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회과학과 역사에 진보정당은 두 가지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로버트 미헬스가 이야기한 정당의 과두화가 그 첫번째이며, 2차대전 이후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보여준 포괄정당, Catch All Party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 특히 현실 대의제 하에서 실제적 의미를 가지는 정당에게 더욱 극명히 드러난 모습이었다. 즉 모든 정당은 과두화 되며 동시에 이념적으로 중도로 수렴된다는것이 내가 아는 사회과학에 하나의 법칙처럼 존재했다.



진보정당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사실 민주노동당에 가입했을 처음에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게 22살때의 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란걸, 정치경제학이란걸, 정치학이란걸 조금 더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현대 자본주의라는 토대의 산물인 대의제가 과연 그 토대를 극복하는 기제가 될 수 없다는 내면의 확신이 생겼다.  당장 1926년 영국 노동당의 램지 맥도날드 내각이 보여준 처사, 당시 영국노총 TUC가 보여준 처사는 결국 대의제 하에서 진보정당 역시 그 진보라는 가치 이전에 정당으로 유효성을 위해 존재하는, 자본주의를 지키는 호위병일 뿐이라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줬다....나의 이런 의문에 몇몇 선배들은 차베스 처럼 우리도 포철과 삼성전자를 국유화하여 그것을 무기로 우리나라 내부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할수 있을거라 했지만....차베스의 사회주의는 석유라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장치에 기댄 동시에 다른 국가의 인민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일 뿐이고, 설사 포스코와 삼성전자가 그런 석유와 같은 위력이 있을지라도 그건 결국 지구적인 자본과 노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1국 사회주의일뿐인게 아닌가..삼성의 이윤을 통해 한국은 해방될지 모르지만 삼성은 그 이윤의 극대화를 통해 자국민이 아닌 다른 어느나라의 노동자를 착취해야만 이윤을 증식시킬수 있는게 아닌가...여긴 매우 단순하게 적지만 내 고민의 결론은 집권은 사회변혁과는 다르다는거였다


강한 힘에 맞서기 위한 강한 힘은 일견 현실적으로 보인다. 자본에,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한국의 정치권력이 필요하다는 레토릭도 일견 맞는말로 보인다. 그러나 그논리의 귀결이 핵을 막기 위해 핵이 필요하다는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 양강이나 지금의 북한, 일본이 펴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힘을 막기 위해 제한된 힘은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 힘은 수단이지 그 힘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라는 것은 그 속성상 목적을 수단이 압도하는 경우를 수도없이 역사속에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지금 진보정당에게 필요한것은 현실적 대의제 아래의 정당으로 유효성이 아니라 그 사회를 규정짓는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집권은 이 대안을 현실정치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안을 왹죄고 포기할것을 강요한다. 정당이 위에서 말한 과두화와 포괄화의 철칙에 놓인다면, 집권은 베버가 말한 책임정치의 굴레에 놓여있지 않은가? 현재의 대의제에서 그 누가 집권하여도 비정규직을 폐지하고 정리해고를 금지시키며 자본가에 높은 세율과 확고한 평생고용을 요구할수 있는가? 결국 그 자본가와 중간관리자들도 우리의 유권자고 국민이 아닌가? 노동계급의 표만으로 우리가 집권한다 한들 우리가 노동계급만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목적과 수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수단이 목적을 규정짓는 이 역사적 법칙에서 우리는 자유로울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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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정책’이 아닌 ‘사회개혁 프로젝트다’


-절친 전영진의 ‘무상복지 허구론’에 답함


 

 


 


오랜 시간 한국의 운동세력과 진보적 학계의 깊은 곳에서 진행되던 복지국가 논의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후 본격화 되고 있다. 당장 이 복지국가의 한 영역으로 무상급식의 문제는 거대 여당의 차세대 주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을 날려버리고 시민사회 출신의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는 거대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복지 담론의 위력은 가장 수구적이던 정치세력 한나라당이 나름의 복지국가 플랜을 제시할 정도였으며 여전히 다가오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도 그 위력을 유지하리라 보인다.


영진씨의 글은 이런 현재의 상황에서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일단 영진씨 글의 몇 가지 핵심 주장을 내 나름 아래와 같이 정리해봤다


 


- 복지담론은 정책적으로 접근되어야 하며 복지담론이 이념의 문제로 접근되어선 안된 다


 


- 재정은 어떻게 조달 할 것이며 그 높은 조세부담률은 어떻게 감당하나?


 


- 결국 최상의 복지는 세금이 최소한으로 투여되는 일자리 복지이며, 자립을 통한 각자 도생의 길이다


 


이정도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서민들이 왜 힘든지 혹시 생각해보셨습니까? 청년들은 취업이 안 되고 등록금이 비싸고 자영업자들 대형유통자본 때문에 말라 죽어 가는데 카드수수료와 임대료까지 오르고, 농민들은 불안정한 가격에 한미FTA까지 체결된답니다. 노동자들도 임금은 크게 안 오르는데 주거비용, 의료비용, 교육비용, 생활비는 살인적으로 올라가고, 고용안정성이 떨어져 언제 해고 될지 모르고 해고되더라도 재취업의 가능성 역시 불투명 하니 힘듭니다.


결국 우리 서민의 고통은 낮은 구매력과 높은 주거, 교육, 의료, 생활비용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영진씨가 말하는 각자도생의 자립과 일자리 중심의 복지가 우리 서민의 아픔을 해결 할 수 있을까요?


당장 우리 또래 많은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과 청년실업에 힘들어하며 취업이 되면 많은 것이 해결될 거라 믿지만 실상 사회로 나아가면 임금과 노동조건, 처우의 문제, 주거의 문제로 고통 받고 교육과 보육, 의료의 문제로 결혼이나 육아를 포기하며,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부모님의 부양문제까지 삶의 무게는 계속 되어갑니다. 과연 일자리 복지가 이 삶의 해결일까요?


 


 


 


복지국가, 한낱 복지정책의 양적 변화가 아닌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개혁프로젝트


 


 


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다양합니다. 밀턴 프리드만이 말하듯 시장에 맡기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케인즈가 말한 거처럼 적절히 국가가 개입하고 조정하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맑스가 말하였듯 프롤레타리아트들의 계급적 투쟁을 통해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 역시 길 일수 있습니다. 복지국가는 이런 체제의 문제입니다. 한국사회를 앞으로 어떤 사회로 만들어가 갈 것인가에 대한 이념의 문제이고 이념의 투쟁입니다. 복지국가 혹은 다른 체제로 나아가는 길은 단순 몇 가지 정책적 수준의 변화가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사회 구조와 관계를 새로이 편성하고 조직하는 사회변혁의 길이며 이 체제의 밑그림을 두고 여러 사회 구성원들 간의 책임 있는 논쟁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진씨는 이전 글부터 지금까지 복지담론이 이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이유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젠 당위적 언급이 아닌 진짜 당신의 말로 왜 이념적으로 접근 되어선 안 되는지 설명할 때가 된 거 같습니다. 그것이 그저 이념논쟁에 대한 감정인지 혹은 합리적인 근거를 지닌 것인지 밝혀주십시오


 


 


유로피언 드림, 높은 직접세-낮은 간접세와 합리적 조세합의 길


 


 


일전 다른 자리에서 복지담론에 있어 조세제도 이야길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조세제도에 대한 한국사회의 보편적 감정은 불신 그 자체입니다.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가 삼성그룹의 탈세, 상속노력과 비례해서 발전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한국의 대기업과 부유층, 권력집단은 자신들의 부를 조세를 통해 사회적으로 환원하기 보단 부정하게 상속하고 검은 돈을 통해 빼돌리기 급급했습니다. 당장 많은 소상공인과 노동자들 역시 세금은 아까운 돈, 빼앗기는 돈이라며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전전긍긍 궁리를 합니다.


 


영진씨, 재원을 마련할 길은 있습니다. 합리적 조세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유럽의 그것보다 낮습니다. 더욱이 현 정권 들어 Spill over 효과란 명목으로 진행된 감세분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이 합의를 위해 조세정의와 형평성의 우선적 실현이 시급합니다.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부유세와 누진세 도입, 상속세의 대폭 인상,BW를 통한 불법 상속 여지 차단, 기업 회계에 대한 높은 강도의 감사 등이 필요합니다. 이와 동시에 낮은 직접세 부담률 인상-높은 간접세 비중 인하가 이뤄져야합니다. 또한 불로소득과 부동산 시세차익, 대규모 외환-금융거래에 대한 조세 신설 등을 통해 소규모 납세자가 납세한 이상으로 복지를 통해 돌려받는 모델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첨언으로 영진씨는 스웨덴의 정권교체 원인을 단순 복지국가 모델에서만 찾으시지만 보수당이 과거 대처나 레이건의 그것과 같이 전면적으로 스웨덴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전면적으로 변화시켰냐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여러 매체를 통해 확인 가능한 사실입니다. 또한 80년대 중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중후반의 위기에서도 스웨덴이 한국의 수구 언론이 떠드는 복지 포퓰리즘으로 망했냐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스웨덴은 기본이 튼튼하고 높은 임금수준과 높은 조세부담률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기업의 산업생산성이 높다는 건 이 문제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입니다.

  1. 블로그를 네이버로 옮긴 전영진이이 이 답글을 보진 못하겠지만...난 복지국가를 원한다 근데 그것의 실현엔 의문이다...결국 복지국가는 수동혁명, 보수혁명의 이데오로기로 갈 가능성이 크다..그리고 그 과정은 자본에 면죄부를 주고,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지 못할꺼라 본다. 물론 이뤄진다면..그보다 좋은게 어딨겠나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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