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받으며(대구신문 4월 25일 http://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195586)


집에 초인종이 울릴 때 가장 반가운 사람은 누구일까? 부모? 자식? 배우자? 친구? 유감스럽게도 택배기사라고 답 할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으리라 짐작된다. 택배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 생산 질서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이며 동시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타인이다. 특히 인터넷이나 전화, TV 등을 이용한 원거리-비대면 구매기법의 발달은 택배와의 만남을 더욱 잦게 만들었다. 어느 자취생은 부모님 보다 택배 기사님이 더 친근하다 할 정도이니 택배와 택배 기사님과의 만남은 그만큼 일상적인 경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상품 구입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낯선 외부로 부터의 무언가가 온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택배가 오리라 예상한 시간에 택배가 오지 않으면 쉽게 초조해지고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면 그것이 ‘도를 믿습니까?’의 방문인데도 너무나도 반갑게 뛰어 나갈 정도다. 

그런데 며칠 전, 이 택배를 받고 화를 낸 적이 있다. 배송 과정에 물건이 훼손 되었을까? 혹은 물건이 오배송 되거나 배송이 오래 걸렸기 때문일까? 답은 그날이 바로 선거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직전의 주말에 새로운 가방을 주문하고 화요일에 배송이 시작된 것을 알리는 문자를 받고서부터 묘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선거일에 택배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불안감은 대개 통속적 영화처럼 현실이 되지 않던가? 선거일 낮, 점심을 먹고 의자에 앉는 순간 문자가 왔다. 한 시간 내 방문 예정을 알리는 택배 기사님의 메시지였다.

새 가방을 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 순간 택배 상자를 받는 것은 마냥 유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택배 상자를 내게 인수하고 돌아서는 택배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오늘 대체 그는 몇 시에 일을 시작해 몇 시까지 몇 집을 다닐까? 그에게 과연 투표를 할 겨를은 존재할까? 회사가 임시 공휴일에 특근을 지시한 것일까 아니 혹시 정규 택배는 쉬는데 그가 지입차주이기에 더 많은 벌이를 위해 일하는 것일까?

이 나라는 스스로를 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이라 명시하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과정 중에 하나가 선거라면 선거 과정은 국가와 정부의 정당성에 중요한 장치일 것이다. 

우리는 당시로는 매우 선진적인 내용을 담은 제헌 헌법을 통해 정부 수립 당시부터 보통선거권을 행사 할 수 있었다. 보통선거권의 의미가 무엇인가? 성별과 인종, 신분, 재산을 주권의 자격으로 두지 않음을 뜻한다. 오로지 너무 어린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정치적 행위 할 권리를 제한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계층과 빈부를 떠나 모두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정말 그러한가? 선거일은 법정 임시 공휴일이지만 우리는 그날 쉬지 못하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목도 하지 않았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 중 공무원 집단을 제외한 대부분은 먹고 삶의 필연성이 불안정한 이들이란 것이다. 

택배의 말단을 맡는 택배기사의 대부분은 지입차주라는 가장 왜곡된 형태의 간접 고용노동자들이며, 골목골목 침투해있는 편의점과 카페는 물론 도심의 대형 마트와 상점, 식당 대부분에서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들의 노동 비율이 절대적이다. 가난 하고 삶의 물질적 토대가 불안정 할수록 우리의 투표 할 권리는 제한 받고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그들의 ‘제약되고 잃어버린 시민권’에 무감각할 뿐이다.

과거 정치학을 처음 공부하던 당시 아테네의 시민들이 거대한 노예집단을 경제적 배경으로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위화감을 2천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 

거대한 노예들을 부리고 그들이 생산한 부를 전유하는 이들만이 정치의 주체가 되고 정치인이 될 수 있던 시대가 아테네였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필연성과 생활에 쪼들린다면 피선거권의 행사는커녕 투표조차 힘들다. 제도권 정치는 가지고 여유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정작 다수의 대중들은 투표를 위해 시간 내는 것에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화는 이들에게 투표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발전 할 수 없다. 우리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시민권을 어떠한 이유로든 잃은 이들의 시민권을 복원 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쫓기더라도 숙고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정치를 이야기하며 선택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이 필요하다. 요컨대 정식 투표일을 2일 정도로 늘리거나 주말을 끼는 것도 방법이다. 

낮은 투표율과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할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이들이 투표 할 수 있기 위한 장치들의 고안과 보완이 우선이다. 난 더 이상 하루뿐인 선거일에 택배를 받고 싶지 않다. 새 가방을 하루 더 일찍 매기 위해 누군가의 한 번 뿐인 투표권을 빼앗고 싶지 않다. 이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와 자본에 대한 제약, 정치와 행정적 제도의 개선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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