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간 같은 영화관에서 세 편의 영화를 봤다. 지난 1월 16일에는 인터스텔라 대구 마지막 상영을 아이맥스로, 20일에는 내일을 위한 시간 마지막 상영일이라서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영화를 봤다. 그리고 23일 저녁에는 후배들과 함께 비교적 신작인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았다. 이렇게 영화 관람 간격이 오밀조밀했던건 지난 8월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여튼 영화를 보고도 어떤 결과물을 남기지 않는게 책임 방기인 듯 해서 한 마디 적어본다.

 

*야밤에 졸린 눈 비비며 쓰기도 하고, 수정을 전혀 안해서 비문이 지뢰 처럼 깔려 있습니다..경고합니다 ㅋ 스포도 좀 있습니다 스포 없는 영화 리뷰는 불가능한거 아시죠? 여유될때 제대로 써볼께요(물론 다시 쓸지는..)

 

1. 인터스텔라, 1월 16일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별명을 붙여준다면 ‘시간의 마법사’라고 불러주고 싶다. 놀란이라고 하면 베트맨 프리퀄 3연작을 떠올리겠지만 놀란에게 더 중요한 영화는 아마 메멘토와 인셉션이 아닐까 싶다. 이번 영화까지 세 편 모두 시간의 문제가 걸려 있다. 극중에서 과거와 미래는 단순한 선후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선형적인 인과관계를 떠나 일정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런 시간의 조작을 돋보이게 하는건 아마 연출과 구성이 아닐까, 난 인터스텔라의 스토리가 엄청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상대성 이론과 같은 것은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새삼 새로운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건 극의 스토리 보다는 우주가 주는 압도적 공포와 고독감(그래비티의 그것돠 다소 다른),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생경함, 블랙홀이란 매개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인과관계를 재구축하는 발상의 새로움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해주는 연출과 구성이 인터스텔라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여담을 하자면 참고로 2014년 처음 본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었다. 주연은 매튜 맥커너히..그리고 2015년 첫 영화인 인터스텔라의 주연도 매튜 맥커너히...이 남자랑 인연이다.

 

2. 내일을 위한 시간, 1월 20일

 




한국에 우석훈 박사의 88만원 세대가 강력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명의 이탈리아 청년이 쓴 자전적 소설인 천유로 세대가 국내에 소개 되었다. 유럽통합..정확히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천명한 유럽 단일 통화 체제의 수립 이후 프랑스 독일 등 EU 내 부국과 PIGS로 불리는 남유럽 국가들의 양극화가 심해지던 시절, 이탈리아의 청년들은 불안정한(누군가는 유연화 되었다고 부를) 노동시장 속에서 단기 계약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 해고와 구직을 반복하며 한 달에 채 백 만원도 못버는 생활을 이어간다. 절반은 집값으로 내고 나면 생활은 불가능하고, 결국 작가 중 한명은 부모의 집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7,8년 전의 소설에서의 1000유로가 남유럽 청년들이 경험하는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을 표상했다면, 이 영화에서 1000유로는 직장 내 연대성을 시험에 들게하는 장치다. 1000유로 세대라는 제목이 드러내듯 이것은 유럽의 보통 노동자들에게 적지 않은 돈이다. 영화는 산드라라는 주인공이 병가를 마치고 회사를 복귀하는 과정에서 산드라를 재고용하지 않는 대신 동료 노동자들에게 1000유로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는 회사의 결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는 별 것 없다. 산드라는 직원들이 자신의 복직과 1000유로의 보너스 사이에 선택할 기회를 다시 얻었고, 남편 마누 그리고 친구인 줄리엣과 함께 16명의 동료중 과반수가 그녀의 복직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덤덤하게 금요일 저녁부터 토일 양일에 걸친 산드라의 설득, 그리고 월요일의 결과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산드라의 복직은 좌절된다. 16명 중 8명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지만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그녀는 해고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의 복직 여부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보통의 노동자들에게 지극히 큰 돈인 1000유로를 동료의 복직을 위해 내려놓은 50%의 존재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신을 찾아온 산드라에게 사죄를 구하며 그녀를 서택한 티무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지만 동시에 계약직이란 현실 사이에 고뇌하다 산드라를 지지한 알퐁소, 남편을 설득하다 남편의 인격에 실망하고 그와 헤어지면서까지 산드라를 돕는 안느의 존재, 열정적으로 그녀를 돕는 줄리엣과 로베르토, 헌신적인 남편 마누, 1000유로에 눈이 먼 아들(함께 일하는 동료이기도 하다)에 상처입고 산드라를 지지한 이본 등 연대를 위해 큰 선택을 한 8명의 존재는 이 영화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일지 모른다. 물론 상처도 많다. 1000유로를 포기할 수 없다며 이본과 산드라에게 폭력을 가한 이본의 아들, 산드라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1000유로를 위해 그녀를 회피한 니딘, 그리고 그녀가 복직을 위해 분란과 폭력을 조장한다는 반장, 그리고 형편이 힘들어 1000유로를 내려놓을 수 없다는 미레유와 윌리까지 그들과의 만남은 산드라에게 안정제 100알을 한번에 삼켜 죽음을 꾀할 정도의 좌절감과 죄책감을 주기도 하였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을 위해 남을 포기하는 그런 이가 아니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사장은 그녀에게 계약직 알퐁소의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고 그녀를 복직시키겠다고 이야기한다. 더 이상 산드라가 있던 팀에는 과거처럼 17명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이 영리한 자본가는 이해했고, 팀 내의 재단결을 위해 산드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그는 몰랐다. 산드라에겐 1000유로와 복직 보다 더 중요한 연대가 생겼다는 것을...그녀가 회사를 빠져 나오며 남편 마뉴와 함께하는 이야기는 그들이 지난 금요일의 그들과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래 당신들을 잘 싸웟어


그리고 영화의 불어, 영어 제목이 이틀과 하룻밤인데 국문 제목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여기서 내일은 날짜의 내일을 의미할 수도, My job을 의미할 수도 그리고 존엄하게 살 수 있고, 나의 주체성, 연대성이 살아 있는 이전과 다른 내일로 읽을수도 있을것 같다. 개인적으로 국문 제목이 원 제목 보다 더 좋지 않나 싶다.

 

3. 아메리칸 스나이퍼, 1월 23일

 




처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을 때 든 생각들은 이랬다. 미국식 에국주의, 십지군론과 개신교 원리주의, 인종주의, 반전의 메시지 없는 전쟁의 비극, 시에나 밀러는 이쁘다....등등

한편 여러 영화와 비교 해본다. 리얼리티는 블래호크 다운과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전쟁이 인간을 망가뜨리는 과저에 대한 내밀함은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 허트로커보다 부족하다. 물론 영화에 드러나는 메시지나 상징이 매우 보수적이고 개신교 원리주의의 색채가 강하지만 영화 자체는 분명히 재미있고 몰입감도 있으며, 상당히 좋은 연출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부족한 느낌...차라리 전쟁이 PTSD와 같이 인간을 파괴해가는 과정을 보여줬으면 어땠을지.....분명 브래들리 쿠퍼는 점점 망가지는데..망가지는게 다 보이는데 그 밀도가 좀 약하지 않나 싶다. 전쟁이 인간을 망가트리는 이야기 아니면 차라리 911 이후 심화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만들어낸 안보애국주의, 국가주의, 전상자로 표상되는 국가의 책임상실이나 부도덕 문제 같은걸 드러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영화는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승자도, 패자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결국 모두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고, 결국 그 고통이 이라크 전장에서도 살아온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것을 상당히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쉽지만 그래도 재밌고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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