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




 

들어가며


  영화를 보고 내 멋대로 리뷰를 쓰겠노라 하고 배역들의 이름을 확인하러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레버넌트>의 감독이 바로 <버드맨>의 감독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버드맨>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위플래시>와 묘하게 조응되는 지점이 있었다. 뭐랄까 인정? 삶의 의미? 등에 대해 <위플래시>와 <버드맨>은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레버넌트>는 최근에 개봉한 <헤이트폴8>과 조응하는 느낌이다. 둘이 소재적으로 미국의 서진 시기, 백인과 인디언, 흑백같은 인종의 문제, 눈 덮인 겨울이란 계절의 공통점 등 많은 부분 서로 간에 겹치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 한편 영화 정보와 주변의 이야길 들어 볼때 <헤이트폴8>의 이야기는 <버드맨>의 극장과 같이 좁은 공간 배경에서 펼쳐지고 

<레버넌트>는 훨씬 거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도 있지만 이 두영화 사이의 묘한 긴장과 조응은...나름 흥미로운 지점이 아닌가 한다. 아직 <헤이트폴8>을 못봤지만..(사실 타란티노 영화의 그 잔인함이 불편 ㅜ) 조만간 보고 두 영화를 비교해도 재밌을것 같다.



1.  <레버넌트>는 가죽을 수집하기 위해 떠난 미군들이 인디언의 습격을 받으며 퇴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중요한 이야기의 기둥으로 삼고 있다철수 과정에서 길 잡이인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끊임없이 의견 충돌을 빚는다이 둘은 철저히 상극으로 나오는데 이는 특히 글래스가 인디언 아내와 사이에서 얻은 인디언의 모습을 한 아들 호크에 대한 태도와 인디언에 대한 태도움직임의 동인 등에서 확연히 드러난다피츠제럴드는 잔인하고 세속적이며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다그는 인디언을 인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돈과 땅새로운 삶에 대한 지향이 강하며필요에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면을 지닌다하지만 그렇다고 피츠제럴드는 철저한 악마는 아니다그는 어쩌면 욕망과 혐오가 가득한 그 시대의 보통 인간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그에 비해 글래스는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그의 일족과 아내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인디언의 피와 외모를 물려받은 아들에 대한 확고한 사랑을 보인다오히려 피츠제럴드가 흔한 세속적 인간이라면 글래스야 말로 그 시대의 맥락에선 실로이상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영화를 보면 인간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브리저는 인디언의 추격과 추위 등 악조건에도 죽어가는 글래스 옆에 남겠다 자원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피츠제럴드가 호크를 죽이고 자신을 기만해 글래스를 버렸음에도 온전히 저항하지 못했고, 진실을 드러내지 못했다. 홀로 남은 포니족 인디언은 글래스를 살려줬고 글래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하는 '인간적인 행동'을 했지만 그들을 짐승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그러면서 그를 죽인 프랑스 상인들은 주인공과 그 일행을 쫓는 인디언 부족의 여성을 겁간한다. 스스로를 문명화된 인간인냥 행세하는 이들은 극에서 오히려 인간같지 않아 보이고, 짐승으로 불리는 이들에게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잘 생각해보면 영화가 그 문명화된 인간에 대해 보이는 의구심은 영화의 중요한 주제의식 같아 보인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디카프리오를 공격한 문제의 회색곰(이 곰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방아쇠다), 영화의 이야길 끌고 나가는 축인 딸을 찾는 인디언 추장, 문명과 사실상 격리당한채 '생명'과 '복수'만 남은채 동물과 같은 처지에서 피츠제럴드를 쫓는 글래스는 피츠제럴드나 프랑스 상인들과 더욱 비교되어 보인다.

 

2.  <레버넌트>를 함께 본 후배와 스탭 롤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공통적으로 체력 방전을 호소했다. 우리가 뭔가 부실하게 먹고 영화를 본것도 아니지만 영화는 보는 이들의 에너지를 소진, 고갈시키는 듯 했다. 그것은 아마 

영화는 몇 가지 극한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긴장감 보다는 압도적인 자연에서의 고난과 고통, 생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강에 떠내려가고, 곰에 찢기고 등등...혹한의 대륙의 삼림에서 생존하여 복수하기 위한 생존기였고 영화는 끊임없이 휴 글래스란 인물이 처한 상황의 거침과 야생성을 보여준다. 덕분에 휴 글래스로 분한 디카프리오는 한 절벽에서 떨어지고, 팔만으로 기어다니고, 겨울 설원을 걷고, 강에 빠지고, 날것과 온갖 열매를 섭취하며 그 생의 의지를 이어간다. 고립된 인간이 생의 의지로 견뎌가는 수 많은 영화 중에 화려한 스펙타클이나 긴장감이 아니라 그 상황만으로 이렇게 보는 이를 고통스레 하는 영화가 있었을까 싶다.

 

3. 한편 영화를 찍은 배우와 관객만 아니라 촬영도 힘들었을것 같다. 전작인 버드맨이 브로드웨이의 극장의 무대와 대기실, 복도 그리고 인근의 바와 거리라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영화를 이끌어 갔다. 카메라는 시야 보다는 배우들 특히 마이클 키튼의 분열적인 정서와 움직임을 담는데 많은 투자를 했던것 같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뭐랄까...계속 반복하지만 그 상황의 거침과 야생성, 광활함 등을 강조하는 탓에 촬영이 엄청 힘들었을것 같다. 죽어가는 디카프리오의 호흡과 그가 처한 공기조차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디카프리오의 코 앞에 들이대는 건 여사고, 영화의 대부분은 자연광 촬영이다(함께 본 후배의 말로는 단 한번 조명이 쓰였단다.). 게다가 CG를 많이 쓴것 같지도 않고...미국 중북부 어딘가로 추정되는 거대한 산악, 삼림 지대를 만들어내고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영화를 만든다는게 그렇게 수월하고 안온한 과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많이 신경 쓰이는 것이 음악이었는데 스탭롤을 보니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 작업에 참여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엔딩 장면부터 흘러나오는 음악들의 음에서 한중일에서 흔히 들울 수 있는 형태의 현악기 소리가 흘러 나온다.

 

4. 사실 영화의 중반부는 솔직히 좀 지루하고 쳐지는 부분이 있다. 강렬했던 영화의 시작에 비하면 분명 많이 쳐진다. 인디언 족장의 딸이 갑자기 나타나서 프랑스 상인들에게 겁탈당하고 이걸 또 글래스가 구해낸다던가, 그 프랑스 상인들이 공격 받아 궤멸되어 글래스의 일행이 있는 진영으로 와서 글래스의 생존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를 내놓는다던가...썩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결국 시놉시스만 보면 흔한 복수 영화 처럼 보인다. 그래도 영화의 차별된 지점이라면....생명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디카프리오의 모습과 노력 그리고 그 디카프리오를 둘러싼 것들이 가진 묘한 장치...요컨데 곰(생명의 위협), 무덤(부활), 움막과 말(회복), 대위의 옷(복수) 그리고 디카프리오의 상황, 심리를 보여주는 인디언인 글래스의 아내의 환영 등도 재밌다. 한편 영화는 뻔한 복수극의 결말을 피하려 하지만 그래도 영화의 가장 중요한 얼개는 '아버지'와 '복수'와 같은 미국적 정서인 것이고....개인적으로 인디언과 미국인 사이의 분열적 자아를 지닌 경계인으로의 휴 글래스란 인물을 더 드러냈으면 어땠을까도 싶지만 그랬다면 어떤 생명력과 생존의 이야길 끌어내긴 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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