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에 신이 산다(2015)

Le Tout Nouveau Testament, The Brand New Testamen







1. 기만적 예고편


  이 영화는 지난 2015년 마지막으로 본 영화다. 예고편을 보며 상당한 기대를 했는데, 영화의 내용은 영화의 제목이나 예고편과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과거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y)도 그랬지만 한국 배급사의 국문 제목 설정이 정말 자의적이고 동시에 관객과 제작자 양쪽을 기만하는 성격이 강해 보인다. 불문과 영문 원제는 의역하자면 새로운 신약성서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브뤼셀이라는 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신의 딸이 벌이는 로드무비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비해 국역 제목인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영화의 소재적 참신함을 과도하게 드러내어 영화가 가진 진짜 이야기를 왜곡하고 덮어 버린다. 영화는 절대 그 예고편이나 제목이 보여주는 것 같은 단순 유쾌한 코미디가 아니다.


2.영화의 얼개


  영화는 누구나 한번쯤 해볼법한 상상으로 부터 출발한다. 신이 불가지의 존재 내지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존재가아 아니라 우리랑 별반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인간의 탄생과 브뤼셀이란 세계의 탄생 모두 그의 자의적인 것들이다. 즉 신의 창조는 엄숙하고 경건한 필연이 아니라 우연과 유희의 산물인 것이다. 신의 삶은 세속적이고 가부장적이고 히스테리에 찌든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이다. 그는 여신인 그의 파트너를 능멸하고, 집을 탈출하여 그에 반기를 든 아들(그 아들이 바로 예수다)을 지탄한다. 딸은 늘 아버지를 거부하고 그에 대한 폭력과 폭언에 시달린다.

  이 신이 사는 집의 서재에는 거대한 우편함들과 한 대의 컴퓨터가 있다. 이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신은 세계를 관장한다. 그곳에서 삶과 죽음, 세계의 법칙들이 만들어 지며 그것들은 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정말 우스꽝스럽고 우리가 종종 '신의 장난' 외에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데 늘 아버지인 신의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아버지의 이 컴퓨터 단말기를 이용해 바란을 일으킨다. 아버지의 피조물인 인간 모두에 잔여 수명을 알리는 문자를 발송하고 아버지가 이 상황을 어찌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잠궈 버린다. 그리고 딸은 오빠의 도움을 받아 이 출구 없는 아파트 바깥으로 나온다.

  딸은 아파트를 벗어나 한 노숙자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신약 성서를 만드는 작업을 해나간다. 영화의 줄기는 아버지라는 기성으로 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서사와 질서를 만들려는 신의 딸, 에아의 로드무비다. 에아는 지상세계에서 처음 만난 노숙자 할아버지와 함께 6명의 새로운 사도를 만들어 포악한 아버지로 부터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


3. 6명의 사도의 수명에 대한 내 맘대로 해석: 기성에 대한 해체


  신의 딸 에아가 만나는 6명의 사도는 모두 흥미 진진하다. 우선 에아를 도아 새로운 신약을 집필하는 이는 냄새가 나는 노숙자다. 그는 천장이 없는 곳에서의 삶에서 안정을 느끼고 이 새로운 선지자에 대한 묘한 부정과 측은함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새로운 6 사도 역시 그 구성이 특이하다. 모든 남성의 시선과 관심을 받고, 모든 여성의 질투와 질시를 받는 아름답지만 상처와 장애를 가진 여인, 어릴적의 경험으로 성도착을 겪으며 남은 여생을 섹스를 통해 의미를 부여 하려는 남자, 단조롭고 정해진 직장의 삶 바깥을 누려보지 못한 사무직 남성, 남편과의 유복한 결혼에 지친 아내, 킬러 그리고 소아 당뇨로 여생이 길지 않은 '여자'로 살아보는게 꿈인 소년.

  이 6명의 사도는 우리가 흔히 구원의 매개자로 기대하는 전형적 모습과 거리가 멀다. 즉 그들은 우리가 흔히 사도, 구원자로 기대하는 규범적 인간이 아니다. 동시에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며, 지극히 일상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심성과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로 극은 각자의 "마음의 노래"를 두고 있다. 에아는 이들의 노래를 듣고 이들을 옥죄는 아픔과 이들의 욕망을 구원한다. 킬러와 팔 잃은 여인을 사랑하게 하고, 권태에 지친 여인에게 야수성 넘치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주고, 시간에 구속된 이에게 새와 같은 자유의 여정을, 성도착증 환자에게 과거 욕망 했던 그녀와의 사랑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에게 여장과 사랑을 준다. 그들의 욕망은 그들의 아픔으로 부터 연원하고, 에아는 그들의 아픔을 치유함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였다. 그렇다면 6명의 사도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구원자가 아닌 보통의 상처 받은 이들이고 동시에 비규범적인 이들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삐뚤지만 동시에 평범한 우리의 신과 더불어 특별하지 않은 삶의 가능성과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동시에 왜 에아는 속세의 피조물들에게 수명을 전송했을까? 수명은 죽음의 예고를 의미한다. 생과 사가 신에 의해 관장 되고 죽음이 마치 드라마 처럼 극적으로 우연히 다가올때 죽음과 그것을 관장하는 신의 존재는 두렵고 예지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수명을 예고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그 죽음을 매개로 하는 신의 권능과 경외를 해체시키는 것이다.

  에아는 죽음의 예고와 새로운 규범의 정립을 통해 기성의 규범과 권능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 상상력 그리고 놀라운 번역과 자막의 힘


  영화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에아가 6명의 사도를 만나 새로운 신약을 만들어가는 로드무비이며 동시에 6명의 사도의 삶과 아픔, 구원을 이야기하는 옴니버스이다. 그 과정에서 신과 에아, 여신의 이야기가 개별 옴니버스들을 연결하고 매개하고 있다. 문제는 영화의 결말, 즉 어린 소년의 죽음이 임박한 그 긴장의 시점이 너무나도 허무하고 어이 없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 역시 기성의 해체와 전복이다. 능멸당하고 바보 취급 받던 여신은 에아가 잠궈버린 시스템을 서재 청소를 위해 플러그를 뽑아 버림으로서 정지시켜 버린다. 그리고 새로 플러그를 꽂고 여신의 이름으로 시스템에 접속함으로써 에아가 해체한 기성은 여신에 의해 전복 된다. 그런데 이 전복의 과정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어이 없이 나타난다. 동시에 신은 천상게의 아파트로 귀환하지 못하고 먼 이국으로 추방되며, 에아는 소년과 사랑에 빠지며 노숙자는 신약의 필자로 이름을 얻는 것이 극의 마무리다. 극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놀라운 상상력에 기대고 있지만 그 결말은 대개 흔한 상상력의 그것과 같이 훅 꺼지는 거품과 같다.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자막이다. 성도착증을 지닌 남자가 과거 욕망 했던 여성과 만나는 과정에서 여성의 어설픈 불어와(그녀는 독일인이다) 이로인해 야기되는 언어 유희를 그 뜻과 맥락에 잘 맞춰 번역하고 자막으로 만들어 냈다. 요근래 가장 인상적인 자막과 번역이었던것 같다.

  예고편과 제목에 기만당하고, 영화의 결말이 다소 시시했지만 영화 자체는 참신한 상상력의 재현이었다. 신약이란 것의 의미와 구원에 대해 나같은 비 신도 보다 훨씬 풍성한 해석을 하실수 있으신 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이야길 해주시면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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