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희생하는 사람과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박재호는 국가를 위해 희생을 했고, 나는 나(검사)는 나라를 위해 봉사를 했지. 근데 넌? 넌 대체 한게 뭐니?” -영화 끝 무렵, 홍검사(김의성)이 윤진원(윤계상)에게

 

 

2009.1.22 용산참사 현장, Minolta X300 50.4mm Fuji Superia 200.

(살면서 처음으로 바싹 긴장하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 한마디가 그날의 분위기를 드러내리라 믿는다)


 

2009119일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새벽에 용산 철거현장에서 불이나 농성하던 철거민과 경찰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사실 그날 첫 기사를 볼 때만 해도 이 일이 이렇게 큰 일이 될지 쉽게 짐작하지 못했다. 상황은 종일 급박하게 돌아갔고, 갓 경찰청장을 목전에 뒀던 김석기 서울시경청장가 물러나는 등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주 목요일인가. 22일에 난 내 인생이 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억을 남기게 된다.

 

그날은 정기적인 병원 정기검사일이었고, 당시 발을 살짝 걸치고 있던 학생운동 조직의 상급단체[ 총회가 있던 날이다. 그리고 이 멤버들이 함께 저녁을 먹고 흑석동을 떠나 용산으로 함께 넘어갔다. 그때 건넌 다리가 한강대교였는지 동작대교였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다리는 유달리 정체가 심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이 땅에서 가장 큰 도시의 러시아워이니 오죽하랴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착각임을 인지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강대로는 중앙의 3개 차선을 제외하곤 모두 경찰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경찰은 정규 승차 위치보다도 제법 지난 위치에 사람들을 내리게 했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도로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전의경들의 헬멧 위에 비친 서치라이트와 그 공기는 마치 SF 영화에서나 봄직한 악의 군단 같은 이미지였다.(그 전의경들이 무슨 죄겠냐만은) 사건이 있었던 건물 맞은편 횡단보도에선 복장이 다른 경찰들..(뒤늦게 그들이 경찰 특공대란 걸 알았다.)이 팔짱을 끼고 묘한 표정으로 시위 행렬과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아직 그때 맡은 정체 모를 냄새를 잊지 못한다. 아마 그것은 화재로 인한 탄내(무엇이 탔는지는..)’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닥엔 잘게 부셔진 유리조각 같은 것들이 바스락 거렸다. 행과 열을 맞춰 도로를 차단한 대규모 경력, 그리고 그 건너편에서 괴성을 지르며 해산(혹은 진압)을 준비하는 경력, 그리고 동료를 잃은 이들의 표정, 냄새와 인도의 촉감, 사람들의 분노 등등 그 공간의 모든 것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기차시간으로 인해 고작 2,30분 있었던 기억임에도 삶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 중에 하나로 남아 있다.

 

 

영화는 실화와 무관함을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앞부분은 계속해서 용산을 연상케 한다. 장소가 용산이 아닌 북아현(사실 이곳도 철거와 뉴타운 문제로 한동안 투쟁의 현장이었다.)으로 옮겨갔고, 약간의 상황 변화만 있을 뿐이다. 용산이나 영화 앞부분의 상황이나 그것이 비극적인 것은 현장에서 방패와 곤봉, 파이프와 화염병을 교환하는 이들이 사실 옷을 갈아 잎으면 상호간에 싸울일이 하등 없는...아니 오히려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적대 없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단지 그들은 그들이 놓인 상황과 관계에 내몰려 그곳에서 서로 상관 없는 이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사건은 그 과정에서 벌어진다. 갑자기 죽은 젊은 전경 그리고 한 아이의 죽음.

 

흔히 권력이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는 포맷이 있다고들 한다. 이 사건에도 그 권력이 지니고 잇는 작동 방식의 전형이 가동된다. 사건은 하나의 프레임과 레토릭 속에 들어감으로써 그 진실을 잃어 버린다. 권력은 그들이 가진 온갖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 그들에게 불리한 요소를 프레임 뒤로 날려 버리고, 프레임 안에 남은것은 레토릭이 뒤덮게 된다. 한 철거민 아이의 죽음은 우발적 사고로 배제되고, 한 전경의 죽음은 폭력 시위, 과격하고 잔인한 철거민의 문제로 변질한다.

 

그 과정에 한 명의 검사, 두 명의 변호사, 한 명의 기자, 그리고 두명의 아버지가 있다.(아 판사도 있구나) 그리고 영화는 이들 사이 그리고 정확히는 이들을 묶어낸 하나의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이와 판단하는 이 그리고 감추는 이 사이의 싸움을 보여준다.

 

사실 전형적인 법정드라마 같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존 그리샴의 소설들 내지 이로부터 파생한 영화들을 볼때와는 사뭇 기분이 다르다. 영화를 굿어하는 요소들은 전형적이지만 그 속에 가득한 것은 전형적 법정드라마의 공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이 극은 논리와 조사, 변론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법정 드라마 보다는 권력의 추잡함을 드러내는 그리고 권력의 앞잡이(홍 검사)와 대결하는 류의 드라마에 가까워 보인다. 며칠전 극비수사에서도 전형적 수사물 보다는 1970년대라는 분열적인 시간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삶의 모습들을 봤듯이 이번 것도 보통의 법정드라마 같아 보이진 않는다

 

사실 영화가 실화와 무관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고, 설사 용산참사를 배제하고 보더라도 이야긴 철저히 사회적이다. 권력, 철거(그리고 철거로 부터 파생되는 한국의 토건자본과 주택정책), 국가폭력기구, 조직생리, 정치논리 등등 영화 곳곳에는 사회가 가득하다. 그런데 상당히 의왼인건 대개 이런 영화들이 별로 재미가 없는데 비해(이런 영화를 선호하는 스스로도 대개 이런 영화들이 재미없다는 말은 부정하기 힘들다.) 소수의견은 상당히 재미나다. 흥행은 부진하지만 상업성 혹은 대중성이 없느냐 하면 그것 아닌것 같다. 그리고 그 대중성의 힘은 윤계상이 맡은 윤진원 변호사라는 인물에 있어 보인다.

 

윤진원이란 인물은 정말 재밌다. 지방대 나왔고, 그나마도 과거 수배시절 자기 형 방에 도바리 치던 형의 친구가 공부 봐준 덕에 갔다. 그리고 그 형이 변호사 한다길래 자기도 변호사를 목표로 한듯 하다. 하지만 그 선배는 스스로를 386따라지라 부르는 이혼전문변호사로 퇴락했고, 그 스스로는 어디 오갈곳 없이 국선변호사를 하고 있다. 처음 그가 공 기자(김옥빈) 혹은 박제우(이경영)을 만날때 인상은 그 선배만큼은 아닐지라도 세파에 찌든 인물로 보인다. 사실 그랬던 그가 왜 갑자기 사건에 열의와 관심을 가지게 되엇는지는 영화 내에선 자명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다소 생략적이고 함축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은폐하는 권력과 대립한다. 물론 그 싸움의 과정 역시 지난하다. 압력, , 정보의 독점, 히든카드, 정의감, 분노, 짜증 등등...특히 변호사 자격 상실 위기에서 흔들리는 이경영과 그에게 다가온 수상한 의뢰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막간에서 보여주는 윤진원이란 인물의 내적 갈등이란..

(사족이지만 윤진원이란 인물에 비해 유해진이 맡은 장대석은 다소 많이 밋밋하고,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장대석의 가장 큰 역할은 윤진원을 설명하는 그 이상은 아닌것 같다. 이 영화의 몇몇 취약점 중에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다.)

 

 

 

사실 처음 영화를 예매했을 때 상영관이 텅 비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주변에 연락도 해보고 했지만 결국 영화는 혼자 보게 되었다. 내심 들어갈때 까지도 텅 빈 상영관을 상영했는데 들어가니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덕분에 '여기가 맞나?'싶어 다시 나와 확인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가 제법 내렸다.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해 요깃거리를 생각하며 대구 시내를 걷는데 내내 '국가'의 문제가 입 속을 맴돈다.

 

 

 

한국은 명백한 국가주의, 국민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물신론이 팽배한 곳이다. 반공이데올로기와 군부 권위주의는 마치 국가 자체를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로고스와 같은 하나의 '신성'으로 자리잡게 했다. 하지만 역사는 국가가 하나의 사회적 구성체이며 고안물이란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적어도 나 개인에게 이 나라가 가치 있는 것은 이 나라의 역사가 20세기 내내 보통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602월이 대구, 4월의 전국, 805월의 광주 그리고 긴 후사로 이어지는 저항과 공화국의 전통이 약간이라도 남아있는 한 이 나라는 내게 가치있을수 있다. 즉 국가 자체는 신성하지 않은 것이다. 이 나라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지켰고, 우리가 살아가고, 우리를 지켜야하고, 우리를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갸폭력기구 역시 이 공화국의 이념, 명제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허나 영화 속의 공화국은 참된 공화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회적 갈등은 내몰린 자들 사이의 폭력과 아우성으로 매조지어지고, 죽음이 있었던 갈등의 현자은 권력과 자본의 논리 앞에 말끔히 치워지고 철거된다. 검사는 자신이 봉사하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지만 그가 아는 국가와 우리가 아는 국가가 과연 같은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렇기에 영화 마지막 변호사가 된 홍 검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서두에 올려둔 저 말이야 말로 그들의 국가관이다. 그들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과 봉사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자신들이 봉사하는 대상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 속으로 내모는 행위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나라', '국가'를 위한 일로 포장된다.

 

내몰려 죽어간 이들의 기억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그 국가가 바로 이 영화 안에 있다. 이것은 진실이지만 실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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