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내거든...




1. 그래서 무엇이 인간적인가? 이미테이션 게임은 어떠한 질문들을 통해 그 대답이 인공지능의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를 판별하는 것이라고 영화에 소개된다. 한편 생각해보면 영화는 시종일관 수많은 이들 간의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가득하다. 일견 모자라 보이는 앨런에 대해 폭력과 학대를 가하는 급우들, 그를 이상한 놈으로 단정 짓고 고용하지 않으려 한 데니스턴 중령, 휴를 위시한 팀원들, 앨런의 선택으로 죽은 피터의 형과 피터, 소련 스파이 케언크로스, MI6의 멘지스까지...앨런 튜링의 행동은 지나치게 논리와 계산에 매몰되어 그것이 비안건적인듯 보이지만, 정작 그를 비인간적이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비인간성은 '그래서 무엇이 인간적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앨런의 뇌는 garbage in garbage out 이라는 전통적인 컴퓨터의 문법처럼 한 치의 위장과 가림 없이 작동하지만, 정작 그것은 한편으로 많은 이들은 구원하고, 동시에 많은 이들의 희생을 선택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인간과 컴퓨터 모두를 안고 있는 인간이지만, 소련 스파이가 밝혀진 시점부터 그가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보여준 행동은 그가 철저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 앨런이 로버트 녹 형사에게 이야기하듯, 인간의 선호와 취향은 그 존재의 무한함만큼 무한하고 다양하다. 고로 어쩌면 다름(물론 이 다름조차도 거대한 경험적 데이터가 다르게 축적된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앨런은 인간들이 만든 제도와 편견, 관념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파괴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앨런을 파괴한 이 제도와 편견, 관념과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놀랍도록 강력하게 작동한다. 대구와 서울의 퀴어 페스티벌에 대해 가해진 일부 원리주의 개신교 교회의 공격, 인종을 위시한 여러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 사회의 폭력과 억압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 시간에도 작동하고 있다. 앨런은 비록 비인간적인 그래서 통계라는 도구로 정당성과 설득력(어쩌면 그것은 멘지스 등 윗사람이 아니라 팀원 그들 스스로에게 어떤 구원의 여지 같은걸 남기는 그런 정당성일지도..)을 부여한 선택을 통해 사람을 살렸지만(동시에 죽음을 방조했다.) 그가 살려낸 사람과 체제와 국가 그리고 그 부산물들은 그를 파괴했다. 누군가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기에 본질적으로 하나의 오리지날 타입에서 파생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오리지널 타입을 상정함으로 수많은 파생물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 신의 창조물임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그것이야 말로 인간적인 것이라 하지만 정작 우리는 무엇이 인간적인지 잘 알고 있다. 선호와 취향이 인간의 숫자만큼 무한한 세계와 폭력적 기준이 되는 하나의 원형이 존재하는 세계 중 무엇이 더 인간적인가?

3. 한편 드는 생각은 여전히 우리는 관계에 있어 암호와 해독, 그리고 암호화와 해독을 위한 알고리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와 젠더, 세대, 경제적 계급, 사회적 지위, 교육, 정치적 지향, 출신 지역 등 수 많은 이유로 아니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한계와 결함으로 우린 수많은 오해와 몰이해, 숨김과 가림, 위선과 가식 등 암호를 생산하고 있고 한편 다른 한 측에선 만나고 이해하고 알기 위해 이를 끊임없이 공략한다. 놀라운 건 이런 암호화 기제 덕분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암호화 불능자들은 배척받고,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고 억압 받는다.

이에 관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앨런과 조안의 약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휴와 조안의 동료가 서로에게 구애의 암호를 날리고 이를 해석하는 장면이다. 그 두 사람 사이엔 단 한 먀디의 말도 주고 받지 않은 채 시선과 외면을 마치 하나의 모스 부호들처럼 활용하여 관심과 구애를 주고 받는다. 또 하나는 소련 스파이가 밝혀진 이후 앨런이 조안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할 때 보여준 암호들...얼마나 피눈물 날까? 난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로 인해 당신이 위험한걸 원하지 않는다는 남자와 그걸 해독하지 못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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