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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정운영 선생님의 대학 신입생을위한 에세이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학, 대학인, 대학 생활……. 마치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 선율처럼 그 말에 벌써 생명과 환희가 흘러 넘칩니다. 풍성하고 유익한 대학 생활을 통해서, 4년 뒤 교정을 떠날 때도 지금의 이 생명과 환희를 그대로 맛보도록 미리 기원합니다. 오늘 신입생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서, 평소 제가 가진 생각과 이미 여기저기서 꺼낸 얘기를 바탕으로 대학이란 깊고 그윽한 주제를 한 번 풀어 보려고 합니다.



  1. 대학


  우선 대학이란 무엇인가? 그런 질문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대학에 대해 숱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물론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공식적인 답변은 이렇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재산의 소유권 처리 같은 법인의 일상적인 권한 외에 대학의 구성원을 징계할 권위를 보유하며, 의회에 두 명의 의원을 파견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법인체이다.


  대학이 기껏 재산을 관리하고, 구성원을 징계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라니……. 원, 이렇게 멋이 없어서야 환희와 생명은커녕 어느 한 구석에 정이 가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누가 “대학이 뭐지요?”라고 물을 경우에 대비하여 저도 이런 대답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 “대학은 공부하는 곳입니다.” 이 대답에는 공부를 만들어 내는 연구와 그 연구 결과를 나누어 주는 교육이 들어 있습니다. 원고지를 앞에 놓고 생각을 가다듬으면 한참 현학적인 얘기를 엮어 내겠지만, 그래도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란 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인류 문화의 창달에 공헌하는 지성의 산실 따위의 고상한 대답을 기대했던 여러분의 얼굴에 실망스런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그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그 대학이 또 공부하는 곳이라니 여러분의 실망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화여대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의 씁쓸한 한숨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대학의 목적은 공부하는 것, 즉 지식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좀 심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두부 공장에서 두부를 만들어 내고, 구두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어 내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두부와 두를 팔아서 번 돈으로 장학금을 주거나 이웃 돕기 성금을 내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모두 두부와 구두를 만든 다음의 얘기입니다. 두부 공장과 구두 공장의 목적이 좋은 두부와 좋은 구두를 만드는 데 있는 것처럼, 대학 역시 최고의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제일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대학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생산 공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무엇에 앞서 지식 생산이란 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식 생산의 주체는 물론 교수와 연구원이겠으나, 그 지식을 ‘소비하는’ 학생들의 열의와 수준에 따라 생산은 큰 영향을 받습니다. 대학 교육은 소비재가 아닌 투자재임이 분명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경기가―대학이―침체할 때는 소비에 의한 투자 유인이 한층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상식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설정한 대학의 기능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미국의 대학과 유럽의 대학을 비교하면, 그 기능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국 대학은 우선 사회를 이끌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쪽으로 힘을 기울이는 듯한데, 유럽의 경우 그런 사명은 일단 고등 학교 교육으로 끝내고 대학은 온전히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유럽 대학의 정신적 토양을 더듬으려니 언뜻 막스 베버(Max Weber)가 강조한 직업으로서의 학문(Wissenschaft als Beruf)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미국 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유럽식 대학 개념을 지지합니다. 그것은 대학이 ‘교육 인플레이션’을 선도해서는 안된다는 이유 못지 않게, 자칫 자격증 발급처나 직업 소개소(job broker)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경계 때문입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직업을 위한 학문과는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대학이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은 대학의 교과 과정이 온통 직업 교육 강좌로 채워져야 한다는 뜻이 압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소위 말하는 지식의 폭발적인 증대와 증가 일로에 있는 전문화가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을 채워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 버렸다. 대학 시절은 장애가 되었고, 사람들은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평가한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대학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에 다닌 시간을 평화 봉사단에서의…… 봉사로 대신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 위대한 대학들이―원자를 분해하고, 가장 끔찍한 질병의 치료법을 찾아내고, 전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잃어버린 언어의 방대한 사전을 편찬하는 대학이―학부 학생을 위해 적절한 교양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수수께끼이다.


  아무튼 대학을 공부하는 곳이란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대학이 온갖 특혜를 주어 가며 운동 선수를 스카우트하거나, 봉사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거기에 학점을 주는 따위의 일은 대학 본래의 모습과 동떨어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대학의 운동 선수들은 수강 신청만 하면 ‘규정에 따라’ 특정 등급의 학점을 자동적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강의를 듣고 시험을 쳐도 낙제가 수두룩한데, 이들은 시험은커녕 출석 한 번 안 해도 제법 좋은 학점을 얻습니다. 교수가 소신에 따라 아무리 F학점을 매겨도 교무처의 컴퓨터가 알아서(?) 성적을 고쳐 놓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운동부를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라, 대학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난 탈선이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졸업장을 만들어 주는 데가 아닌데도, 그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앨런 블룸(Allan Bloom)의 탄식처럼 “졸업장을 받는 것이 학문적인 달성의 표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잘 버는 방법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사태가 빚어진 것입니다.

  봉사 활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점이란 ‘보너스’가 없이도 이제까지 학생들은 야학(夜學), 농활(農活), 공활(工活) 등 온갖 봉사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학교 당국이 정치적 또는 시국적 이유로 막아 온 것도 많습니다. 요즘 들어 몇몇 대학이 학점의 미끼까지 앞세워 학생들의 사회 봉사를 강조하고 나서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런 열성이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학점은 공부로써 따야지, 운동 시합이나 봉사 활동으로 얻어서는 안됩니다. 봉사 활동은 보이 스카우트나 로터리 클럽에 맡기고 대학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해야 합니다. 대학의 봉사는 학문과 기술 연마를 통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길 이외에 달리 없습니다. 요컨대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고, 공부 이외의 일은 부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경알을 갈면서 평생을 보낸 견인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오직 알려고만 하라”고 권고했는데, 저는 대학이 바로 이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알려는 데 용감하라”(sapere aude)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의 충고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실이야 어떻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만이 아니라 공부 밖의 다른 문제도 중요하다고 가르치는데, 대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공부가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토록 강조하는 대학 공부는 이전의 공부와 어떻게 다를까요? 이것은 대학생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우선 대학의 공부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다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어떤 문제든 거기에는 반드시 정답(正答)이 있었습니다. 다섯 개의 답지(答肢) 가운데 어느 하나가 정답으로 전제되기 때문에, 심지어 그것을 골라내기 위한 ‘눈치 훈련’까지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과서가 정한 해답 외의 어떤 반론이나 이의가 일절 허용되지 않습니다. 거기 어떤 의문이 생길지라도 교과서의 ‘정답’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에는 그와 같은 강요가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정답을 찾아내라는 횡포가 없습니다. 그 다섯 개 이외의 여섯 번째 가능성이 시험지 밖에서 기다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의 경고대로 “맹종하는 지식은 학문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미신적 ‘학문숭배’일 따름”입니다. 아예 정답이 없을 경우도 있고, 인류의 지혜로써 아직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결론을 미리 정해서는 안되며, 질문의 가능성을 제한해서도 안된다”는 야스퍼스의 권고를 따라야 합니다.

  정답이 없다는 저의 말씀에 적절한 사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런 경우를 하나 소개하지요. 벨기에 중부에 워털루(Warterloo)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1815년, 나폴레옹이 영국과 독일의 연합군에게 패배한 장소로서, 당시 격전이 벌어진 언덕과 분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워털루에 들렀다가 현지의 안내원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나폴레옹의 군대는 7만 2000명이었고, 웰링턴의 영국군이 6만 8000명, 독일군이 4만 5000명이었답니다. 프랑스와 연합국의 이러한 현저한 병력 차이는 생각하지도 않고 ‘워털루’ 하면 대뜸 웰링턴의 승리를 떠올리는데, 이런 태도는 전혀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력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사흘 동안 치른 전투에서 프랑스의 병력 손실이 2만 5000명이고 연합군의 병력 손실이 2만 3000명으로 거의 비슷한데, 어째서 이것이 나폴레옹의 패배냐는 그의 반문은 관광 안내라기보다는 차라리 역사 교과서의 ‘정답’에 대한 항의로 들렸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나폴레옹 독재의 막을 내린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는 워털루 전투를 170여년 뒤의 현지 주민들은 이처럼 전혀 다른 정서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폴레옹이 지기는 했지만, 이긴 웰링턴에 꿀릴 것이 없다는 자부(?)가 면면히 이어지기 때문이겠지요. 굳이 판단이 엇갈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가 아니더라도, 대학 강의실에서는 이런 문제와 자주 마주칩니다. 사물의 근본을 건드릴수록 혼란은 더욱 심해지는데, 사실 그런 혼란이 심할수록 학문은 바르게 발전합니다. 1861년 영국 이튼(Eton) 학교의 코리 교장이 학생들에게 한 연설의 한 구절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지식의 습득이라기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노력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실 평균적인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그중의 많은 것을 잊어버릴지라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식은 잃어버렸어도 최소한 그 그림자는 남아서 여러분이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줄 것입니다. ……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알기 위해서 이 위대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말씀 다음으로 대학의 지식이란 “쓸모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생활과 생산 현장에 당장 유용한 지식과 기술은 굳이 대학이 가르치지 않아도 다른 데서 가르쳐 줍니다. 가정이 가르치고, 직장이 가르치고, ‘자본’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만, 예를 들어 무역 회사나 금융 기관 같은 직장의 일선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대학에서 몇 년을 배우는 경제학 지식보다 전문 학원 같은 곳에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익히는 요령과 기술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이나 대학에서 전공 학문을 공부한다면, 그것은 학원이나 직장에서 배우는 실용적 지식과는 무엇인가 내용과 의미가 크게 달라야 합니다. 금방 유익하게 쓰이지 않는 지식, 그래서 사회가 가르치지 않는 지식을 배우는 기회와 장소가 바로 대학입니다.

  이 쓸모 없는 지식과 관련해서 제가 목격한 일화 하나를 공개하겠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실력과 가문이 뻑적지근한 어느 교수 댁에 점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스무 명 가량의 손님이 식탁에 둘러앉자 주인은 예닐곱 살쯤 되는 아들에게 기도를 시키더라구요. 아버지의 손님들 앞에서 잠시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하느님, 이 식사가……”라며 막 기도를 시작하는데, 교수가 즉시 “아니, 라틴어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줍은 기색이 아예 얼어붙으면서 아들이 조심조심 기도를 끝내자, 아버지는 어떠어떠한 단어의 격(格)과 어미(語尾)가 어떠 어떠하게 틀렸다고 고쳐 주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그날 좀 메스꺼웠습니다. 자식 자랑하려고 사람을 부른 것이 아닌 바에, 손님들을 그렇게 주눅들게 할 것까지야 없지 않느냐는 꼬부장한 마음도 들었구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끔 이 일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세계의 누구도 쓰지 않는 사어(死語), 완강히 버티던 가톨릭 교회의 미사조차 ‘버린’ 라틴어를 제 나라 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의 어린 자식에게 그렇게 강요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내 나름의 골똘한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일기를 쓰기에는 영어가 너무 천박한 언어여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웠다는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류의 지적 오만을 과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중요한 의미와 타산이 그 속에 담겼는지 여러 모로 생각을 더듬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를 알면 그 뿌리에서 갈라진 여러 언어를 배우기가 아주 편하답니다. 마치 한자를 알면 한국어나 일본어를 배우기 쉬운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그렇다면 뒷날 여러 외국어를 익혀야 할 필요에 대비하여 그 ‘뿌리’를 가르치려는 노력이 라틴어 기도 연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다른 기회에 저는 이 추리의 정당성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을 듯해도 실제로 사물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 있는데, 대학의 공부야말로 이와 같은 내용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전을 통해 질문의 중요성을 경험하라는 블룸의 충고는 대단한 설득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한데, 주로 명작을 교과 과정으로 삼는 곳에서는 학생들이 흥분을 맛보고 만족을 느끼며, 대학 밖의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특별한 경험이 경험 이상의 것으로 승화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경험 그 자체만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선택의 폭을 제시하고 공부 자체를 존중하도록 해 준다. 학생들이 얻는 이익은 고전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는 것인데, 이는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이 중요한 질문이 존재하던 시절에 생긴 중요한 질문들과 친숙해지고, 아무리 못해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모범을 접할 수 있으며, 그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공유할 수 있는 경험과 사색을 토대로 서로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학생의 자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대학의 ‘선각’이 필요합니다.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야스퍼스의 당부에는 이 고전 교양을 바탕으로 지향해야 할 학문의 ‘통합적’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에 언어학만 있고 철학이 없다면, 기술과 실습은 있되 이론이 없다면, 오직 무수한 사실들만 있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사상이 없다면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대학 공부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앞서 거론한 정답이 없다는 지적의 연장이기도 한데, 대학의 지식은 “대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역설이 그것입니다. 생태학자 배리 코머너(Barry Commoner)가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올바로 제기된 질문은 잘못 제시된 답변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이 바르면 언제라도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되면 해답에 이를 기회가 영영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관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미 주어진 정답을 그대로 외우기보다는 올바른 질문은 던지는 방법, 그것을 배우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진리가 무엇이며 어디로 인도하는지도 모르면서 진리만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야스퍼스의 선언에 동의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피터 스코트(Peter Scott)가 진단하는 대학의 위기는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현대 대학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아카데미즘과 도구주의…… 즉 지식 창출의 분명한 논리에 따른 아카데미즘 그리고 현대 사회의 지적 훈련 요구에 부응하도록 고등 교육에 가하는 외부 압력으로서의 도구주의는 모두 계속 강화되어 왔다. 비록 아카데미즘과 도구주의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직업적 자격증 부여(credentialisation)를 통한 노동의 형성과 현대 대학의 지적 토대의 분해 사이에 강하고 흥미로운 상관 관계가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특징들 사이에 긴장이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이런 긴장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는 방법으로 헨리 로조프스키(Henly Rosovsky)는 하버드 대학이 모든 학생들에게 1년 동안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중핵 교육 과정’을 소개합니다.


  하버드 대학생이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 졸업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종종 던져지는데,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전문가의 지도 하에 분석적이며 비판적으로 고전을 읽지 않고는 학위를 받을 수 없다. 경제학을 배우지 않고서도 졸업할 수 있는가? 그 대답 역시 ‘그렇다’이지만, 경제학을 한 분야로 다루는 사회 분석의 기초과목을 수강하지 않고는 졸업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경계할 점이 있습니다. 교양을 빙자한 교육의 낭비와 비효율이 그것입니다. 제가 겪은 황당한 체험 하나를 말씀드리지요. 저는 국내에서 대학원을 수료하고 유럽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대학에서 학부의 기초 과정에 다시 등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냐, 당신들이 아무리 대단찮게 여겨도 나는 대학원까지 거쳤는데 대학 1학년 등록이라니 하고 대들었더니, 저를 면담한 학장이 정말 당신이 대학을 졸업했느냐고 묻더라구요. 기가 막힌 저는 성적표에 영문으로 박힌 ‘서울 내셔널 유니버시티’를 가리켰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어떻게 너희 나라는 대학에서(!) 국어와 국사를 배우고, 영어를 몇 년이나 되풀이하고, 체육까지 다시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이 당시의 교양 필수 과목이었는데, 자기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이런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니 유니버시티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전문 대학이나 직업 학교가 아니냐는 의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실랑이 끝에 대학 3학년에 등록하되 1, 2학년의 필수 과목을 동시에 이수하는 것으로, 사실상 1학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으나 덕분에 공부는 착실하게 했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교수가 뒤에 생긴 교련이나 국민 윤리 과목 따위를 본다면, 아예 고등학교 등록을 권했을지 모릅니다. 라틴어와 셰익스피어만을 교양이라고 고집할 생각은 없으나, 국어와 체육이 과연 대학의 교양인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대학이란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곳인데, 그 대학 공부는 쓸모가 없어야 하고, 질문이 오히려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 관찰 외에 우리나라의 대학이 겪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역사적 체험’이 있습니다. 사회 개혁의 에너지를 공급해 온 기능이 그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 캠퍼스에 최루 가스와 돌팔매가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 여러분의 선배들은 참 많이 죽고, 참 많이 다치고, 참 많이 갇혔습니다. 경찰 고문으로 욕조에서 질식해 죽고, 온몸에 시너를 끼얹어 불타서 죽고, 척박한 조국 현실에 분노하며 성당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데모에 나섰다가 진압군에 밟혀서 죽었습니다. 귀신도 모르게(!) 심야의 열차에서 떨어지거나, 까닭도 없이(?) 바다에 빠져서 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으로써, 죽임을 당함으로써 처절하게 독재 정권과 맞섰습니다. 눈이 멀고 머리가 터지고 다리가 부러진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고, 체포․연행․구금․복역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뒤 우리가 문민(文民)이란 말이나마 입에 올리게 된 것은 실로 그 처절하고 혹독한 투쟁의 대가입니다. 제발 여러분에게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기 바랍니다만, 저는 우리 대학이 겪은 이런 간고하고 험난한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추체험(Nacherleben)을 통해서나마 그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ӧffer)는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나치에 처형당한 독일의 신학자인데, 그가 남긴 설교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가파른 외길을 오르는 버스에 여러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어린 학생도 있고, 노인도 있고, 임신한 부인도 있고, 목사도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길에 버스가 자꾸 비틀대기에 문득 운전 기사를 쳐다보니, 아 글쎄 그가 술에 잔뜩 취한 것입니다. 젖먹이를 안은 부인이 겁에 질려서 옆자리의 목사에게 속삭였습니다. 이 버스가 아주 위험하니, 술 취한 기사를 끌어내리고 목사님이 대신 운전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인, 사람에게는 저마다 직분이 있습니다. 저 기사는 운전하는 일이 직분이고, 제 임무는 이 차가 굴러 떨어진 뒤 반드시 필요할 장례 기도를 올리는 것이지요.” 사회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고개를 외로 틀고 기도나 드리고 앉은 성직자의 무책임한 자세를 꾸짖는 통렬한 야유입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목사든 누구든 그 취한 운전기사를 끌어내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버스가 추락하면 목사 자신이 죽고 마는데, 그의 기도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다행히도 우리의 대학은 이 목사와 달랐습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이 사회의 술취한 ‘운전 기사’ 이승만을, 박정희를, 전두환을, 노태우를 끌어내리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과 사명을 계승하는 일은 이제 여러분의 숙제입니다.



  2. 대학인


  대학의 기능을 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대학은 먼저 공부하는 곳이고, 다음으로 개혁의 동력을 공급하는 곳이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대학에 이어 대학인으로 화제를 돌리지요. 대학인이란 대학을 구성하는 인적 요소입니다. 그 중에는 대학 교수도 있고 행정 직원도 있으나, 오늘은 대학생 여러분만으로 범위를 좁히겠습니다. 한쪽은 가르치고 한쪽은 배우므로 교수와 학생의 ‘역학 관계’가 대등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지배․종속의 관계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지배하는 자가 베푸는 것은 교육이 아니고 복종의 강요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없다면 교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여러분은 손님이 아니고 주인입니다. 대학은 4년 뒤에 떠날 하숙집이나 여인숙이 아닙니다. 아무튼 대학생 여러분의 장래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개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는 편안히 지배 계층에 편승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스럽게 저항 세력에 가담하는 길입니다.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예전에는 가난한 집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는다는 형설(螢雪)의 공은 이들의 노력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반면에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놀기에 바쁜 녀석이란 인상이 강하게 박혔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문물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런 ‘선입견’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과는 달리 요즘은 오히려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비싼 과외 수업 덕분에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가고, 거리낌 없이 자라서 그런지 몸도 건강하고 얼굴도 예쁩니다. 대학생을 만들어 내는 힘 자체가 상당 부분 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이 사회의 지배층에 속하면 자녀들 역시 그 신분을 물려받기 십상입니다.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는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데, 아무튼 이런 억울한 처지를 벗어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교육입니다. 농촌의 부모들이 논 팔고 밭 팔아 기어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한(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내 자식한테만은 아비와 어미가 당한 설움을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비원이 상아탑 아닌 우골탑(牛骨塔)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과거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겠지만 현재의 대학생 여러분이 미래의 지배층으로 규정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소망하는 좋은 부모,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경의 배우자는 뿌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줄기에서 뻗은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은 이런 억울한 처지를 개선하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지 모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강의하던 모리스 돕(Maurice Dobb) 교수는 친지에게 “미래의 착취자들에게 현대적이고 우아하게 착취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케임브리지 대학은 영국의 지배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곳인데, 거기서 아무리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쳐 보았자 그 졸업생들은 나중에 자본가의 편에 서기 때문에 자신의 강의가 결국 쓸데없다는 처량한 고백입니다. 강의시간에는 불의에 항의하고 개혁을 다짐하지만, 일단 대학을 나서면 즉시 사회의 지배 계층에 편승하여 강의실의 결의를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런 현실이 어찌 케임브리지 대학과 돕 교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습니까?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강의하면서 저 역시 그 비슷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공정한 분배니 정의로운 사회 건설이니 하는 다짐은 강의실에서 끝내고 즉시 그 반대의 사회 현실 속에 몰입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강의실의 몫’과 ‘현실의 몫’을 철저하게 가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역이용되는 경우조차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강의실에서 노동 가치 이론 강의를 열심히 들은 누군가가 뒷날 노사 문제를 다루는 관리자의 자리에 앉아서 “아, 당신들 얘기 나도 다 배웠어. 하지만 그건 강의실의 이론이지 현실이 될 수는 없어”라고 대꾸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을 그 반대 목적에 쓰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무슨 학문은 계급성 같은 심각한 얘기를 꺼낼 마음은 없으나 여러분이 배우는 학문이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학문인지 한번 곰곰이 따져 보라는 당부는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교과서나 교재가 지식의 필요 조건이라고 가르치는 대로 과연 그것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입니까? 누구의 관점으로 중립적이고, 누구의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누구의 이해로 보편적입니까?

  차후의 ‘변절’은 여러분이 공부를 덜하거나 각오가 약해서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닙니다. 대학 안팎에서 대학인을 규정하는 제반 환경과 여건들이 여러분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거부하는 길도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1987년 ‘6월 항쟁’을 예로 들지요. 광주 학살로 집권한 5공 정권의 연임을 거부하는 민중은 그 해 6월, 군정 연장이냐 민정 수립이냐를 놓고 한판 격돌을 벌였습니다. 5공이 자행한 패륜과 부도덕한 원시적 폭력에 분노한 민중이 군정 종식과 민주화를 외치면서 구국 항쟁의 횃불을 쳐든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당시 학생들이 참 많이 죽었습니다. 포악한 정권에 항의하다가 죽고, 잔학한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서 죽었습니다. 학생들의 거룩한 분노와 분신(焚身)이 줄을 이은 정말 참혹한 계절이었습니다. 그때 이 땅의 양심 세력이 일어섰습니다. 신부, 목사, 스님, 작가, 교수, 변호사, 재야(在野) 등 각계 각층의 지식인들이 어깨를 걸고 가두에 나서 5공의 집권 연장 음모를 몸으로 막았고, 또 하나의 ‘광주’를 겁낸 군사 정권이 마침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해 겨울의 대통령 선거에서 군정 종식의 염원을 이루지 못해 6공 출범을 지켜보는 좌절을 되씹었지만, 이듬해 총선거를 통해 ‘여소 야대’의 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학생들이 의롭게 저항하고, 지식인들이 분연히 궐기했기에 가능했던 실로 장한 역사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민주화 투쟁은 이 사회의 오랜 금기를 깨고, 드디어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 물꼬를 텄습니다. 법에 규정된 노동 쟁의가 아니라 여전히 법이 금하는 노사 분규 수준의 항의에 머물렀지만, 우리도 사람이니 사람으로 대우하라는 노동자들이 82m 짜리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13일 동안 농성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 경제는 그 동안 두 자리 수의 성장률로 달리고 세계 10위권의 수출 대국으로 자랐지만, 막상 그 생산과 수출의 주역들은 혹독한 저임금과 유례 없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허덕였습니다. 아무리 소주와 돼지고기로 씻어내도 허파에는 켜켜이 석탄 가루가 쌓이고, 작업 도중 팔다리가 잘리고 공해 물질에 전신이 썩어나가도 아무런 보상과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폐인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들 집 한 칸 마련이 없고, 자식들 공부마저 어려운 것이 이 나라의 노동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 크레인에 매달린 것인데,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욕조에서 학생을 살해하고 경찰서 취조실에서 성폭행을 자행한 패륜 정권에 항의하던 그 지식인들마저 선뜻 나서기를 꺼렸습니다. 그리고는 “노사가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라”고 설교했습니다. 민주화 논의까지는 함께 하겠지만, 노동자니 자본가니 하는 계급적 요구에는 발을 빼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계급 이전의 생존 현안이고, 행여 계급 문제라고 하더라도 약하고 핍박당하는 쪽을 편드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등을 돌린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현실을 충분히 음미하고, 거기서 얻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좌표를 굳건히 설정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서구 사회에 ‘뉴 레프트’의 봉화를 올린 1968년 프랑스 학생들의 선택과 행동을 높이 평가합니다. 처음에는 뒤틀린 학내 제도를 바로잡으려고 궐기했다가, 그 투쟁의 와중에 대학의 오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빈곤과 압제에 허덕이며 저항의 권리마저 상실한 프롤레타리아의 눈에, 대학 특권의 침해 따위에 분개하는 부르주아 자녀들의 시위가 기껏 귀공자의 사치스러운 투정으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지요. 마침내 자본주의가 배태한 현대 문명에 대한 철저한 수술이 없이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이릅니다. 학생들은 물론 화석으로 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에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학생이 정권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결국 패하고 맙니다만, 그들의 항거는 자본주의 황금기의 풍요에 자족하던 세계에 일대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 경종에 지배 계급의 반성이 뒤따르지 않은 점은 못내 유감이나, 학생들이 행동을 통해 보여 준 인식과 의식의 발전 경험은 무척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관찰과 평가는 대학인 여러분에게 너무 심한 것일 수도 있고, 도에 넘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이 무엇이든 가혹하리만큼 철저한 주제 파악과 상황 인식이 없다면 끝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현실의 몫이 아닌 강의실의 몫에도 마찬가지인데, 이와 관련하여 야스퍼스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학생들의 미래는 바로 어떻게 하루를 보내느냐, 즉 매순간의 생동감 넘치는 내적 자극을 어떻게 일상 생활에 적용해 나가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배우기를 원한다. 스승으로부터 혹은 자기 단련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동료들과의 경쟁적 토론과 지적 교류를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이런 기대들이 성취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최초의 열정이 오랫동안 지속되지도 못한다. 아마도 어떤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하고자 했고,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학 생활은 실망스럽고 환멸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는 이제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시험의 실용성에 따라 판단된다. 그는 대학 기간을 직업을 가지기 위한, 그러면 치유될 고통스런 과도기로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대학이 고통스런 과도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태에 대한 경계로 야스퍼스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가장 먼 길로 가게 된다”고 걱정했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빠른 길만 취하려는 세태의 탈선도 경계해야 합니다. 대략 92학번부터를 대학가의 유행어로 엑스(X) 세대라고 부르던데, 이 지칭에는 자유 분방, 영악한 계산, 자기 위주 행동 따위의 의미가 담긴 듯합니다. 그런 선입견을 가져서 그런지, 1980년대의 강의실과 1990년대의 강의실은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강의실에 들어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돌처럼 차디찬 머리로만―때로는 학점을 위해서만―강의를 듣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머리의 결정을 손발에 전해 줄 뜨거운 가슴이 없다면, 그 결정은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토익과 고시 준비가 도서관을 점령하고 컴퓨터 통신이 학생들의 소일거리가 되면서, 대학은 고시 학원인지 전자 오락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학의 탈선에는 세기말의 세계를 휘젓는 포스트 모던 사조와 신자유주의 유행이 한몫을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영삼 정권의 줏대 없는 ‘세계화’ 설교와 얼빠진 ‘교육 개혁’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은 필경 다음과 같은 상황일 듯합니다.


  어느 정도는 임의적으로 구분되는 사실주의와 이상주의를 놓고 선택해야 할 경우,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를 다 원하든지 아니면 둘 다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주의가 우선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그에게 가능한 완벽을 생의 방침으로 삼아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요즈음 학생들간에는 어떤 몸매가 완벽한 몸매인가에 대한 생각이 아주 분명하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지도는 못 받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어떤 영혼이 완전한 영혼인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영혼을 가지려는 동경도 없다. 그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조차 그들은 상상할 수 없다.


  위에서 저는 대학인에게 열린 두 개의 길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전통적 지식인이 걷는 쉽고 편한 길로서 세상 돌아가는 대로 그냥저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부단히 투쟁하는 길입니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역사의 소명에 부응하여 시대와 사회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을 유기적(有機的) 지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식인의 삶, 정말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누가 저에게 당신은 여기저기서 지식인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그 지식인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오래전부터 준비한 이런 대답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지식인이란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지식인의 역할을 거부와 저항으로 정리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집단 어느 정파에 속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집권당에 몸담고도 과감하게 ‘아니오’를 외치면서 현실과 부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 당에 들어가서도 ‘예’만 되뇌이면서 그대로 주저앉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화여대 교정에서 ‘즐거운 반란’이란 학생회 포스터를 보았는데, 인류의 역사는 즐거운 반란이건 괴로운 반란이건 그 반란으로 점철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식인, 특히 유기적 지식인은 언제 어디서나 아니오라고 대답할 준비를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한번쯤 ‘아니오’의 철학과 대면하기를 권합니다.


 3. 대학 생활


  대학과 대학인에 이어서 마지막 주제인 대학 생활로 들어가지요. 서두에서 드린 말씀대로 대학은 청춘의 환희가 용솟음치고 삶의 희열이 흐르는 곳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주머니가 가난할지라도, 대학 생활에는 생명의 약동이 힘차게 울려퍼져야 합니다.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막강한 시장 원리조차 대학의 순수한 창조의 정열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런 만큼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을 완전하게 설계하고 자유롭게 영위할 권리가 있습니다. 로조프스키 교수가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그려 준 대학 생활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잠시 상상의 날개를 펴 보자. 당신은 하버드 대학에 진학할 것을 결심하였고, 이제 신입생이 되어서 아름다운 10월의 오후 찰스 강변을 따라 산책하고 있다. 당신의 왼손은 영예로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교수 한 분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자기의 최신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당신의 오른팔은 퓰리처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영문학 교수 한 분의 어깨에 걸쳐져 있다. 그는 어떤 새로운 학설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게 엘름우드 가의 데렉 보크 총장 저택에서 차를 마시고 싶은지, 아니면 존 갤브레이스 교수 댁에서 마시고 싶은지를 묻고 있다. 당신은 항상 에드워드 케네디, 마가렛 대처, 제리 폴웰 등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에 갤브레이스 교수 댁을 원할 것이다.

  여러분을 잠시나마 황홀한 기분으로 이끌었을 이 묘사는 뒤따른 로조프스키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경고 “환상에서 깨어나라! 이것은 결코 현실일 수가 없다”로 무참히 깨지고 맙니다. 아아, 이렇게 잔인할 수가……. 극히 운이 좋은 몇몇 학생들을 빼고는 결코 이런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학 생활과 낭만을 불변의 등식으로 여겨 온 착각은 어서 버립시다. 내가 여러분의 기대를 미리 꺾을 마음은 없지만, 그 환상을 대치할 만한 충고는 전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고독한 작업이다. 실험실이 아닌 도서관에서의 작업은 더욱 그렇다. 내 경험에 의하면 중앙 도서관 아래로 깊숙이 들어가서 논문 자료를 모으면서 느끼는 외로움보다 더 지독한 고독은 없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인기척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곁에 있는 것은 단지 부식되고 있는 책의 독특한 냄새 뿐이다. 나는 정도에 들어선 것인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막대한 시간 낭비가 아닐까? 의혹은 갈수록 커진다.


  결국 여러분은 총장 저택에서의 차 대접과 도서관의 책 썩는 냄새 사이에서 나름대로 타협의 길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에 대한 환상과 가능한 현실을 어떻게 절충하느냐는 문제는 다시 한번 여러분 자신의 지혜와 선택에 달렸습니다. 그 선택과 관련하여 무언가 저도 한 말씀 보태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의미 있는 말을 하나 고른다면 단연 그것은 ‘자유’일 듯합니다. 대학이란 단어는 본래 라틴어의 우주(universitas)에 기원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은 작은 우주이고, 여러분은 그 우주의 질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성원인 셈입니다. 창세기에 우주의 질서를 설계한 조물주의 구상처럼 대학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하며, 대학인의 사유와 판단에 어떤 제약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대학은 그 ‘실수’까지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에서 저는 대학의 자유가 대학 밖의 자유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은 실수가 허용되는 마지막 기회이며, 대학 생활이란 어떤 의미에서 등록금을 내면서 그 실수를 배우는 아주 ‘억울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허용하고 그 교정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대학이라면, 여러분은 대학 생활에서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그 실수조차 용인되는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수까지 자유롭되,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야스퍼스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생활의 자유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학 생활은 오직 자신의 책임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가르침의 자유는 곧 배움의 자유를 만든다. 어떠한 권위나 규제적 지시나 학업에 대한 감독이 학생을 지배해서는 안된다. 학생은 실패조차 자유롭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기를 젊은이는 모험적이어야 크게 성장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 대학에 다닌 저희 세대를 풍미한 철학 사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전후의 폐허에서 돋아난 실존주의 철학은 우수와 고독을 배경으로 인간이 처한 실존적 불안을 주조로 삼았는데, 이것이 미처 전쟁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지식인에게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절망조차 절망할 줄 아는 지식인의 특권처럼 이해되던 그야말로 절망의 시대였는데, 그 실존 철학의 기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돌연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폭탄 선언으로 전후 지식인에게 일대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있는 나는―즉 나의 실존(existence)은―나를 여기 이렇게 있게 만든 어떤 본질(essence)―무엄한 예로 하느님이나 부처님―보다 앞선다는 참말로 큰일날 소리인데, 아무튼 그런 절대적 자유의 설교가 기아와 전쟁과 인류 절멸의 공포, 즉 한계 상황(限界狀況)에 처한 지식인에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절대적 자유만이라면 아주 위험하지만, 사르트르는 거기에 ‘책임’이란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흔히 참여로 번역되는 불어 앙가즈망(engagement)은 본래 구속이란 의미를 포함하는데, 그는 사회에 대한 자유인의 책임과 구속을 바로 이 앙가즈망의 논리로 설명했습니다. 알파벳 철자까지 같은 영어의 ‘인게이즈먼트’ 역시 약혼이란 뜻으로서 일단 약혼을 하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구속과 책임을 느끼게 마련 아닙니까? 약혼은 분명 구속인데도, 우리는 그 구속을 속박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르트르가 역설한 앙가즈망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 즉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런 현실에 자신을 구속시켜야 한다는 이를테면 ‘즐거운 구속’의 메시지였습니다. 자유와 책임, 참여와 구속의 변증법은 당시 실존의 불안에 떠는 지식인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학생이 학기말 리포트와 함께 보내 준 김수영의 시구처럼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한시 바삐 그 절망과 구원의 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그 준비물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아직 때묻지 않고 잃을 것이 없는 여러분의 특권, 바로 자유와 정의의 추구가 그것입니다. 자유가 자유의 향유 자체로 끝나서는 안되고, 책임 의식을 동반해야 한다는 저의 당부는 실상 이웃과 사회에 대한 정의의 각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자서전에서 고백한 대로 학문과 사랑을 향한 열정에 이어 ‘이웃에 대한 연민’이 함께해야 합니다. 정의 실현을 위한 강한 집념이 없다면 자유의 추구는 강자의 이익을 수호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누리는 기득권의 과감한 청산, 과거와의 분명한 단절,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철한 헌신은 여러분의 대학생활을 한층 뜻 깊게 만들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사르트르의 상황은 『인간의 대지』의 작가 앙투안 생 텍쥐베리(Antoine de Saint-Exupey)의 행동 문학을 통해서 이미 극적으로 표출된 바 있습니다. 1935년 자신이 조종하던 비행기의 고장으로 생텍스는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합니다. 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급히 구조대가 오지 않으면,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서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폭염, 갈증, 기아, 신기루 속에 며칠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는 최후를 결심합니다. 자신이 묘지로 정한 모래 구덩이 속으로 막 몸을 던지려는 순간 문득 눈 앞에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라디오 앞에서 나팔통처럼 귀를 열어 놓고 그의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얼굴과 그의 종적을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료들의 초조한 모습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난자는 내가 아니라 오히려 저들인 셈이고, 저들을 ‘조난’에서 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전신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저들이 나를 사막에서 구출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저들을 ‘조난’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그 절체 절명의 순간에 아낌 없이 깨달은 것이지요. 인간은 항상 인간의 샘터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샘터의 노예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인간이 자유에 처단된 존재라고? 철없는 소리. 나는 지금 샘터의 노예이며, 친구들의 노예이고, 가정과 사랑의 노예이다. 마치 탯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연줄’로 서로 얽히고 매여 있는 것이다.” 자유는 책임을 넘어 노예로 바뀐 것입니다.

  대강 이런 것이 1960년대의 저희 세대를 매료시킨 참여의 논리였습니다. 여러분의 대학 생활은 그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되고, 이웃과 사회에 흔연히 구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거듭 요청하는 책임 있는 자유의 내용입니다. 공부하라는 권고와 참여하라는 주문은 언뜻 서로 반대되는 당부들로 들릴 법하나, 저는 그 둘이 학문과 생활에서 충분히 조화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공부는 참여를 가슴에 새길 때 의미가 있고, 참여는 공부의 바탕 위에서 힘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학문과 참여를 둘이 아니라 하나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은 양자의 마찰과 혼란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생텍스의 체험을 여러분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만, 예비 지식인으로서 그런 고뇌와 결단을 비록 작품을 통한 간접 체험으로나마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4. 사랑과 혁명을 위하여


  지금까지 메마른 얘기만 했으니, 이제 축축한 ‘사랑 이야기’ 하나를 덤으로 들려 드리고 제 말을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프랑스의 작가 겸 좌파 이론가 로제 가로디(Roger Garaudy)는 프랑스 공산당에서 노선 투쟁을 벌이다가 1970년 제 19차 전당 대회에서 쫓겨납니다. 소신을 버리든지 당을 떠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당 지도부의 지시에 맞서 그는 양자를 모두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무려 36년 동안이나 공산당에 헌신해 온 지식인이 바로 그 공산당에서 제명당하는 사건이니 언론과 여론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신문 기자가 대회장을 메우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회의 장면을 낱낱이 중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사회주의의 승리에 불굴의 신념을 피력했지만, 어제까지 함께 혁명에 헌신했던 동지 2000여 명의 대의원 가운데 누구도 그의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평소 정직하고 용감한 사람들이었지만, 당의 분열을 걱정하며 결국 당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투표 결과 제명이 결정되자 그는 울분과 모욕감으로 자살까지 생각하면서 회의장을 뛰쳐나왔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기자들을 피해서 가로디는 마구 차를 몰았고, 한 시간 가량 이리저리 돌다가 마침내 어떤 집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더니, 식탁에는 두 사람 몫의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차렸습니다. 오래 전에 헤어진 한 여인의 집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가장 엄격한 봉쇄 수녀원이 카르멜(Carmel)인데, 여기는 살아서 들어가 죽어서야 나오며 부모가 찾아와도 가운데 장막을 치고 만나는 곳입니다. 여기 들어가려던 처녀를 가로막고는 천상의 하느님보다 지상의 헐벗은 인간이 세뇌 공작을 폈습니다. 그렇게 유혹하여(?) 같이 살다가 자신이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체포된 뒤 흐지부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로 25년 만에 그 여인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식탁을 보고는 황급히 “미안하오. 혹시 누구를 기다리고 있소?” 하고 남자가 묻자,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누구를 기다렸습니다. 바로 당신이에요. 라디오로 당신 사건을 계속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쫓겨난 당신이 여기 이외에 달리 갈 데가 없을 것 같았어요. 25년 전에 당신이 좋아했던 포도주와 호밀빵을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미어지는 식사 끝에 여인의 이마에 키스하면서 그는 “사랑이 없으면 혁명도 없다”는 진실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는 혁명은 무책임하고, 혁명이 없는 사랑은 무의미합니다. 그 책 『인간의 소리』를 읽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남자의 배반이나 여자의 쑥맥 같은 용서를 들추면 이야기의 ‘향기’가 날아갑니다. 아무튼 우리도 그런 사랑 하나, 그런 혁명 하나를 만들 수만 있다면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여든, 혁명이든 뜨거운 사랑이 함께해야 합니다. 진정 알차고 멋진 대학 생활을 통해서 그런 사랑을 준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