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성이 비판에 우선한다는 것은 결코 틀린 답이 될 수 앖다. 그러므로 지성인은 언제나 약한자, 잘 대변받지 못히는 자,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자의 편레서 서든지 아니면 더욱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중략..

집단이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동의형성애 관련하여 볼때, 지성인의 과업은 그러한 집단이 자연이나 신이 부여한 실체가 아니라, 구조화 과소 만들어지고, 심지어 어떤 경우는 이면에서의 투댕과 정복의 역사를 통한 창조물로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조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권력과 지성인 2부 <국가와 전통의 차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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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아도르노는 지성인이 자신의 저작을 통해 어떤 만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엄청나게 빈정거리는 추방자로서의 지성인이다. 또 그는 전혀 ‘정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주변성으로부터 오히려 일말의 휴식을 얻는 듯 한 대안적인 삶의 형태를 지닌 추방자로서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도르노가 말하지 않은 것은 추방자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이러한 추방의 즐거움은 추방이 때때로 가능하게 해주는 상이한 삶의 양식과 비전에 대한 기묘한 시각들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아마도 모든 최후에 갖게 될 우려나 씁쓸한 고독에 대한 느낌을 경감시키지 않으면서도 지성인의 소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따라서 추방이 지성인을 (말하자면) 특권, 권력, 안락한 삶이라는 편리함의 외부에 있는 주변 인물로 존재하는 누군가로서 특징짓는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반면에 그러한 조건이 지성인의 소명에 확실한 어떤 보상을 해주고 더욱이 특권까지 가져다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은 어떤 상도 받지 못하고, 또한 집단의 노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골치 아픈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자를 의례적으로 배제하는 자기 축하적인 영예사회로 진입하는데 는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은 추방과 주변성으로부터 어떤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추방자로서의 지성인에게 있어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놀라게 되고, 결코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삶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공포로 몰아넣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행동하는 것을 익히는 즐거움을 말한다. 지성적 삶은 근본적으로 지식과 자유에 관한 삶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추상성- ‘당신은 좋은 삶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라는 보다 진부한 언술로서 추상성- 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의미에서 지성인은 땅 위에서가 아니라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난파된 조난자와 비슷하다. 이는 작은 땅을 식민화 하려는 목적을 가진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삶이 아니라, 마르코 폴로와 같은 삶과 더 유사한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경우는 경이로움에 대한 그의 느낌이 결코 그를 잘못으로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무단 획득자도, 정복자도, 침입자도 아니었으며, 언제나 여행자였으며, 일시적인 손님이었던 것이다.

추방자들은 사물들을 이면에 숨겨진 것과 현시점에서의 실질적인 것의 양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결코 고립된 것으로 보지 않는 이중의 시각을 가진다. 새로운 나라에서의 모든 장면이나 상황은 필수적으로 예전의 나라의 그것에 상응하는 것을 도출해내도록 한다. 이러한 시각은 지성적으로 어떤 이념이나 경험이 항상 또 다른 것과 대치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따금씩 새로운 국가와 옛 국가 모두를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빛 속으로 드러나게 하고 있다.

 

(중략)

 

사실상 지성인에게 있어 추방자의 입장이 되는 두 번째 이점은 사물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그러한 식으로 되어온 방식으로서 보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데에 있다.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서가 아닌 그때의 상황조건적 입장에서 보아야 하고, 그리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일련의 역사적 선택의 결과로서 보아야 하고, 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의 사실로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상황을 자연이나 신에 의해 주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변화불가능하고 영원하고,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권력과 지성”, 108~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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