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답의 현실에서 길을 모색한다.

동국교지 통권 71집을 읽고 -

 

이시훈(본색 소사이어티)


 

0.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 처해있는 현실은 비극이란 말이 왜소해 보일 정도로 처참하다. 그들은 생애주기 전체에서 10대 라는 협곡을 질주하여 성인이라는 들판에 들어선 이들이지만, 그 들판에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이 없다. 심지어 그들이 원했던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앞서간 이의 발자국도, 이정표도 없다. 아니 이 들판에서 자존을 지키기조차 벅차고,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은 나날이 침식당하고 있다. 협곡에선 단지 협곡의 끝으로, 좋은 대학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 따윈 없어 보인다.

 

1. 이 불행한 세대의 상당수가 거치는 대학에서도, 이들 세대 전체 차원에서도 연대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들이 과연 공통의 상황 인식, 또래 의식이 있는지 되물어야 할 정도로 이들은 파편화되고 개별화 되어있다. 목적은 오로지 생존이다. 삶의 목표로서 행복은 이미 그 수단에게 전유당한지 오래다. 그런데 이런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상한 이들이 있다. 장학금 받고, 좋은 회사 취직하고, 빚 갚기도 바쁘고 버거운 이 시대에 자기 돈과 시간을 내놓는 이들이 있다. 돈이야 하긴 다시 벌면 그만이겠지만, 시간을 내놓는다니? 주지하다시피 시간은 우리 존재의 고유한 것이다. 분할할 수 도 공유할 수 도 없다. 그런데 그걸 나 이외의 목적으로 내놓는다니? 미친것 아냐?

 

2 동국 교지 71집은 그 이상한 이들이 만든 잡지이다. 학생들이 내는 교지대도 없이, 장학금도 없이 만들어진 잡지이다. 좀 허름하려니, 허접하려니 편견은 갖지 말라, 내용은 생각보다 알차고 탄탄하고, 정성과 열의가 묻어난다. 이걸 과연 자발적 착취만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3. 71집의 컨셉은 노답이라는 슬로건과 레고에 드러난다. 상술했듯이 대학생의 현실은 처참하다. 취직 아니 생존을 향한 각자도생의 엑소더스가 이어진다. 대학 공동체 따윈 이미 등짐의 대상일 뿐이고, 대학 문화나 협력과 연대는 밥숟가락보다 미천하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사는데도 길은 안 보인다. 돼지국밥 한 그릇도 못 사먹을 알바 시급은 오를 생각을 안 한다. 학자금 대출 금액은 이미 쌓이다 못해 체감의 영역을 벗어났다. 교지 71집엔 없지만 주거권 문제, 취업 문제도 심각하고, 20대는 사랑과 섹스도 포기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정말 이런 인생은 노답이다. 그런데도 현실을 긍정하고 낙관하라고 한다. 원래 그렇다고? 이 고통이 마냥 당위이고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는 꼰대들이 범람한다. 힐링? 아프니까 청춘이다? 20대가 레고인기? 노답이란 말은 20대가 처한 스스로의 상황과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의 사각 모두에 대한 엿 먹이기.

 

4. 학내 문제를 다루는 장은 사안과 사태를 다루는데 분명한 입장과 사실관계의 충실도가 균형을 잘 잡고 있다. 비판정신이 사실 관계를 좀먹지 않고, 사실 관계에 대한 전달이 시각을 희석시키는 경우가 보기보다 흔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렇다면 교지에 묻어나는 시각이란 무엇인가? 그것 바로 학생과 대학 구성원이 만드는 민주주의, 대학에서 학생의 참된 주체성 내지 주인됨이다.

 

5. 사회면에서는 매력적인 시각들이 제시된다. 우선 새월호 참사로 인해 취소된 뷰티플 민트 라이프의 사례를 중심으로 애도의 분위기가 다양한 현안들을 평가, 재단하는 하나의 잣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다루는 첫 글에 주목해본다. 당시에도 논의가 활발했지만 참사아 있은지 두 계절이 지난 지금, 당시 추모의 분위기 하에 있었던 억압이나 규율을 성찰해보는 것은 죽음을 추모하고 그 죽음의 책임과 진상율 규명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다. 대학의 위기에 관한 글은 일반적으로 대학의 이념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을 만한 글이다. 하지만 글 전체에서 전제하는 옳은 대학의 상에 대해 그것이 왜 옳은지, 설명력있게 이야기 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현실에서 대학은 이미 취업을 위한 하나의 코스웍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을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지식과 진리를 통한 인간 해방에 대한 지향 때문이 아니다. 대학은 그저 각자도생에서 조금 더 좋은 위치를 점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이런 시각이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그런 당위성이 올바른대학을 찾을수 있을까? 물론 교지는 그 올바른 대학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연대의 터전이 될수 있기에 이런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 더 발전적이고 실천성 있는 논리와 운동의 구성도 필요해 보인다.

 

6. 사실 놀라운 건 71집 전체의 구성과 흐름이다. 상당히 매끄럽게 읽히고 넘어간다. 구성이 마치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같다. 각 장과 절은 일견 단절되고 개별적인 이야길 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사이를 하나의 통시성이 관통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고발? 증언? 어떤 표현이 좋을지 쉽게 특정하긴 어렵지만, 선명한 문제의식이 글 사이를 관통한다. 글마다 선호에 부합하는 것도, 시선이 덜 가는 글도 있고, 조금 보완되면 하는 글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글의 수준과 글들의 연결성이 좋다. 특히 노답기획이 보여주는 비극적 리얼리티와 협동조합 기획이 가지는 유기성은 이거 혹시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아닌지 묻게 된다.

 

7.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일단 제한된 지면과 자원으로 최대한의 이야길 하려 한 탓에 편집의 문제, 기독성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글자와 바탕이 채도가 비슷해서 읽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거나, 글자의 밀도가 너무 높은 경우가 눈에 띈다. 교지 자체의 문제이기 보단 그들이 지닌 자원과 현실의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 잡지를 만드는데, 그들은 너무 가난하고 어렵다.

 

8. 글쓴이는 최근 기고에서 대학에서 담론이 사라지는 현실을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대학 언론에 책임과 실천을 요구했다. 사실 대학 언론이 대학 언론일 수 있는 필요충부놎건에 대한 의심이 있다. 학생들이 굳이 대학 언론이 아니라도 자신의 이야길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도 왜 대학 언론이 필요할까?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대학 내부 공간에서 대학에 대해 대학다움을 요구할 이들에게 만남연대의 마당을 열어주고, ‘할 공간을 열어주는데 있어 가장 쉬운 위치에 대학 언론이 있기 대문 일 것이다. 물론 대학 언론의 현실은 그 세대가 처한 현실 이상으로 고난하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이들이 있고, 여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자신의 20대 어느 날 하루하루를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있는 한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희망이 있다. 동국교지에, 그리고 글쓴이를 포함해 아직도 대학다움을 꿈꾸는 유물들에게 건승이 있길


9. 굳이 글 중에 추천할 글을 뽑으라면 '노답'의 첫 글인 심기용 군의 글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성일권 편집장 인터뷰를 강추 팡팡 ㅋ 





교지 편집장님이 경산 촌동네까지 교지와 손글씨로 된 편지를!(얼마만에 편지를 받아본건지, 연구실에 막 자랑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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