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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정념적인, 사적인

기억을 먹고 사는 사람

0. 기억을 먹고 사는 사람

1. 옷장을 지른지 제법 되어 드디어 내 방에 들어왔다. 그간 낡은 서랍장과 행거로 옷을 정리하다가 수용이 불가해서 책장을 하나 포기하고 옷장을 넣었다. 그러면서 가구 등을 들어내고 바닥도 한번 싸악 밀고 전기와 통신 배선도 새로 하고, 허리 아픈 나와 어깨 아픈 엄마랑 둘이서 하루종일 붙어서 해냈다. 호호 싸구려 옷장 하나에 이렇게 좋을수가.

2. 원래 쓰던 서랍 가장 아래의 두칸에는 보물이 들어있다. 우리 엄마는 그것을 버리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계시고 난 그것을 지키려 분주한 점으로 볼때 진짜 귀금속은 아닌건 분명하다. 거기엔 상자와 서류정리함에 든 자료집, 문서, 회의록, 선전물, 공보물 등이 들어있다. 비록 열심히는 안했지만 나름 세계에 내가 할 일이 이것이라 여기도 살던 적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별로 모냥새는 좋지 못해서 먼날 자식들이 보면 지 아빠가 폐지를 안버리는게 취미려니 할 것이다. 한 박스 위에 있는 2007 일촌맺기 통일 문과대 학생회 팻말에 남아 있는 잔류사념 덕분에 종일 기분이 묘하다.

3. 앞의 2와 같은 일이 있은건 결국 내가 문건을 버리지 않는 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면에서는 골수까지 '역사쟁이'스러운 놈이 아닌지...지금 내가 버리는 이 서류가 수년 후 누군가에게 절실히 그 시대를 증명할 자료일지 모른다는 그 강박. 하지만 부피는 커지고 수용공간은 한계가 있으니 해법은 120평짜리 내 서재가 있는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인데....한 열일곱번 죽고 다시 깨어나도 어렵지 않을까...... 동시에 진보적인 운동의 아카이빙, 채록의 문제를 새삼 느끼는데....나만 느끼면 뭐하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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