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학우 여러분들은 안녕들 하십니까?



  칼바람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이 왔습니다. 우리가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그 시간, 차가운 이 겨울 거리와 광장으로, 산과 들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추진된 각종 공공부문의 민영화 시도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더욱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한국 철도의 민영화, 즉 경쟁체제 도입이 본격화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철도 노동자들은 차가운 겨울 바람과 직위 해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철도공사의 적자를 빌미로 철도 산업에 시장과 같은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서구의 철도 민영화 경험이 보여주듯 철도민영화는 안전과 비용 등 모든 면에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 곳 영남대에서 멀지 않은 밀양과 청도에는 핵발전소와 고압송전탑에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저항의 과정에서 유감스럽게도 두 분의 어르신이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최소한의 조의 표명과 주민들의 인권 존중은커녕, 이들을 개인의 이익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등록금과 알바노동, 취업, 주거 비용, 대학 구조조정의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우리 세대의 모습을 일컬어 '88만 세대', '삼포 세대'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불안정의 일상화는 우리 청춘들에게 생존을 위한 경쟁, 순응, 외면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에 대한 순응이 우리 삶을 과연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습니까? 신자유주의가 낳은 외면과 순응은 우리를 지독한 자기검열과 소외로 몰아넣었고, 우리는 그렇게 민주주의의 주체인 참된 시민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 구조는 우리 삶의 여러 문제들과 공공의 문제로부터 우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적 결정은 당사자들인 우리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 의사를 이야기하거나 비판을 하는 이를 불순 세력 내지 종북 세력으로 몰아가면서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학우 여러분,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 주십시오! 우리 옆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들이 고통 받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라며 금기시하고 외면했던 그 고통들이 이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들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통들을 외면한다면 우린 과연 언제까지 더 안녕할 수 있을까요? 고려대에서부터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이 물음,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저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영남대 학우 여러분들은 안녕하십니까?


참 된 ‘너‧나‧우리’를 꿈꾸는 대구경북 지식-만남 공동체 비상구

우린 비정상성이 정상화 된 시대, 불안정성이 안정된 세상을 살고 있다. 이건 마치 밥을 살기 위해 먹는것이 아니라, 밥을 먹기 위해 사는 삶을 강요하는것이다.
우린 모두 행복하길 바라며 미친듯한 스펙경쟁, 학점경쟁, 토익경쟁을 치뤄낸다. 그리고 그 고비를 넘기고 행복할 수 있을것만 같은 지점부터 우린 급여와 직급, 집값과 평수, 차의 배기량, 주식과 적금이 규모를 두고 경쟁한다. 마치 우린 태초에 경쟁하고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태어났는냥 그렇게 돌진하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향해 돌진하고 부딪히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운명을 지닌 범퍼카 마냥..

그러나 기성세대는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있다. 김난도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언명이나, 안철수류가 몰고 다니는 힐링과 같은 '마취약'과 '진통제'는 우리 세대에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한다. 도리어 이런 허위들은 마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비정상성이 본래 정상적인것 마냥 호도하고, 어떻게 이걸 잘 견디고 통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우린 스스로 자문자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행복하냐? 안녕들 하냐?

유감스레 난 행복하지 않고, 당옇니 안녕하지 못하다.

이 땅의 청년들의 삶 아래엔 깊은 용암이 존재한다. 이 용암의 분출이 타협과 자기구속, 자위로 끝날지, 개인적 일탈과 같은 분출로 끝날지, 68과 같은 폭발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튼 제발 비정상적인 지금의 상황이 정상인냥, 운명인냥 굴지 말자
우리가 덜 경쟁하고 덜 유능하고 덜 열심히 해서 우리 삶이 힘든게 아니다. 그리고 네 삶의 돌파구가 우리의 돌파구는 아니다. 그거야 말로 기만이다.

1. 비상구가 두번째 대자보를 부착했습니다. 어제 대자보 장인들을 모처에 가둬두고 한땀한땀 대량생산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부착조가 추운 겨울에 학교를 돌며 여러 공간에 부착했습니다. 

2. 어제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에 올라운 성노동자의 대자보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저는 불법적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여 그녀의 시민적 권리가 박탈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거대한 불법을 일상적으로 범하는 재벌과 권력자들에겐 분노하지 못하고, 소수자이며 약자인 그녀의 시민적 권리를 박탈하려 할까요? 한국 사회의 진보가 약자, 소수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면 우리의 운동은 무얼 위한 운동인가요? 그리고 그것이 일베와 같은 극우 커뮤니티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신다는 분들께선 이 대자보 운동의 함의가 무어라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자보가 과연 단순한 민영화 저지를 위한 도구인가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 전면화된 이후 타자의 고통에 대한 반응이 사라지고, 외면과 소외가 일상화되는 현실에서 이 대자보의 본질은 우리의 아픔이 단지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것을 외치는것 아닌가요?



<이하 전문>

안녕하지 못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영남대에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분들과 안녕하다는 분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쭙습니다. ‘여러분, 안녕들 하신가요?’

‘안녕’이라는 물음은 지난한 일상에 찌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고액 등록금은 물론이고 토익성적, 스펙 경쟁에 우린 언제나 순응했습니다. 추운 겨울 자취방에 보일러 하나 마음대로 틀지 못하면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에 의지하면서도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친구, 동료들과의 간단한 맥주 한잔의 여유조차 포기하며, 그 경쟁을 넘어 힘겹게 사회로 나아갔을 때 우리의 아픔은 과연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는 것일까요? 내가 한 걸음 나아갔을 때 사회는 열 걸음, 백 걸음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등을 떠밉니다. 얼마나 더 이런 경쟁에 순응해야 우린 행복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연봉, 수입, 차 값, 집 평수가 얼마나 되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우리 세대는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마저 유보한지 오래지 않습니까?

현실은 우리에게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살 것을 강요합니다. 그야말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지금 우리 삶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을 앞세운 철도 및 의료 관련 정책의 추진은 공공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고, 불확실한 삶을 더욱 암울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너와 나, 우리들이 감당해야하는 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전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통해 자신들의 아픔을 외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우리의 아픔은 과연 당연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과연 무엇 때문에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였는가?” 

저희는 이 순응과 경쟁, 외면과 소외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너 우리의 고통은 이제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당연한 아픔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뒤틀린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결과입니다. 전국에서 여러 대자보를 훼손하는 몇몇 사람들도 역시 그들의 삶의 아픔과 좌절 앞에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나요? 저희는 그들의 행동 역시 우리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묻고 싶습니다. 이 고통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몸부림으로 이 고통의 고리를 끊고 참된 삶을 살 수 있을지 절실하게 학우 여러분과 고민하고 싶습니다. 이 대자보는 선동이 아닙니다. 감성팔이도 아닙니다. 저항하라고 강요하지도, 따르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 대자보는 아픈 우리의 현실과 그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 체제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공적 담론의 장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린 성별도, 가정의 환경도, 생각도 모두 다르지만 서로 다르지 않은 고통에 직면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관용과 차이에 대해 인정하며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다른 학우 여러분의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린 이 아픔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찾고 싶습니다.

아픔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묻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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