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배반한 존재: 카톡 엑소더스(영대신문 1606호 2014년 10월 15일)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그 시대의 언어는 그 사회의 맥락과 배경, 사고, 정서, 문화가 투영되고 그것에 의해 구성된 면이 있다. 그런데 종종 새로운 말을 일상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몇몇은 그저 그런 줄임말이나 말장난이기도 하고, 몇몇은 그 안에 놀라운 통찰력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적지 않은 경우엔 그 말 안에 우리 사회에 나타난 어떤 변화, 돌출의 존재가 담겨있다.


  사이버 망명, 정부가 지난 9월 말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의 허위 사실 유포 방지를 목적으로 한 전담 조사, 감시 조직 운영을 밝힌 것이 이 낯선 조어의 배경이다. 이후 사정당국의 사이버 허위 사실 유포 대응 관련 회의에 카카오와 다음, 네이버 등 주요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참가한 사실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에 대한 카카오톡 검열 사실이 알려지며 텔레그램과 같은 외국계 서비스로의 이전이 확산되었다. 과거 공안사건에서 이메일에 대한 압수수색과 증거 능력의 인정이 이뤄지며 다수 진보진영 활동가들이 압수수색의 가능성이 약한 구글로 이메일을 옮긴 사례는 있지만 이토록 광범위하게 인터넷 서비스의 이전을 시도한 사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카카오톡은 사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과 불가분의 지위에 있는 어플리케이션이다. 많은 이들이 카카오톡을 국민 메신저, 국민 어플로 까지 격상시켜 부르고, 심지어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스마트폰에서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이는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카카오톡은 높은 상징성을 가져왔다. 그런 카카오톡의 지위를 흔든 이 검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카카오톡의 위기로 표상되는 이 문제는 우선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허위 사실 유포와 재배포를 막기 위해 국가가 선제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발상, 그리고 그것이 지닌 내적 문제점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는 국민의 사생활에 대한 검열이란 점에서 국민의 법 감정은 물론 헌법적 가치와 보수 집권세력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 모두에 배치되는 시도다. 또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의사 표현과 교류, 토론이 활발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허위사실의 유포를 빌미로 국민의 표현, 출판, 사상의 자유를 제약할 가능성이 큰 검열 체계를 운용하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물론 헌법과도 위배되는 일이다. 이미 우리는 과거 미네르바 사건을 경험하며 국가가 어떻게 허위 사실이란 이름으로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지 경험했다. 비록 국민들의 여론과 정치적, 사회적 의사표현이 사안에 따라 때로는 복잡한 사실관계에 엄밀히 부합하지 못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그들의 여론과 공의를 허위사실이라고 폄훼 할 수 있느냐 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또한 이런 검열체계가 전제하는 사실관계란 대개 세계관과 시각의 차이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무엇이 대체 사실이고 무엇이 허위인가? 과연 공안기관과 사정당국이 매우 정치적이거나 가치판단의 문제일 수 있는 사실관계들을 어떠한 근거와 권위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발상은 마치 팩트라는 미명하에 상대의 시민적 권리를 봉쇄, 침해하려 드는 일베와 같은 넷우익들의 폭력적 행태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적 자유와 권리는 정보나 지식의 수준이 결정하지 않는다.

  물론 사이버스페이스가 그 공간과 기능의 특성으로 인해 잘못된 정보의 유통이 매우 단시일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을 빌미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개인 활동에 국가가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대체 어떤 논거로도 정당화되기 힘들다. 만약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피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민형사적 구제 절차를 거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최초 유포자와 그것을 리트윗이나 공유의 형태로 유통시킨 이들을 선제적으로 검열, 처벌하겠다는 이번 시도는 철저히 비민주적이고 위헌적인 시도이다.


  언어가 그것이 서있는 사회적 맥락과 배경으로 구성된다면, 국가는 그것이 기대고 있는 국민들을 통해 구성된다. 그리고 국가는 스스로를 구성하는 국민들 사이에서의 어떤 공공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다. 물론 사익의 총합이 공익이 아니기에 공적 기구의 자율성과 시민의 자율성이 충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 대한 검열 시도와 산케이 신문 한국지국장에 대한 기소 사건을 보고 있을 때 정권이 자기 보위 논리에 매몰되어 국가가 지켜야할 공공성과 가치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이야기한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이라는 초헌법적 질서가 스스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호명했던 사실이 떠오른다. 현 정권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보통 국민이 생각하는 자유주의+민주주의의 의미와 그다지 다르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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