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박노해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외로워도 슬퍼도 죽지 마라
괴로워도 억울해도 죽지 마라

시위하다 맞아 죽지도 말고
굶어 죽거나 불타 죽지도 말고

가난한 자는 죽을 자격도 없다

가난한 자는 투신해도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가난한 자는 분신해도
아주 차가운 눈빛 하나

가난한 자의 생명가치는 싸다

시장에서 저렴한 너는
잉여인간에 불과한 너는
몸값도 싸고 꿈도 싸고
진실도 싸고 목숨마저 싸다

가난한 자들은 죽을 권리도 없다
죽으려거든 전태일의 시대로 가 죽든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가 죽든가

제발,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선진화의 시장에서는 죽지 마라
돈의 민주주의에서는 죽지 마라

아, 가난한 자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우리 죽지 말고 싸우고
죽을 만큼 사랑하자

가난한 우리는 가난하여 오직 삶밖에 없기에
사랑으로 손잡고 사랑으로 저항하고
죽을 힘으로 싸우고 죽을 힘으로 살아가자

제발, 가난한 자는 죽지 마라

박노해 아저씨 사진전이 10일에 끝난단다..그전에 내가 올라갈 확률은 희박하다...영어 수업을 다 버리고 가야 하는데 내가 과연 갈 수 있겠나...

대낮 울적한 맘에 박씨 아저씨 글귀 하나 던져본다...비록 그의 글이 주는 울림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박씨 아저씨는 여전히 박씨 아저씨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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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며, 참으로 쓰라린 일이다.


행복을 잃기는 무척 쉽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언제나 분에 넘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여, 너에게 중요한 비밀을 한 가지 말하겠다.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지 마라.

마지막 심판은 언제나 항상 일어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읽고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 알베르 카뮈

스승 장 그르니에 '섬'의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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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들렸다가 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가 주고받은 서한집을 감히 샀다.(돈도 없는 놈이 책 살때는 언제나 용감하다. 후회가 곧 돌아오는건 문제 되지 않는다.).....문득 절친한 선배가 올린 이 글을 읽으며 이번엔 섬을 읽어야 겠따는 의지가 발동한다...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무허가



송경동

 

 

용산4가 철거민 참사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 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텐트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출처] 송경동-무허가.|작성자 외론늑대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 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박노해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어느 날
...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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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더라, 문학나눔의 시배달에 이 불온한 시가 올라온적이 있었다...
2008년 초였나...한참 학교 다니며 어떻게 살아야 내 신념과 가치에 충실히 살 수 있을지 대가리 굴리던 그때, 그때의 고통속에서 이 시가 내게 준 울림이란.... 
생각의 힘
 
박노해
 
생각이 있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
생각으로부터 사람의 길이 열리고
빛과 사랑이 동터오른다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를 유혹할 악마조차 필요없다
모두가 휩쓸려 가는 길로 던져져
이미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기에
 
불운 속에서도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자
가난 속에서도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자
생각의 힘을 가진 자는 어찌할 수 없다
생각한 대로 사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
 
아. 생각이 있는 자는 어찌할 수 없다




  난 소위 말하는 외골수 꼴통이다...조직, 공동체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주는 고통에 너무 민감하다. 그것이 주는 따뜻한 품을 사랑하지만 때론 그것이 가진 집단주의에 환멸을 느낀다...

  아마 이런 나의 모순적 감정이 내 생각의 힘이겠지....생각이 때론 크게, 때론 작게 다름에도 끊임없이 만남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겠지...

  난 그 따뜻한 품을 가졌으나 규율과 권력, 권위가 아닌 다른것이 녹아든 그런 품을 찾고 있다...아마 그런곳이라면 내 이 변두리적 사고, 주변부적 발상, 또라이적 기질이 민들레처럼의 그것처럼 조화될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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