 2부리그가 됨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한국식의 실력주의와 맞물려 지방대에 다니는 이들이 자책하고 죄인처럼 살고, 패배자 처럼 살게끔 한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에 대한 열등감, 부러움 등이 뒤섞인 <서울병>을 앓고 지낸다.


여튼 난 지방시의 그 지방이 온전한 2등 시민들이 뛰는 2부리그로 지방인지에 대해 어떤 의문을 가진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어떤 의미에서 2부 리그로써 지방 대학이 지니는 고유성의 발현인지, 아니면 우리 대학 전반의 보편적인 현상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그의 글들에서 2부 리그가 가지는 묘한 정념이 강고하게 읽히지 않는 것 역시 그런 위화감의 원인 일 것이다. 오히려 그는 1등 시민 내부의 타자에 가깝고(이것은 2등 시민과는 다르다.) 동시에 보편적인 대학 문제에 놓여 있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여튼…


다시 생각 해본다. 지방대학 문제, 우리는 지금의 이 시대를 가능케 한 발전국가의 신화가 사멸하는 거대한 역사를 목도하고 있다. 며칠전 서울대 학생의 자살에 대한 미래한국 편집위원의 언행이나 무슨 멘토링 프로그램에 나와서 말한 자칭 메릴린치 수석부사장의 언동은 죽어가는 신화의 유산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신화 속의 감각으로 이해되기 힘들어 보인다. 더이상 경쟁과 적자생존, 각자도생, 실력주의 만으로 새로운 역사를 열 수 있을까? 난 새롭게 열릴 역사가 지방대에 갔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열패감에 젖지 않으며 환대 받고 연대 하고 다시 또 다른 이를 환대 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 시대 였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 수도권 제국주의와 학벌주의라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배하는 우리의 의식과 삶의 조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한국은 더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겪을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구조화되어 가는 저성장과 불안정 노동 속에서 더이상 좁은 통로를 향한 경쟁이 아니라 그 통로에 들어서지 못한 이들에게도 환대와 연대가 이뤄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과 각성, 기획이 필요해보인다.


* 분명한건 수도권 대학 흉내내기로는 답이 안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