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시간은 짧고. 평범하고 그저 그런 시간이 삶을 지배한다. 모두들 찰라의 자극이 영원하길 꿈꾸지만 실상 그들은 이 반복적이고 무미한 일상을 견뎌내며 살아야 한다. 꽃은 짧고 생명은 길다.

인간 신체의 설계자가 만약 있다면 그들은 아마 고강도로 계속 되는 자극과 쾌감이 결국 그 자극의 소중함을 망각토록 함은 물론 마침내 자기 파괴적일 정도의 자극을 갈구하게 되어 삶이/생명이 파괴 되리라 걱정 한것 같다. 그렇기에 자극의 쾌감이 어떤 식으로도 자연스럽게 자기 피괴의 말로를 딛지 않도록 자극과 쾌감을 제한하게끔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인간 신체의 섬세한 설계자들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자극과 쾌감 속에서도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다반사에 적응 하길 바란 이들일 것이다. 화려한 꽃 보다는 늘 무던히 이어지는 그런 시간에 적응 하길 바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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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스파르타 국가 체제와 교육의 근본적인 결함은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이상 및 가치관과 스스로의 삶의 구조나 그것을 둘러싼 환경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결함은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나 이상 자체가 왜 좋은 것이고 왜 이상적인 것인지 그것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반성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떠한 삶의 양식이나 행위의 훌륭함도 그것의 보편적 의미를 인간 스스로가 반성적으로 체계화 하지 못하는 한, 다시 말해 삶의 구체적인 상황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지식이나 원리로 체계화 하지 못하는 한, 인간들은 조그만 상황의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러한 가치나 이상을 영속적으로 실현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양승태, 2006, 앎과 잘남, 책세상, 306-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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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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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배움이나 지적 능력이 약해서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의 책을 읽지 못한다. 전통적인 문장과 다른 그들의 문장을 읽을때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왔다. 그래도 훌륭한 형님 모시고 열심히 귀동냥한 결과일까? 지난번 날 좌절 시켰던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머리맛과 뒷부분 몇페이지를 찬찬히 읽는데 성공했다.

사실 읽은 소감이란건 뭐랄까 "와 내가 해냈다. 글줄 몇페이지를 드디어 읽을수 있다"라는 것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소름 돋음 같은것이었다. 이 날은 국정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확인이 있었던 날이다. 그리고 그날 갑자기 이걸 시도 해보고 싶었고, 머릿말엔 아래와 같은 글줄이 있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저 난해하고 복잡한 녀석이 나한테 온것 같다.

-------------------------------
자크 데리다, 진태원 역,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 2014. 12~13p.

(전략)
그러나 그들과 함께, 함께-존재하기 일반을 어느 때보다 더 우리에게 수수께끼처럼 만드는, 이러한 거기에 함께가 없이는 어떠한 타자와 함께-존재하기도,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없다. 단지 이러한 유령들과 함께 존재하기는 또한, 단지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기억과 상속, 세대들의 정치일 것이다.

만약 내가 환영들과 상속에 대해, 세대들 및 환영들의 세대들에 대해, 곧 현존하지 않으며 우리에 대해서나 우리 속에서 또는 우리 바깥에서 현재 살아 있는 것들도 아닌 어떤 타자들에 대해 길게 말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다. 아직 그것이 있지 않은 곳, 아직 그것이 거기에 있지 않은 곳에서, 그것이 더 이상 있지 않은 곳에서(그것이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곳에서라고 이해하기로 하자), 그것이 결코 법이 아니며, 법/권리로 환원될 수 없는 곳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타자를, 또는 아직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현재 살아 있는 것들로 존재하지 않는 타자들-이들이 죽은 이들이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든 간에-를 원칙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어떠한 윤리도 어떠한 정치도 (혁명적인 정치든 아니든 간에) 가능하지 않고 사고 불가능해 보이는, 그리고 정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순간부터, 환영에 대해, 심지어 환영에게 그리고 환영과 함께 말해야 한다. 모든 현재 살아 있는 것을 넘어서있는, 현재 살아 있는 것을 이접(disjointe)시키는 것 안에 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이미 죽은(그들이 전쟁의 피해자든 아니든 간에, 정치적 폭력이나 다른 폭력, 국민주의적·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성차별적 절멸이나 다른 절멸의 피해자든 아니든 간에, 또 자본주의적인 제국주의나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적 억압의 희생자든 아니든 간에) 사람들의 유령들 앞에 있는 어떤 책임의 원리 없이는 어떠한 정의도-어떠한 법도락 말하지 말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법‘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능하거나 사고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살아 있는 것/생생한 현재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비동시대성 없이는, 현재 살이 있는 것/생생한 현재를 은밀하게 어그러지게 하는 것 없이는, 거기에 있지 않은 이들, 더 이상 현존하지도 살아 있지도 않거나 아직 현존하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사람들과 관련된 정의에 대한 존중 및 이러한 책임 없이는, “어디에?’, ‘내일은 어디에?, ”어디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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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게

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 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 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도고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 테니

---
시인이자 활동가인 한유미 선배님이 페북에 나희덕쌤의 '뿌리에게'를 올려주셨다. 저 흙의 사랑과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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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길을 찾는
더 갈길없이 떠도는 형형색 모래알처럼
나도 그 길 걸어가
어린왕자 되어
장미꽃처럼 넌 뜨겁지는 않아도
나에게도 그런 사람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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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단편. 페이퍼맨(paperman)


그녀의 색은 세계에서 독보적이고
그녀에 닿기를 바라는 갈망은 약간의 우연, 선택과 어울려 기적을 만든다.


그런데 내가 네게 닿기엔 거리가 너무 먼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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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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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경산이 39도 찍던 그 날 아침에 가창댐에 있었던 한국전쟁 시기 가창골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위령제를 다녀왔습니다.

중간에 대구 10월 문학회(10월항쟁을 기리는 문학회입니다.) 선생님들이 쓰신 시를 낭송하시는데 그 중에 이정연님이 쓰신 시가 유달리 귀에 들어와서 여기에 옮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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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세상


이정연(대구 10월 문학회)


우리는 왜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는가

아우슈비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스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몸부림치며 벽을 긁은 손톱자국이 보이는 듯한데

경대병원으로 병문안 가던 삼덕동 어느 골목이나

여름 운피스 사러 현대백화점 가던 반월당 어디쯤에서

1946년 10월에 쌀을 달라, 친일경찰을 처단하라고 외치던

군중의 무리 속 누군가와 내 발자국이 똑같이 포개졌을지 모르고

그 발자국의 주인이 멀지도 않은 가창골에서 학살되어

가창댐 아름다운 수변공원 아래 수장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는가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땅과 쌀과 밥그릇을 빼앗고

아비와 아들과 딸을 빼앗고

이름과 글과생각을 빼앗고

한용운과 이육사와 윤동주를 빼앗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은 기억하면서

1950년 여름, 한 번에 서른 명씩 하루에 열 번

한 달 동안이나 쓰리코타에 실어간 사람들

해방 후 필요 없어진 무기 재료 코발트 광산을 다시 열어

수직굴이 가득 차도록 집어넣고 탄광을 봉한 후

육십 년이 넘도록 모른 척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고개를 들고 보라,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고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

우리가 만든 2014년을

어느 한 군데 마음 놓고 숨쉴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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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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