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잡지 외줄산책(2017)에 실렸던 글이 대학연구네트워크(http://renetuniv.tistory.com/31)과 한국대학학회의 저널 <대학: 담론과 쟁점> 2018년 1월호(통권 5호)에 수록되었다. 이에 그간 블로그에 안 올렸던 이 글을 아카이브 목적으로 블로그에 게재한다. 해당 글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 라이센스로 대학연구네트워크를 통해 배포되었다. 해당 규정을 위배한 경우 민형사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만들어진 2부 리그




이시훈[각주:1]

 



 

0.

지금 대학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죽어가고 있다대학에는 배움과 탐구인간 본원의 자유와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사라졌다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거대한 사회적 열정과 의지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한때 해방구이자 자유과 민주의 요람혁명의 산파였던 대학은 이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정되고 좋은 자리에 학생들을 내보기 위한 욕망과 생존의 문법에 포획당했다불안정하고 유동하는 사회에서 과거와 같이 대학의 존재는 어떤 견고한 지지판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지금의 대학은 거대한 생존의 공간이다우리가 가진 전통적 관념으로 대학은 사라진 채 받아쓰기 기술자와 밤샘 기술자문제풀이 기술자만이 자라나는 학습소만 남았다대학의 가치와 존재 이유소명은 이제 수월성과 돈성과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우리가 알던 대학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신과 신앙의 세계에서 인간 스스로의 이성과 오성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규명하려던 중세 대학의 몰락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대학은 다시 호출된다그렇게 재건된 대학의 존재는 국가 체제 내에서 지배 엘리트와 중간층의 생산과 교육이라는 핵심적 역할을 소화하며 국가기구와 비슷한 제도적 지위를 가지면서도 상당한 자율성과 정치적사회적 자유를 향유하는 특권적 제도이자 공간으로 기능했다이런 근대 대학의 존재는 제3세계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반독재 체제의 근거지였으며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탈물질주의-탈권위주의반전 등의 운동과 새로운 문화적 양식을 낳는 산실이었다.

 

그런 빛나던 과거는 어느새 스스로에 대한 부정과 회의자조로 바뀌고 있다자기 전공에 대한 공부는 해당 전공이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보다는 취업에 더 유리한 전공 여부와 가장 기본 스펙인 학점을 위한 것이고그나마도 인문사회 계열은 그 학점조차도 학점 인플레’ ‘문돌이’ 등으로 폄훼당하며 불신받고 있다살인적인 등록금과 생활비는 이 생활 자체를 영위하고 이어가기 위한 불안정 노동을 요구하고 강제하고 있으며장학금은 어느새 학문과 배움에 대한 장려가 아닌 우수 학생들을 유치/유지하기 위한 대학의 생존 전략으로 전락했다삶과 세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질문과 상상이 상실된 대학에 남은 것은 거대한 먹고사니즘과 생존주의의 논리다학생부터 교수와 교직원대학 제도 전반에 서려 있는 논리는 어떤 의미로 가장 퇴락한 현실주의에 다름아니다이 퇴락한 현실주의는 꿈과 희망상상력과 열정의 안온한 보호구역이던 대학을 죽였다꿈과 이상은 경멸당했으며열정은 어느새 자본의 착취와 탈취를 포장하는 옷감이 되었다이런 현실에서 아직 대학에 남아 있는 오래된 아카데미즘의 망령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고 반발하고 저항하며 자유롭고 살아 있는 대학을 말하지만 이 죽음의 추세를 되돌리기엔 중과부적이다대학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향하여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죽음의 속도가 무척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사멸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의 존재는 우리에게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의 흐름은 누군가에게 지연되고 유보되는 데 비해 누군가에겐 그 죽음의 속도는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다마치 하나의 차원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양자는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른 몇 개의 차원을 사이에 둔 듯하다본질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하지만 왜 죽음을 향하는 시간의 속도가 상대성을 가지는지는 분명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다정녕 그들은 다른 시간의 차원 속에 놓여 있는 것일까?



1.

해방 이후에서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는 군부와 학생그중에서도 대학생 사이의 투쟁의 역사였다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적인 교육과 기술의식사고인식을 얻은 집단이었다대학은 민립대학 운동자강운동근대적 국민국가민주국가 만들기를 위한 담론과 실천의 요람이었다. 60년 4월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연 역사의 길을 그들의 후예들은 묵묵히 걸었고, 80년 5월을 거쳐 체제에 대한 변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온몸으로 받아냈다하지만 그들은 이런 급진적인 운동을 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근대적인 사고와 인식이 자라나는 뿌리였으며한국의 독특한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를 지탱하는 기술관료와 기업의 중간 관리자기술자층의 근간이었다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이론과 담론의 수용자였고 이를 확산하는 계몽적 역할을 수행했다이런 대학생들의 역할과 실천 속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운동들이 자라났다만약 한국에서 대학의 존재의미와 기반이 허술했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금 우리가 겪는 시공간과 다른 곳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대학과 그곳을 거치는 이들이 군의 근대성과 경합하며 국가와 정부자본과 개별 기업갓 자라나기 시작한 시민사회와 여러 문화지식 하부구조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의 역사이다.

 

대학은 이 50년의 싸움에서 군이 표상하는 질서와 근대와의 경합에서 승리했지만 최종적 승리를 획득하지 못한 채 역사의 주체에서 탈각되어버렸다대학은 더 이상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열지 못하고 있으며과거 대학생의 정체성으로 역사를 열던 이들은 다른 옷을 입고 도리어 대학을 옥죄는 역할을 하고 있다대학다움대학스러움은 과거 세대의 향수 속에서만 존재하며 대학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선진적이고 전위적인 하위집단을 형성하고 있지도 못한다.

 

비록 현재의 대학과 대학생이 과거처럼 빛나는 역사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대학과 대학생이라는 주체공간제도문화와 의식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른 의미와 내용맥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대학과 대학생을 둘러싼 관계들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역학 관계와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접근은 기존의 제도 정치 중심의 접근과 차별되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2.

서울은 특별한 곳이다그곳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의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문에서 강력한 표준 권력을 행사하고이 표준에 어긋나는 것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권력을 가진 곳이다서울은 존엄한 곳이다우리는 이 서울의 존엄을 위해 서울 아닌 곳들의 일자리청년과 생명구매력을 싹 쓸어 담아 서울로 이전한다서울은 반짝반짝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서울은 아름답다.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림픽대로의 실황을 들으며 한강변의 야경과 그 체증을 연상하는 내 몸은정작 대구의 담티 고개나 부산의 대티 언덕을 넘어서고 있다서울은 찬란하다이곳이야말로 진정한 기술의 파라다이스, 21세기 하이 모던의 공간메트로폴리탄 그 자체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울과 지방 사이에 이런 차이가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는다오롯이 서울을 동경하고 질투하고 사랑하며 증오하는 서울앓이를 할 뿐이다.

 

서울의 빛남과 잘남화려함을 설명하는 대전제는 서울이란 땅이 지정지경학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지만은 않으며 동시에 서울 사람들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래 가장 지적으로 탁월하다든가 가장 성실하고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한강을 장악하면 한반도의 지배자가 된다고 교과서는 설파하지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입된 이런 미신과 신화당위를 걷어내고 서울과 지방 사이의 진짜 관계를 드러내는 역사적 단초를 찾는 일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196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는 신기한 클리셰가 숨어 있다이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의 핵심은 경제 성장과 공업화 단계에서 가족 전체의 풍요를 위해 누가 기회와 자원에 접근하고 누가 희생하여 이를 뒷받침하는지에 있다가난한 일족을 일으키기 위해 똑똑한 장남에게 모든 경제적사회적정신적 자원과 자산을 집중시키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그의 여형제들이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으로 가던 이런 개발 시대의 서사는 놀랍도록 서울과 지방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었다물론 여기서 실제 그 장남이 장녀 혹은 다른 누군가보다 명석하고 지적으로 뛰어난지는 불명이다가부장적 권력의 상속자로 적장자 남성이 선택받듯이 서울이 이 부()를 분배하고 배치할 권력에게 선택받은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드라마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경우는 무척 드물다하지만 누이들의 희생과 헌신양보로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둔 맏이(그가 의사이건 변호사이건 구체적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의 부와 성공이 그의 누이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이양되고 분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히려 적지 않은 집에서는 누군가의 좌절과 희생이 이에 대비되며 내부에서의 갈등을 만들었다.

 

서울 역시 그런 선택과 집중의 산물이다동시에 서울은 그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는 권력의 소재지였다한반도에 일본에서와 비슷한 근대를 구축하려 하던 식민지 총독부 권력이 서울에 있다는 것이 그 당시에 어떤 의미였을까이전의 왕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과 근대적인 행정 지배 체계의 중심으로 서울근대적인 문물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회가 가장 먼저 닿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이 어떤 의미였을까를 상상해보자.

 

이후 군부 권위주의 하에서도 서울은 영남권 해안 도시들과 더불어 불균등 성장 체제의 수혜자였다서울은 한국 대부분의 대기업들의 본사가 소재했고그들이 이 압축적인 성장기에 몸을 불리는 동안 같이 살을 찌워갔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울 아닌 곳들이 식민지에 이은 군부 반공 권위주의 발전국가 체제에서 수혜받지 못한 지역들은 우리 모두’ 더 잘 살기 위하여 향유해야 할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하고 유예 당해야 했고농산물 가격 통제나 청년 유출을 겪어야 했다한국이 OECD에 가입하고 환란을 극복해도 서울은 자신들에게 편중된 이 성공과 부를 나누려 하지 않았고도리어 지방을 타자화하고 식민화했다지방의 소매 사업은 편의점과 SSM, 대형마트백화점의 저인망식 소매 산업에 그 자리를 빼앗겼고지방의 공장들은 서울에 소재한 재벌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했다자연히 이들은 서울의 필요와 글로벌 경쟁과 지구적 생산 체인의 변화에 따라 그 생사가 나뉘어야 했다지방이 이렇게 빈궁해질수록 청년들의 탈 지방은 심화되었고이런 이중적인 내부 약탈 구조는 이제 지방의 생명마저 서울의 활기를 위해 탈취하는 구조로 나아갔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정보화금융화자동화됨에 따라 서울로의 집적과 약탈은 심화되었다한때 경북 내륙에 젖과 꿀이 흐르게 했던(낙동강을 화학물질의 바다로도 만들었다구미의 전자 산업들은 21세기에 들어 경쟁적으로 서울 근교의 천안과 평택파주용인 일대로 재배치되었다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이런 경향과 맞물려 지방의 일자리가 3, 4차 하청 공장의 단순 비숙련 노동이나 프랜차이즈란 이름으로 위장된 서울의 소매산업 지배 구조의 말단에 선 불안정 여성 노동에 대체되도록 했다지방에는 더 이상 우리가 전통적으로 인식해온 양질의 일자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자연히 지방 청년들의 소망은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에 취업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여 서울이나 지경학적 필연성으로 서울로 집적되지 않은 울산창원부산 등으로 가는 것이었다그리고 이런 경향은 도리어 지방의 노령화와 활력의 저하문화적 퇴행과 폐쇄성을 유발했다.

 

이 약탈적인 식민 구조는 그들의 희생으로 큰 장남의 자식들이 그들의 부와 영광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상대적으로 덜 세련되고 가난한 고모들의 자식을 촌스럽고 가난하다 혐오하고 경원시하는데 이르렀다지역의 사투리들은 표준어 지배 권력에 밀려 촌스러운 것으로 전락했고 유머의 소재로 전락했다모두가 그 와중에도 서울 따라잡기서울 배우기서울 흉내 내기에 급급했다한편으론 균형발전이니 분권을 말하지만 정작 지방 정부가 권능과 자원을 더 행사한다고 이 내부 식민 구조가 변화하는지는 미지수였다물론 그나마도 자신들의 부동산 가치와 미래 수익을 위해 내놓길 거부하는 이들의 반발(관습헌법의 관습이 어디서 나온지 생각하자)에 좌초하기 일쑤였다어느새 자신들을 살찌우고 번영으로 이끈 선택과 이를 위해 감내한 양보와 희생의 기억은 마멸되고 과정으로의 불균등이 아닌 그 결과의 불균등만이 의식에 남아버렸다그렇게 이 내부 식민지와 서울 제국의 구조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다.

 

 

3.

인류학자 김현경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학벌주의라 불리는 권력 현상/의식을 크게 학력주의와 연고주의서열화로 구별해 설명했다학력주의는 말 그대로 대학의 진학 및 졸업 여부를 통해 얻는 사회적인 기회와 권력 자원들의 문제를 지칭하며 오랫동안 학벌차별으로 지시되던 의식이다그러나 김현경은 이 글을 통해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졸업정원제 폐지 이후 사실상 전통적으로 학벌을 상징하던 학력주의의 위력이 감쇠하고 연고주의와 서열화의 의미가 강화됨을 지적했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대학 문제는 학력 차별과 서열화에 있었다연고주의란 것이 다양한 매개를 통해 한국 사회에 비교적 폭넓게 확산되어 있고 이에 대한 관용도 역시 큰 편이었고 지역 연고라는 더 강한 매개 고리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학력주의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학벌주의 문제는 사실상 대학을 서열화하고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를 잣대로 사람을 나누는 서열화의 문제로 대체되었다.

 

대입은 늘 전국의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웠고좋은 대학이 사실상 우선적으로 그들을 데려갈 자격을 가졌다물론 더 좋은 대학은 어떤 명시적 선언으로 규정되지 않고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학 간 다툼과 경쟁의 결과도 아니었다더 좋은 그곳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에서 결정되었다이 암묵적인 순위와 서열은 우리가 마음으로 수긍하고 따르는 순간 권력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서열화는 늘 존재했다선택에 있어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아마 인류사적인 물음일 것이다사실 학벌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특정한 잣대로 평가되고 배치되었다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늘 이를 정당화했다약육강식우승열패 등 이 서열을 정당화하는 신화들은 우리의 이데올로기 깊숙이 존재했고 작동했다교육은 한국인들의 입신양명과 출세성공이라는 가장 강력한 욕망이 투영되고 있기에 좀 더 나은 곳’, ‘좀 더 잘 될 수 있는 곳에 대한 열망과 평가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식민지와 전쟁압축적인 공업화는 늘 실력주의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전통적 지주-사대부 지배 체제의 해체 속에서 당시의 사회는 새로운 엘리트 상을 만들지 못했고이 권력의 공백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인정받는 잣대는 공부였다공부를 잘해야만 잘 살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이런 엘리트 상의 공백 속에서 정승의 아들이 하찮은 건달이 되기도 했고머슴의 아들이 고등고시를 붙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그리고 이 실력주의 신화의 핵심에 바로 공부가 있었다자연히 대학 진학률이 낮은 시대에 대학에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엘리트 후보생이자 사회적 성공을 의미했고좀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입시 결과들이 학교들을 평가하고 줄세웠다.

 

하지만 이 실력주의 신화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서열화는 시대의 주객관적 조건과 내용이 변화함에도 비판적으로 성찰되지 못한 채 퇴락한 형태로 재생산되었다이에 실력주의 신화와 서열 질서는 퇴락한 형식으로 후속 세대와 그 부모들의 욕망과 조응하고 있다과거에 대학을 가느냐 아니냐고교를 어디로 가느냐가 그랬다면 지금은 취업에 유망한 학과 혹은 취업에 선호하는 여부에 따라 대학과 학과들이 줄 세워졌다.

 

청년 세대에서 지방이 낙오와 못남실패와 탈락의 이미지를 갖는 뿌리는 이 서열화에 있다특히 외환위기로 인해 들어선 한국의 신자유주의-포스트 발전국가 체제는 노동시장을 극도로 다층화시켰고과거의 대학 졸업-좋은 일자리라는 연계 고리를 무너트렸다유연하고 불안정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서 내부 경쟁은 계속 심해졌고대학 졸업만으로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 진입이 힘들어지며 대학 간의 서열 경쟁 역시 심화되었다어느새 과거 대학이 누리던 변형된 지대효과는 서울의 일부 대학그 가운데서도 일부 학과들에만 돌아갔다.

 

이런 흐름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탈락의 피해를 감내한 것은 과거 실력주의 신화시대의 한 축인 지방의 거점 국립대와 지방 명문 사학들이었다이 대학들에서 제공하는 강의의 질이 좋으냐교수진의 역량이 어떠한가는 부차적인 것이다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계서의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그것만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주며 열등한 타자와 자신을 구별해주고 더 나은 미래에 접근할 기회와 자격을 부여해준다대학의 야구점퍼에 자신의 학교와 학과를 기재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출신 고등학교까지 기재하는 세태는 일견 연고주의적 전략 같지만사실 이는 서열화가 낳은 현상이다스스로의 존재를 비교적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증명하고 타자를 차별하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다이만큼 자명하고 간단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너와 어떻게 다른지 증명하는 방법이 있던가실력주의 신화가 만든 이 서열은 이제 노동 시장의 구조/서울과 지방의 제국-식민지 구조에 편승하여 타락한 형식으로 발현하고 있다.

 

97년 체제 아래 대학의 변화는 급격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사회 구조의 전환과 더불어 곳곳에 편재되고 우리의 맘과 의식, ‘서열 짓기가 조응한 결과다그리고 이 조응을 바로 과거의 실력주의와 공부의 신화가 지탱하고 있다우승열패의 내용은 이제 대학/비 대학에서 서울의 좋은 대학/지방대의 구조로 변화했다물론 이 조응 관계 사이에는 분절적이고 모호한 위칫값을 가진 중간 공간들이 존재한다서울에 있으나 서울 내부에서도 2등으로실패로 취급받는 그런 대학들의 이야기다하지만 이런 중간지대의 존재가 사태의 본질을 변화시키진 않는다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대학이 명문과 지잡으로 양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잡을 만들고 선언하는 서열짓기에 대한 논급이기 때문이다.



4.

재경유능재향무능의 시대에서 서울 아닌 곳에 있는 이들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까서울이 잘남과 미덕훌륭함높은 성공 가능성 등을 상징하게 되고 이로써 서울이 서울 아닌 곳들의 젊음과 활기마저 잃어가는 시대에서 무능과 못남열패의 위치에 놓인 재향 청년들에겐 몇 가지 독특한 의식의 조류가 나타나게 된다이를 살펴볼 때 크게 탈 지방”, “서울병”, “재향 나르시스트”, “혁명가라는 네 범주로 나눠 이들을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탈 지방은 실력주의 신화의 현신이다이 중에 으뜸은 역시 지방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왕 지방에 태어난 이상 고등교육을 서울로 받으러 유학 가는 것이다그렇게 서울에 가서 서울의 온갖 XX푸어들의 일원이 되는 한이 있어도 지방에 있는 것보단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다역시 희망은 지방을 떠나는 것이다거기서 잘되면 혹시라도 제주도나 강릉 같은 서울이 사랑하는 지방서울의 시선에서 조직되고 소비되는 지방에서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들 다수는 서울 사회의 활력을 공급하고 동시에 서울 제국을 재생산하고 지탱하는 존재들이다이들 가운데 간헐적으로 나오는 신화적 삶들은 말은 제주도로사람은 서울로라는 이데올로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좋은 재료들이다.

 

이에 반해 서울병의 유형은 실력주의 신화에 충실하지 못해 서울로 올라가지 못한 이들이다이들은 무척 흥미로운 범주인데이들에게선 서울 제국주의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충실한 추종과 실력주의의 불공정함에 대한 자기연민에 가까운 분노서울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 등 분열적이고 복합적인 감정과 의식이 목격된다는 것이다이들 중 탈 지방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앞서 ‘IN 서울에 성공한 훌륭한 선배들처럼 탈 지방하기를 소망한다개중에 일부는 탈 지역에 성공하지만 대개는 지역의 서비스소비 산업의 중추가 되거나 하층 공무원 집단에 편입되어 이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살아가게 된다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문제를 개별적인 지방의 낙후함과 못남의 문제로 치부하며 문제의 해결로 서울로의 탈출 혹은 서울 스타일의 수용지방의 서울화를 지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혁명가의 부류는 자기의식과 내면에서 탈 제국을 이뤄낸 이들이다이들은 적어도 서울이 만들어내고 유포하는 정상 생활의 기준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다이들은 결국 제국 바깥변두리식민지에 있으면서 이를 통해 중심부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와 모순을 직시한 이들이다결국 본질적으로 이들은 혁명가들이며 가려지고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이들이다마치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티나로서경식이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로 있음으로 그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드러내고 바꾸려 하듯이 이들은 저 제국에 편승하지 않고 지방에서 그것을 드러내고 싸우는 것을 자존으로 하는 이상한 자들이다이들은 우리 시대의 불령선인들임에도 진보좌파의 주류는 아니다진보좌파들마저도 서울병서울 중심주의중앙정치 문제에 매몰되지 않은 이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결국 이들은 마이너리티이며 고독을 견디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재향 나르시스트들은 무척 특수한 집단으로 식민지형 자기애에 사로잡힌 이들이다이들은 나르시스즘에 젖은 서울병 부류와 극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지방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삶을 택했다는 것에서 구별된다이들은 서울에 갈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권력을 따르는데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이 제국의 구조를 해체하고 폭로할 능력과 용기는 없는 이들이다대개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지적 기반이 취약하고 이론과 분석의 정합성과 엄밀함이 떨어진다이들의 근본적 이해관계는 이 모순적 구조가 유지되는 데 있으며 탈제국을 이룬 혁명가 부류와 달리 이 체제와 구조 속에서 지방 식민지가 지향하는 변화나 혁신의 흐름(사실상 서울 흉내 내기)에 편승하고 부합하여 거기서 경제적 급부와 사회적 명예를 얻는다혁신이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실질적으로 구조의 변화를 추동하고 그것을 구축할 의지와 역량이 없고 오히려 심정적으로 그것에 거부감을 가진다오히려 현재 체제의 존속과 이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그들의 영역이며 그들의 이해이다이들의 특이점은 이들이 전통적 학생운동이 소멸한 이후 과거 그들이 수행하던 지방에서의 진보적 시민사회와 정당의 활동가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지역의 정당과 시민사회 활동사회적 경제 등에서 종종 눈에 띄는 이들이다.



5.

직업훈련소 혹은 공부의 종착지로 입시 기구가 된 대학 내에서도 몇 가지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이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보면 인()-대학(IN)-대학()-대학()-대학의 부류로 나뉠 것이다.

 

첫 번째 인()-대학은 말 그대로 대학의 제도와 구조의 모순에 문제를 느끼지 않거나 설사 무제를 인지하더라도 변화 가능성을 포기하고 어쨌든 졸업장 받고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여 좋은 직장으로 옮겨가기 위해 대학 문제를 감내하는 선택이다대학을 출세 혹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한 입시와 직업훈련의 기구로 전락하게 하는 주류의 인식인 이런 태도에서는 대학이 추구하는 이상과 교육배움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와 실적증명 가능한 자격이 더 중시된다자연히 인()-대학의 태도 속에서 대학은 목적과 가치보다는 수월성과 쓸모유용성으로 평가받는다비싼 등록금조차 본인의 삶에서 주는 지대 효과와 성공안정의 기회를 위해 견뎌야 할 것이 될 정도로 이들은 대학의 위기 자체에 둔감하고 대학을 그저 미래를 위해 지나치는 과정으로만 인식한다.

 

(in)-대학의 태도는 여전히 대학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가능성을 믿고 대학 내부로부터의 변화와 개혁을 신뢰하는 태도다이는 대학이란 플랫폼을 고수하는 복각의 운동이며대학이란 제도와 공간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 가능성을 여전히 신뢰하는 운동이다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비판적 교수 집단에서 가장 지배적인 태도이지만 한편에선 과거의 대학상에 갇혀 대학의 존재와 의미를 낭만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 김예슬 선언으로 대표되는 대학 포기의 흐름은 그간 검토되지 않던 탈()-대학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했다()-대학의 핵심은 대학이 더 이상 개인과 사회에 지적도덕적 영역에 있어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있다이는 현재 대학이 마주한 곪아 버린 문제들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지식과 정보의 유통 매개를 대학이 독점하지 않고 있으며대학을 졸업해도 과거처럼 안정적이며 양질인 일자리와 연계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다탈 대학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탈 대학은 단순히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택하라는 조언부터 대학 바깥에서의 배움과 같이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이것이 저항적으로 이뤄지면 아래에 후술될 대()-대학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대개 고졸 9급 공무원 준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학의 흐름은 대학 외부에서 과거 아카데미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체하는 사회적 기구를 통해 대학에 대항하고 지식 하부구조와 담론 구조에서 퇴락한 대학과 맞서는 움직임이다이는 한편으로 ICT 기술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평생학습 체계의 등장유튜브나 MOOC와 같은 고등교육 학습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관련 있다이처럼 뉴미디어와 결합한 대학의 대체 플랫폼을 만드는 움직임 외에도단순히 배움을 대학이란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대학 바깥에서 대학에서 나온 연구자와 학생들이 만드는 다양한 학술기구나 학술운동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운동은 대학 내부에서 탈락한 교수자원들 혹은 현재의 대학 체제에 실망하고 분노한 연구자들이 만드는 대학 외부의 대학인 경우가 다수이다그만큼 재정적으로 취약하고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대안대학이 정착하고 제도화되긴 무척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학의 퇴락과 느린 죽음에 대처하는 여러 태도에도 불구하고 대학 자체의 존재 이유와 대학이 하나의 제도이자 공간으로 가지는 역사적 소명에 대한 검토는 무척 부족하다동시에 대학이 입신양명의 통로인 상황에서 배움과 연구가 어떻게 가능한지대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방대한 지성사적 기획의 가능성 등은 온전히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대학이 그 자체로 지니던 어떤 특권적 지위를 사실상 상실하고 대학의 자유와 자율성마저 국가와 자본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학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역할규범에 대한 검토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이는 단순히 우리의 짧은 경험에 대한 술회로는 불가능하며 훨씬 장구한 대학의 역사적 기원과 그 변화 과정에 대한 추적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한편 이렇게 재검토되고 고찰된 대학의 역할과 의미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정녕 대학 외부에서 대학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그런 의미에서 대학 체제 내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공간들은 새로 대학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의 공간이다이미 경쟁 체제에서 밀려나는 대학이기에 도리어 이 경쟁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여지가 생길 수 있다문제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밀려 나가기에 더 경쟁질서와 논리에 충실하려는 정치적 압력을 견디는 힘이다만약 대학 내부의 역학 관계에서 합의와 전망을 통해 그런 정치적 내파력을 구축할 수 있다면 지방대학이야말로 대학의 변두리에서 대학을 재건하는 공간경제적 출세와 사회적 계서의 상승에 대한 욕구가 아닌 온전한 배움과 비판비평의 공간으로 대학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현재의 대학 세계를 움직이고 규정하는 권력의 변방에 기회가 있다오래된 아카데미주의자들이 갈망하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를 넘어직업 훈련소와 최종적 공부의 종착지,청년 노동의 공급자수월성 교육의 현장을 넘어선 새로운 변화와 실험그 모태로 변두리를 상상하고 검토해야만 한다이런 실험과 변화를 통해 대학이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현재의 대학과 구별되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면 이는 우리가 새로운 대학을 상상하는 뿌리가 될 것이다.



re:0.


지방 대학은 한국 사회에서 잘남과 못남성공과 실패올라감과 떨어짐을 결정하는 이중의 잣대 아래에서 못나고 실패하고 떨어지는 배역을 맡고 있다그것은 한 개인의 실질적인 역량이나 의식철학인품 등 인격적 요소와는 무관하게 지방대학에 다니고 지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자존을 갉아먹고자신을 부정과 비관의 파도에 내던지게 한다.

 

동시에 지방대학을 다니는 것은 자기 삶의 공간을 한국 사회의 2부 리그로 정하는 일이다개중에 가끔 놀라운 경쟁과 노력으로 1부 리그에 올라가 온갖 불안정함(그 노력과 경쟁의 결과가 생을 가로지르는 불안정이라니)에 닿곤 하지만 대개 2부 리그에 있다는 건 그의 미래 역시 평균적으로 2부 리그 안팎을 배회함을 뜻한다그들 대부분은 지방의 서비스 산업의 사원이나 하청 네트워크의 하급 관리자엔지니어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것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삶의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1부 리그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겸허히 거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그들의 부모가 원전과 공장전깃줄에 땅을 빼앗기듯 그들은 자신의 생명과 시간과 활기먹고 사는 모든 것들을 서울이 상징하는 중앙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자존감과 행복마저 차압당한 지방지방대의 현실이지만 정작 지방으로부터의 저항의 기운은 요원해 보인다학벌주의 반대 운동의 핵심이 이 구조에서 수난받는 지방대생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거나 그 출신들이 다수란 사실은 이 운동에 대한 회의감만 증폭시킨다.

 

지방에 있음은 단순히 무능하고 떨어지고 탈락한 삶을 뜻하지 않는다하지만 이 실력주의와 실적주의의 신화 속에서 이런 말은 그저 막막하고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하지만 중앙에 서 있지 않기에서울에 살지 않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시선이 존재한다변두리변방에 선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그런 의미에서 모든 재향 청년은 훌륭한 혁명적 계보학자가 될 가능성을 가진다그들을 규율하고 옥죄고 제한하는 이 권력이 어디로부터 연원하고 있는지 그들은 누구보다 잘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불안정하다하지만 그들의 수난은 서울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않고지방+청년이란 단어의 결합이 만드는 길항작용은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지방에 있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단지 문화적으로 서울에 비해 공연이나 전시가 좀 적거나 없고경제적으로 취업이 힘들고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 정도로만 보일 뿐이다하지만 내부 식민지화된 지방의 위상서열화된 대학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청년이 세 가지의 화학적 결합은 한국 사회에서 무척 독특한 형태의 지잡대생이란 결합물을 낳았다.

 

지잡의 미래는 서울을 따라가는 데에 있을 수 없다그들은 근본적으로 서울 따라하기의 실패자들이고 낙오자들이다서울과 대학 서열 모두에서 실패한 이 이중의 낙오자들에게 다시 서울을 좇고더 높은 서열을 위해 노력하길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비극이다우린 이들에게서 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경계를 오가고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에게서만 자랄 수 있는 그 마음그 감각그 시선으로부터 서울에 있었다면좋은 서열의 대학에 다녔다면 할 수 없는 일들상상할 수 없는 담대한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단순히 지잡의 위치에 있기에 이 구조적 모순의 뿌리를 직시할 수 있는 것을 넘어 그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도출해내야 한다전통적인 대학이미 퇴락해버렸고 죽어가는 대학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자존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대학을 지방으로부터 상상해보자그것만이 이 이중의 억압과 지배의 구조를 넘어서는 길이다주류에 기입되지 못한 자들이 연대하고 함께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자이를 자존 삼아 그 주류를 넘어서는 상상을 해보자혁명은 원래 그런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만국의 잡놈 만세만국의 촌놈 만세변화의 담지자 만세.


 

도움받은 책들

 

강준만, 2008,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 지성사.

서경식 외, 2007, 교양 모든 것의 시작노마드북스.

서동진, 2009,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배게

오찬호, 2013,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요시미 순야, 2014,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

지주형, 2011, 한국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기원책세상.

  1. 대구에서 20대를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언저리 라이프로 보냈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인문사회 독회 본색소사이어티 공동 창립자와 대표를 맡았다. 대학연구네트워크 공동 설립 제안자를 맡고 있다. [본문으로]

그대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 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 따라, 그리고 제비 따라 강남 가듯 시류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그대는 지금까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을 앞으로도 읽을 의사가 별로 없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영어, 중국어를 배워야 취직을 잘 할 수 있어 입학했을 뿐, 세익스피어, 밀턴을 읽거나 두보, 이백과 벗하기 위해 입학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학원에 다니는 편이 좋겠는데, 이러한 점은 다른 학과 입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왜 중요한 물음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는 인간에 대한 물음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철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식한 그대가 시류에 영합하여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의대, 약대를 선택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대의 무식은 특기할 만한데, 왜 우리에게 현대사가 중요한지 모를 만큼 철저히 무식하다. 그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동안 진정한 민족지였던 <민족일보>가 어떻게 압살되었는지 모르고,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대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


그대는 무식하지만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문화가 토해내는 수많은 '정보'와 진실된 '앎'이 혼동돼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학생인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 익숙한 그대는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이미 치환했다. 물질만 획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신의 무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가 무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동아리를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대가 찾기 어려운 책방을 열심히 찾아내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홍세화 /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저자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학, 대학인, 대학 생활……. 마치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 선율처럼 그 말에 벌써 생명과 환희가 흘러 넘칩니다. 풍성하고 유익한 대학 생활을 통해서, 4년 뒤 교정을 떠날 때도 지금의 이 생명과 환희를 그대로 맛보도록 미리 기원합니다. 오늘 신입생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서, 평소 제가 가진 생각과 이미 여기저기서 꺼낸 얘기를 바탕으로 대학이란 깊고 그윽한 주제를 한 번 풀어 보려고 합니다.



  1. 대학


  우선 대학이란 무엇인가? 그런 질문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대학에 대해 숱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물론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공식적인 답변은 이렇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재산의 소유권 처리 같은 법인의 일상적인 권한 외에 대학의 구성원을 징계할 권위를 보유하며, 의회에 두 명의 의원을 파견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법인체이다.


  대학이 기껏 재산을 관리하고, 구성원을 징계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라니……. 원, 이렇게 멋이 없어서야 환희와 생명은커녕 어느 한 구석에 정이 가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누가 “대학이 뭐지요?”라고 물을 경우에 대비하여 저도 이런 대답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 “대학은 공부하는 곳입니다.” 이 대답에는 공부를 만들어 내는 연구와 그 연구 결과를 나누어 주는 교육이 들어 있습니다. 원고지를 앞에 놓고 생각을 가다듬으면 한참 현학적인 얘기를 엮어 내겠지만, 그래도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란 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인류 문화의 창달에 공헌하는 지성의 산실 따위의 고상한 대답을 기대했던 여러분의 얼굴에 실망스런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그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그 대학이 또 공부하는 곳이라니 여러분의 실망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화여대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의 씁쓸한 한숨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대학의 목적은 공부하는 것, 즉 지식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좀 심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두부 공장에서 두부를 만들어 내고, 구두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어 내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두부와 두를 팔아서 번 돈으로 장학금을 주거나 이웃 돕기 성금을 내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모두 두부와 구두를 만든 다음의 얘기입니다. 두부 공장과 구두 공장의 목적이 좋은 두부와 좋은 구두를 만드는 데 있는 것처럼, 대학 역시 최고의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제일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대학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생산 공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무엇에 앞서 지식 생산이란 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식 생산의 주체는 물론 교수와 연구원이겠으나, 그 지식을 ‘소비하는’ 학생들의 열의와 수준에 따라 생산은 큰 영향을 받습니다. 대학 교육은 소비재가 아닌 투자재임이 분명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경기가―대학이―침체할 때는 소비에 의한 투자 유인이 한층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상식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설정한 대학의 기능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미국의 대학과 유럽의 대학을 비교하면, 그 기능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국 대학은 우선 사회를 이끌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쪽으로 힘을 기울이는 듯한데, 유럽의 경우 그런 사명은 일단 고등 학교 교육으로 끝내고 대학은 온전히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유럽 대학의 정신적 토양을 더듬으려니 언뜻 막스 베버(Max Weber)가 강조한 직업으로서의 학문(Wissenschaft als Beruf)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미국 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유럽식 대학 개념을 지지합니다. 그것은 대학이 ‘교육 인플레이션’을 선도해서는 안된다는 이유 못지 않게, 자칫 자격증 발급처나 직업 소개소(job broker)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경계 때문입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직업을 위한 학문과는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대학이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은 대학의 교과 과정이 온통 직업 교육 강좌로 채워져야 한다는 뜻이 압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소위 말하는 지식의 폭발적인 증대와 증가 일로에 있는 전문화가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을 채워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 버렸다. 대학 시절은 장애가 되었고, 사람들은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원한다. 우리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평가한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대학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에 다닌 시간을 평화 봉사단에서의…… 봉사로 대신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 위대한 대학들이―원자를 분해하고, 가장 끔찍한 질병의 치료법을 찾아내고, 전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잃어버린 언어의 방대한 사전을 편찬하는 대학이―학부 학생을 위해 적절한 교양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수수께끼이다.


  아무튼 대학을 공부하는 곳이란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대학이 온갖 특혜를 주어 가며 운동 선수를 스카우트하거나, 봉사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거기에 학점을 주는 따위의 일은 대학 본래의 모습과 동떨어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대학의 운동 선수들은 수강 신청만 하면 ‘규정에 따라’ 특정 등급의 학점을 자동적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강의를 듣고 시험을 쳐도 낙제가 수두룩한데, 이들은 시험은커녕 출석 한 번 안 해도 제법 좋은 학점을 얻습니다. 교수가 소신에 따라 아무리 F학점을 매겨도 교무처의 컴퓨터가 알아서(?) 성적을 고쳐 놓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운동부를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라, 대학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난 탈선이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졸업장을 만들어 주는 데가 아닌데도, 그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앨런 블룸(Allan Bloom)의 탄식처럼 “졸업장을 받는 것이 학문적인 달성의 표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잘 버는 방법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사태가 빚어진 것입니다.

  봉사 활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점이란 ‘보너스’가 없이도 이제까지 학생들은 야학(夜學), 농활(農活), 공활(工活) 등 온갖 봉사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학교 당국이 정치적 또는 시국적 이유로 막아 온 것도 많습니다. 요즘 들어 몇몇 대학이 학점의 미끼까지 앞세워 학생들의 사회 봉사를 강조하고 나서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런 열성이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학점은 공부로써 따야지, 운동 시합이나 봉사 활동으로 얻어서는 안됩니다. 봉사 활동은 보이 스카우트나 로터리 클럽에 맡기고 대학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해야 합니다. 대학의 봉사는 학문과 기술 연마를 통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길 이외에 달리 없습니다. 요컨대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고, 공부 이외의 일은 부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경알을 갈면서 평생을 보낸 견인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오직 알려고만 하라”고 권고했는데, 저는 대학이 바로 이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알려는 데 용감하라”(sapere aude)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의 충고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실이야 어떻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만이 아니라 공부 밖의 다른 문제도 중요하다고 가르치는데, 대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공부가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토록 강조하는 대학 공부는 이전의 공부와 어떻게 다를까요? 이것은 대학생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우선 대학의 공부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다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어떤 문제든 거기에는 반드시 정답(正答)이 있었습니다. 다섯 개의 답지(答肢) 가운데 어느 하나가 정답으로 전제되기 때문에, 심지어 그것을 골라내기 위한 ‘눈치 훈련’까지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과서가 정한 해답 외의 어떤 반론이나 이의가 일절 허용되지 않습니다. 거기 어떤 의문이 생길지라도 교과서의 ‘정답’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에는 그와 같은 강요가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정답을 찾아내라는 횡포가 없습니다. 그 다섯 개 이외의 여섯 번째 가능성이 시험지 밖에서 기다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의 경고대로 “맹종하는 지식은 학문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미신적 ‘학문숭배’일 따름”입니다. 아예 정답이 없을 경우도 있고, 인류의 지혜로써 아직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결론을 미리 정해서는 안되며, 질문의 가능성을 제한해서도 안된다”는 야스퍼스의 권고를 따라야 합니다.

  정답이 없다는 저의 말씀에 적절한 사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런 경우를 하나 소개하지요. 벨기에 중부에 워털루(Warterloo)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1815년, 나폴레옹이 영국과 독일의 연합군에게 패배한 장소로서, 당시 격전이 벌어진 언덕과 분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워털루에 들렀다가 현지의 안내원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나폴레옹의 군대는 7만 2000명이었고, 웰링턴의 영국군이 6만 8000명, 독일군이 4만 5000명이었답니다. 프랑스와 연합국의 이러한 현저한 병력 차이는 생각하지도 않고 ‘워털루’ 하면 대뜸 웰링턴의 승리를 떠올리는데, 이런 태도는 전혀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력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사흘 동안 치른 전투에서 프랑스의 병력 손실이 2만 5000명이고 연합군의 병력 손실이 2만 3000명으로 거의 비슷한데, 어째서 이것이 나폴레옹의 패배냐는 그의 반문은 관광 안내라기보다는 차라리 역사 교과서의 ‘정답’에 대한 항의로 들렸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나폴레옹 독재의 막을 내린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는 워털루 전투를 170여년 뒤의 현지 주민들은 이처럼 전혀 다른 정서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폴레옹이 지기는 했지만, 이긴 웰링턴에 꿀릴 것이 없다는 자부(?)가 면면히 이어지기 때문이겠지요. 굳이 판단이 엇갈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가 아니더라도, 대학 강의실에서는 이런 문제와 자주 마주칩니다. 사물의 근본을 건드릴수록 혼란은 더욱 심해지는데, 사실 그런 혼란이 심할수록 학문은 바르게 발전합니다. 1861년 영국 이튼(Eton) 학교의 코리 교장이 학생들에게 한 연설의 한 구절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지식의 습득이라기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노력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실 평균적인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그중의 많은 것을 잊어버릴지라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식은 잃어버렸어도 최소한 그 그림자는 남아서 여러분이 그릇된 신념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줄 것입니다. ……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알기 위해서 이 위대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말씀 다음으로 대학의 지식이란 “쓸모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생활과 생산 현장에 당장 유용한 지식과 기술은 굳이 대학이 가르치지 않아도 다른 데서 가르쳐 줍니다. 가정이 가르치고, 직장이 가르치고, ‘자본’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만, 예를 들어 무역 회사나 금융 기관 같은 직장의 일선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대학에서 몇 년을 배우는 경제학 지식보다 전문 학원 같은 곳에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익히는 요령과 기술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이나 대학에서 전공 학문을 공부한다면, 그것은 학원이나 직장에서 배우는 실용적 지식과는 무엇인가 내용과 의미가 크게 달라야 합니다. 금방 유익하게 쓰이지 않는 지식, 그래서 사회가 가르치지 않는 지식을 배우는 기회와 장소가 바로 대학입니다.

  이 쓸모 없는 지식과 관련해서 제가 목격한 일화 하나를 공개하겠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실력과 가문이 뻑적지근한 어느 교수 댁에 점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스무 명 가량의 손님이 식탁에 둘러앉자 주인은 예닐곱 살쯤 되는 아들에게 기도를 시키더라구요. 아버지의 손님들 앞에서 잠시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하느님, 이 식사가……”라며 막 기도를 시작하는데, 교수가 즉시 “아니, 라틴어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줍은 기색이 아예 얼어붙으면서 아들이 조심조심 기도를 끝내자, 아버지는 어떠어떠한 단어의 격(格)과 어미(語尾)가 어떠 어떠하게 틀렸다고 고쳐 주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그날 좀 메스꺼웠습니다. 자식 자랑하려고 사람을 부른 것이 아닌 바에, 손님들을 그렇게 주눅들게 할 것까지야 없지 않느냐는 꼬부장한 마음도 들었구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끔 이 일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세계의 누구도 쓰지 않는 사어(死語), 완강히 버티던 가톨릭 교회의 미사조차 ‘버린’ 라틴어를 제 나라 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의 어린 자식에게 그렇게 강요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내 나름의 골똘한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일기를 쓰기에는 영어가 너무 천박한 언어여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배웠다는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류의 지적 오만을 과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중요한 의미와 타산이 그 속에 담겼는지 여러 모로 생각을 더듬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를 알면 그 뿌리에서 갈라진 여러 언어를 배우기가 아주 편하답니다. 마치 한자를 알면 한국어나 일본어를 배우기 쉬운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그렇다면 뒷날 여러 외국어를 익혀야 할 필요에 대비하여 그 ‘뿌리’를 가르치려는 노력이 라틴어 기도 연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다른 기회에 저는 이 추리의 정당성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을 듯해도 실제로 사물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 있는데, 대학의 공부야말로 이와 같은 내용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전을 통해 질문의 중요성을 경험하라는 블룸의 충고는 대단한 설득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한데, 주로 명작을 교과 과정으로 삼는 곳에서는 학생들이 흥분을 맛보고 만족을 느끼며, 대학 밖의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특별한 경험이 경험 이상의 것으로 승화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경험 그 자체만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선택의 폭을 제시하고 공부 자체를 존중하도록 해 준다. 학생들이 얻는 이익은 고전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는 것인데, 이는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이 중요한 질문이 존재하던 시절에 생긴 중요한 질문들과 친숙해지고, 아무리 못해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모범을 접할 수 있으며, 그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공유할 수 있는 경험과 사색을 토대로 서로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학생의 자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대학의 ‘선각’이 필요합니다.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야스퍼스의 당부에는 이 고전 교양을 바탕으로 지향해야 할 학문의 ‘통합적’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에 언어학만 있고 철학이 없다면, 기술과 실습은 있되 이론이 없다면, 오직 무수한 사실들만 있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사상이 없다면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대학 공부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앞서 거론한 정답이 없다는 지적의 연장이기도 한데, 대학의 지식은 “대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역설이 그것입니다. 생태학자 배리 코머너(Barry Commoner)가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올바로 제기된 질문은 잘못 제시된 답변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이 바르면 언제라도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되면 해답에 이를 기회가 영영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관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미 주어진 정답을 그대로 외우기보다는 올바른 질문은 던지는 방법, 그것을 배우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진리가 무엇이며 어디로 인도하는지도 모르면서 진리만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야스퍼스의 선언에 동의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피터 스코트(Peter Scott)가 진단하는 대학의 위기는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현대 대학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아카데미즘과 도구주의…… 즉 지식 창출의 분명한 논리에 따른 아카데미즘 그리고 현대 사회의 지적 훈련 요구에 부응하도록 고등 교육에 가하는 외부 압력으로서의 도구주의는 모두 계속 강화되어 왔다. 비록 아카데미즘과 도구주의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직업적 자격증 부여(credentialisation)를 통한 노동의 형성과 현대 대학의 지적 토대의 분해 사이에 강하고 흥미로운 상관 관계가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특징들 사이에 긴장이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이런 긴장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는 방법으로 헨리 로조프스키(Henly Rosovsky)는 하버드 대학이 모든 학생들에게 1년 동안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중핵 교육 과정’을 소개합니다.


  하버드 대학생이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 졸업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종종 던져지는데,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전문가의 지도 하에 분석적이며 비판적으로 고전을 읽지 않고는 학위를 받을 수 없다. 경제학을 배우지 않고서도 졸업할 수 있는가? 그 대답 역시 ‘그렇다’이지만, 경제학을 한 분야로 다루는 사회 분석의 기초과목을 수강하지 않고는 졸업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경계할 점이 있습니다. 교양을 빙자한 교육의 낭비와 비효율이 그것입니다. 제가 겪은 황당한 체험 하나를 말씀드리지요. 저는 국내에서 대학원을 수료하고 유럽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대학에서 학부의 기초 과정에 다시 등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냐, 당신들이 아무리 대단찮게 여겨도 나는 대학원까지 거쳤는데 대학 1학년 등록이라니 하고 대들었더니, 저를 면담한 학장이 정말 당신이 대학을 졸업했느냐고 묻더라구요. 기가 막힌 저는 성적표에 영문으로 박힌 ‘서울 내셔널 유니버시티’를 가리켰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어떻게 너희 나라는 대학에서(!) 국어와 국사를 배우고, 영어를 몇 년이나 되풀이하고, 체육까지 다시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이 당시의 교양 필수 과목이었는데, 자기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이런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니 유니버시티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전문 대학이나 직업 학교가 아니냐는 의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실랑이 끝에 대학 3학년에 등록하되 1, 2학년의 필수 과목을 동시에 이수하는 것으로, 사실상 1학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으나 덕분에 공부는 착실하게 했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교수가 뒤에 생긴 교련이나 국민 윤리 과목 따위를 본다면, 아예 고등학교 등록을 권했을지 모릅니다. 라틴어와 셰익스피어만을 교양이라고 고집할 생각은 없으나, 국어와 체육이 과연 대학의 교양인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대학이란 무엇보다도 공부하는 곳인데, 그 대학 공부는 쓸모가 없어야 하고, 질문이 오히려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 관찰 외에 우리나라의 대학이 겪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역사적 체험’이 있습니다. 사회 개혁의 에너지를 공급해 온 기능이 그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 캠퍼스에 최루 가스와 돌팔매가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 여러분의 선배들은 참 많이 죽고, 참 많이 다치고, 참 많이 갇혔습니다. 경찰 고문으로 욕조에서 질식해 죽고, 온몸에 시너를 끼얹어 불타서 죽고, 척박한 조국 현실에 분노하며 성당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데모에 나섰다가 진압군에 밟혀서 죽었습니다. 귀신도 모르게(!) 심야의 열차에서 떨어지거나, 까닭도 없이(?) 바다에 빠져서 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으로써, 죽임을 당함으로써 처절하게 독재 정권과 맞섰습니다. 눈이 멀고 머리가 터지고 다리가 부러진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고, 체포․연행․구금․복역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뒤 우리가 문민(文民)이란 말이나마 입에 올리게 된 것은 실로 그 처절하고 혹독한 투쟁의 대가입니다. 제발 여러분에게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기 바랍니다만, 저는 우리 대학이 겪은 이런 간고하고 험난한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추체험(Nacherleben)을 통해서나마 그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ӧffer)는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나치에 처형당한 독일의 신학자인데, 그가 남긴 설교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가파른 외길을 오르는 버스에 여러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어린 학생도 있고, 노인도 있고, 임신한 부인도 있고, 목사도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길에 버스가 자꾸 비틀대기에 문득 운전 기사를 쳐다보니, 아 글쎄 그가 술에 잔뜩 취한 것입니다. 젖먹이를 안은 부인이 겁에 질려서 옆자리의 목사에게 속삭였습니다. 이 버스가 아주 위험하니, 술 취한 기사를 끌어내리고 목사님이 대신 운전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인, 사람에게는 저마다 직분이 있습니다. 저 기사는 운전하는 일이 직분이고, 제 임무는 이 차가 굴러 떨어진 뒤 반드시 필요할 장례 기도를 올리는 것이지요.” 사회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고개를 외로 틀고 기도나 드리고 앉은 성직자의 무책임한 자세를 꾸짖는 통렬한 야유입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목사든 누구든 그 취한 운전기사를 끌어내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버스가 추락하면 목사 자신이 죽고 마는데, 그의 기도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다행히도 우리의 대학은 이 목사와 달랐습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이 사회의 술취한 ‘운전 기사’ 이승만을, 박정희를, 전두환을, 노태우를 끌어내리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과 사명을 계승하는 일은 이제 여러분의 숙제입니다.



  2. 대학인


  대학의 기능을 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대학은 먼저 공부하는 곳이고, 다음으로 개혁의 동력을 공급하는 곳이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대학에 이어 대학인으로 화제를 돌리지요. 대학인이란 대학을 구성하는 인적 요소입니다. 그 중에는 대학 교수도 있고 행정 직원도 있으나, 오늘은 대학생 여러분만으로 범위를 좁히겠습니다. 한쪽은 가르치고 한쪽은 배우므로 교수와 학생의 ‘역학 관계’가 대등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지배․종속의 관계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지배하는 자가 베푸는 것은 교육이 아니고 복종의 강요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없다면 교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여러분은 손님이 아니고 주인입니다. 대학은 4년 뒤에 떠날 하숙집이나 여인숙이 아닙니다. 아무튼 대학생 여러분의 장래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개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는 편안히 지배 계층에 편승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스럽게 저항 세력에 가담하는 길입니다.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예전에는 가난한 집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는다는 형설(螢雪)의 공은 이들의 노력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반면에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는 뒷전이고 놀기에 바쁜 녀석이란 인상이 강하게 박혔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문물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런 ‘선입견’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과는 달리 요즘은 오히려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비싼 과외 수업 덕분에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가고, 거리낌 없이 자라서 그런지 몸도 건강하고 얼굴도 예쁩니다. 대학생을 만들어 내는 힘 자체가 상당 부분 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이 사회의 지배층에 속하면 자녀들 역시 그 신분을 물려받기 십상입니다.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는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데, 아무튼 이런 억울한 처지를 벗어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교육입니다. 농촌의 부모들이 논 팔고 밭 팔아 기어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한(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내 자식한테만은 아비와 어미가 당한 설움을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비원이 상아탑 아닌 우골탑(牛骨塔)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과거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겠지만 현재의 대학생 여러분이 미래의 지배층으로 규정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소망하는 좋은 부모,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경의 배우자는 뿌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줄기에서 뻗은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은 이런 억울한 처지를 개선하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지 모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강의하던 모리스 돕(Maurice Dobb) 교수는 친지에게 “미래의 착취자들에게 현대적이고 우아하게 착취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케임브리지 대학은 영국의 지배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곳인데, 거기서 아무리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쳐 보았자 그 졸업생들은 나중에 자본가의 편에 서기 때문에 자신의 강의가 결국 쓸데없다는 처량한 고백입니다. 강의시간에는 불의에 항의하고 개혁을 다짐하지만, 일단 대학을 나서면 즉시 사회의 지배 계층에 편승하여 강의실의 결의를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런 현실이 어찌 케임브리지 대학과 돕 교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습니까?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강의하면서 저 역시 그 비슷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공정한 분배니 정의로운 사회 건설이니 하는 다짐은 강의실에서 끝내고 즉시 그 반대의 사회 현실 속에 몰입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강의실의 몫’과 ‘현실의 몫’을 철저하게 가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역이용되는 경우조차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강의실에서 노동 가치 이론 강의를 열심히 들은 누군가가 뒷날 노사 문제를 다루는 관리자의 자리에 앉아서 “아, 당신들 얘기 나도 다 배웠어. 하지만 그건 강의실의 이론이지 현실이 될 수는 없어”라고 대꾸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을 그 반대 목적에 쓰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무슨 학문은 계급성 같은 심각한 얘기를 꺼낼 마음은 없으나 여러분이 배우는 학문이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학문인지 한번 곰곰이 따져 보라는 당부는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교과서나 교재가 지식의 필요 조건이라고 가르치는 대로 과연 그것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입니까? 누구의 관점으로 중립적이고, 누구의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누구의 이해로 보편적입니까?

  차후의 ‘변절’은 여러분이 공부를 덜하거나 각오가 약해서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닙니다. 대학 안팎에서 대학인을 규정하는 제반 환경과 여건들이 여러분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거부하는 길도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1987년 ‘6월 항쟁’을 예로 들지요. 광주 학살로 집권한 5공 정권의 연임을 거부하는 민중은 그 해 6월, 군정 연장이냐 민정 수립이냐를 놓고 한판 격돌을 벌였습니다. 5공이 자행한 패륜과 부도덕한 원시적 폭력에 분노한 민중이 군정 종식과 민주화를 외치면서 구국 항쟁의 횃불을 쳐든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당시 학생들이 참 많이 죽었습니다. 포악한 정권에 항의하다가 죽고, 잔학한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서 죽었습니다. 학생들의 거룩한 분노와 분신(焚身)이 줄을 이은 정말 참혹한 계절이었습니다. 그때 이 땅의 양심 세력이 일어섰습니다. 신부, 목사, 스님, 작가, 교수, 변호사, 재야(在野) 등 각계 각층의 지식인들이 어깨를 걸고 가두에 나서 5공의 집권 연장 음모를 몸으로 막았고, 또 하나의 ‘광주’를 겁낸 군사 정권이 마침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해 겨울의 대통령 선거에서 군정 종식의 염원을 이루지 못해 6공 출범을 지켜보는 좌절을 되씹었지만, 이듬해 총선거를 통해 ‘여소 야대’의 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학생들이 의롭게 저항하고, 지식인들이 분연히 궐기했기에 가능했던 실로 장한 역사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민주화 투쟁은 이 사회의 오랜 금기를 깨고, 드디어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 물꼬를 텄습니다. 법에 규정된 노동 쟁의가 아니라 여전히 법이 금하는 노사 분규 수준의 항의에 머물렀지만, 우리도 사람이니 사람으로 대우하라는 노동자들이 82m 짜리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13일 동안 농성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 경제는 그 동안 두 자리 수의 성장률로 달리고 세계 10위권의 수출 대국으로 자랐지만, 막상 그 생산과 수출의 주역들은 혹독한 저임금과 유례 없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허덕였습니다. 아무리 소주와 돼지고기로 씻어내도 허파에는 켜켜이 석탄 가루가 쌓이고, 작업 도중 팔다리가 잘리고 공해 물질에 전신이 썩어나가도 아무런 보상과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폐인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들 집 한 칸 마련이 없고, 자식들 공부마저 어려운 것이 이 나라의 노동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 크레인에 매달린 것인데,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욕조에서 학생을 살해하고 경찰서 취조실에서 성폭행을 자행한 패륜 정권에 항의하던 그 지식인들마저 선뜻 나서기를 꺼렸습니다. 그리고는 “노사가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라”고 설교했습니다. 민주화 논의까지는 함께 하겠지만, 노동자니 자본가니 하는 계급적 요구에는 발을 빼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계급 이전의 생존 현안이고, 행여 계급 문제라고 하더라도 약하고 핍박당하는 쪽을 편드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등을 돌린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현실을 충분히 음미하고, 거기서 얻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좌표를 굳건히 설정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서구 사회에 ‘뉴 레프트’의 봉화를 올린 1968년 프랑스 학생들의 선택과 행동을 높이 평가합니다. 처음에는 뒤틀린 학내 제도를 바로잡으려고 궐기했다가, 그 투쟁의 와중에 대학의 오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빈곤과 압제에 허덕이며 저항의 권리마저 상실한 프롤레타리아의 눈에, 대학 특권의 침해 따위에 분개하는 부르주아 자녀들의 시위가 기껏 귀공자의 사치스러운 투정으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지요. 마침내 자본주의가 배태한 현대 문명에 대한 철저한 수술이 없이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이릅니다. 학생들은 물론 화석으로 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에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학생이 정권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결국 패하고 맙니다만, 그들의 항거는 자본주의 황금기의 풍요에 자족하던 세계에 일대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 경종에 지배 계급의 반성이 뒤따르지 않은 점은 못내 유감이나, 학생들이 행동을 통해 보여 준 인식과 의식의 발전 경험은 무척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관찰과 평가는 대학인 여러분에게 너무 심한 것일 수도 있고, 도에 넘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이 무엇이든 가혹하리만큼 철저한 주제 파악과 상황 인식이 없다면 끝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현실의 몫이 아닌 강의실의 몫에도 마찬가지인데, 이와 관련하여 야스퍼스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학생들의 미래는 바로 어떻게 하루를 보내느냐, 즉 매순간의 생동감 넘치는 내적 자극을 어떻게 일상 생활에 적용해 나가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배우기를 원한다. 스승으로부터 혹은 자기 단련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동료들과의 경쟁적 토론과 지적 교류를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이런 기대들이 성취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최초의 열정이 오랫동안 지속되지도 못한다. 아마도 어떤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하고자 했고,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학 생활은 실망스럽고 환멸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는 이제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시험의 실용성에 따라 판단된다. 그는 대학 기간을 직업을 가지기 위한, 그러면 치유될 고통스런 과도기로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대학이 고통스런 과도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태에 대한 경계로 야스퍼스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가장 먼 길로 가게 된다”고 걱정했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빠른 길만 취하려는 세태의 탈선도 경계해야 합니다. 대략 92학번부터를 대학가의 유행어로 엑스(X) 세대라고 부르던데, 이 지칭에는 자유 분방, 영악한 계산, 자기 위주 행동 따위의 의미가 담긴 듯합니다. 그런 선입견을 가져서 그런지, 1980년대의 강의실과 1990년대의 강의실은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강의실에 들어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돌처럼 차디찬 머리로만―때로는 학점을 위해서만―강의를 듣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머리의 결정을 손발에 전해 줄 뜨거운 가슴이 없다면, 그 결정은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토익과 고시 준비가 도서관을 점령하고 컴퓨터 통신이 학생들의 소일거리가 되면서, 대학은 고시 학원인지 전자 오락실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학의 탈선에는 세기말의 세계를 휘젓는 포스트 모던 사조와 신자유주의 유행이 한몫을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영삼 정권의 줏대 없는 ‘세계화’ 설교와 얼빠진 ‘교육 개혁’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은 필경 다음과 같은 상황일 듯합니다.


  어느 정도는 임의적으로 구분되는 사실주의와 이상주의를 놓고 선택해야 할 경우,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를 다 원하든지 아니면 둘 다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주의가 우선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그에게 가능한 완벽을 생의 방침으로 삼아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요즈음 학생들간에는 어떤 몸매가 완벽한 몸매인가에 대한 생각이 아주 분명하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지도는 못 받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어떤 영혼이 완전한 영혼인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영혼을 가지려는 동경도 없다. 그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조차 그들은 상상할 수 없다.


  위에서 저는 대학인에게 열린 두 개의 길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전통적 지식인이 걷는 쉽고 편한 길로서 세상 돌아가는 대로 그냥저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부단히 투쟁하는 길입니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역사의 소명에 부응하여 시대와 사회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을 유기적(有機的) 지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식인의 삶, 정말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누가 저에게 당신은 여기저기서 지식인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그 지식인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오래전부터 준비한 이런 대답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지식인이란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지식인의 역할을 거부와 저항으로 정리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집단 어느 정파에 속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집권당에 몸담고도 과감하게 ‘아니오’를 외치면서 현실과 부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 당에 들어가서도 ‘예’만 되뇌이면서 그대로 주저앉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화여대 교정에서 ‘즐거운 반란’이란 학생회 포스터를 보았는데, 인류의 역사는 즐거운 반란이건 괴로운 반란이건 그 반란으로 점철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식인, 특히 유기적 지식인은 언제 어디서나 아니오라고 대답할 준비를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한번쯤 ‘아니오’의 철학과 대면하기를 권합니다.


 3. 대학 생활


  대학과 대학인에 이어서 마지막 주제인 대학 생활로 들어가지요. 서두에서 드린 말씀대로 대학은 청춘의 환희가 용솟음치고 삶의 희열이 흐르는 곳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주머니가 가난할지라도, 대학 생활에는 생명의 약동이 힘차게 울려퍼져야 합니다.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막강한 시장 원리조차 대학의 순수한 창조의 정열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런 만큼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을 완전하게 설계하고 자유롭게 영위할 권리가 있습니다. 로조프스키 교수가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그려 준 대학 생활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잠시 상상의 날개를 펴 보자. 당신은 하버드 대학에 진학할 것을 결심하였고, 이제 신입생이 되어서 아름다운 10월의 오후 찰스 강변을 따라 산책하고 있다. 당신의 왼손은 영예로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교수 한 분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자기의 최신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당신의 오른팔은 퓰리처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영문학 교수 한 분의 어깨에 걸쳐져 있다. 그는 어떤 새로운 학설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게 엘름우드 가의 데렉 보크 총장 저택에서 차를 마시고 싶은지, 아니면 존 갤브레이스 교수 댁에서 마시고 싶은지를 묻고 있다. 당신은 항상 에드워드 케네디, 마가렛 대처, 제리 폴웰 등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에 갤브레이스 교수 댁을 원할 것이다.

  여러분을 잠시나마 황홀한 기분으로 이끌었을 이 묘사는 뒤따른 로조프스키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경고 “환상에서 깨어나라! 이것은 결코 현실일 수가 없다”로 무참히 깨지고 맙니다. 아아, 이렇게 잔인할 수가……. 극히 운이 좋은 몇몇 학생들을 빼고는 결코 이런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학 생활과 낭만을 불변의 등식으로 여겨 온 착각은 어서 버립시다. 내가 여러분의 기대를 미리 꺾을 마음은 없지만, 그 환상을 대치할 만한 충고는 전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고독한 작업이다. 실험실이 아닌 도서관에서의 작업은 더욱 그렇다. 내 경험에 의하면 중앙 도서관 아래로 깊숙이 들어가서 논문 자료를 모으면서 느끼는 외로움보다 더 지독한 고독은 없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인기척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곁에 있는 것은 단지 부식되고 있는 책의 독특한 냄새 뿐이다. 나는 정도에 들어선 것인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막대한 시간 낭비가 아닐까? 의혹은 갈수록 커진다.


  결국 여러분은 총장 저택에서의 차 대접과 도서관의 책 썩는 냄새 사이에서 나름대로 타협의 길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에 대한 환상과 가능한 현실을 어떻게 절충하느냐는 문제는 다시 한번 여러분 자신의 지혜와 선택에 달렸습니다. 그 선택과 관련하여 무언가 저도 한 말씀 보태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의미 있는 말을 하나 고른다면 단연 그것은 ‘자유’일 듯합니다. 대학이란 단어는 본래 라틴어의 우주(universitas)에 기원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은 작은 우주이고, 여러분은 그 우주의 질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성원인 셈입니다. 창세기에 우주의 질서를 설계한 조물주의 구상처럼 대학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하며, 대학인의 사유와 판단에 어떤 제약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대학은 그 ‘실수’까지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에서 저는 대학의 자유가 대학 밖의 자유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은 실수가 허용되는 마지막 기회이며, 대학 생활이란 어떤 의미에서 등록금을 내면서 그 실수를 배우는 아주 ‘억울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허용하고 그 교정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대학이라면, 여러분은 대학 생활에서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그 실수조차 용인되는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수까지 자유롭되,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야스퍼스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생활의 자유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학 생활은 오직 자신의 책임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가르침의 자유는 곧 배움의 자유를 만든다. 어떠한 권위나 규제적 지시나 학업에 대한 감독이 학생을 지배해서는 안된다. 학생은 실패조차 자유롭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기를 젊은이는 모험적이어야 크게 성장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 대학에 다닌 저희 세대를 풍미한 철학 사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전후의 폐허에서 돋아난 실존주의 철학은 우수와 고독을 배경으로 인간이 처한 실존적 불안을 주조로 삼았는데, 이것이 미처 전쟁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지식인에게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절망조차 절망할 줄 아는 지식인의 특권처럼 이해되던 그야말로 절망의 시대였는데, 그 실존 철학의 기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돌연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폭탄 선언으로 전후 지식인에게 일대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있는 나는―즉 나의 실존(existence)은―나를 여기 이렇게 있게 만든 어떤 본질(essence)―무엄한 예로 하느님이나 부처님―보다 앞선다는 참말로 큰일날 소리인데, 아무튼 그런 절대적 자유의 설교가 기아와 전쟁과 인류 절멸의 공포, 즉 한계 상황(限界狀況)에 처한 지식인에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절대적 자유만이라면 아주 위험하지만, 사르트르는 거기에 ‘책임’이란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흔히 참여로 번역되는 불어 앙가즈망(engagement)은 본래 구속이란 의미를 포함하는데, 그는 사회에 대한 자유인의 책임과 구속을 바로 이 앙가즈망의 논리로 설명했습니다. 알파벳 철자까지 같은 영어의 ‘인게이즈먼트’ 역시 약혼이란 뜻으로서 일단 약혼을 하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구속과 책임을 느끼게 마련 아닙니까? 약혼은 분명 구속인데도, 우리는 그 구속을 속박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르트르가 역설한 앙가즈망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 즉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런 현실에 자신을 구속시켜야 한다는 이를테면 ‘즐거운 구속’의 메시지였습니다. 자유와 책임, 참여와 구속의 변증법은 당시 실존의 불안에 떠는 지식인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학생이 학기말 리포트와 함께 보내 준 김수영의 시구처럼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한시 바삐 그 절망과 구원의 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그 준비물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아직 때묻지 않고 잃을 것이 없는 여러분의 특권, 바로 자유와 정의의 추구가 그것입니다. 자유가 자유의 향유 자체로 끝나서는 안되고, 책임 의식을 동반해야 한다는 저의 당부는 실상 이웃과 사회에 대한 정의의 각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자서전에서 고백한 대로 학문과 사랑을 향한 열정에 이어 ‘이웃에 대한 연민’이 함께해야 합니다. 정의 실현을 위한 강한 집념이 없다면 자유의 추구는 강자의 이익을 수호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누리는 기득권의 과감한 청산, 과거와의 분명한 단절,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철한 헌신은 여러분의 대학생활을 한층 뜻 깊게 만들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사르트르의 상황은 『인간의 대지』의 작가 앙투안 생 텍쥐베리(Antoine de Saint-Exupey)의 행동 문학을 통해서 이미 극적으로 표출된 바 있습니다. 1935년 자신이 조종하던 비행기의 고장으로 생텍스는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합니다. 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급히 구조대가 오지 않으면,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서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폭염, 갈증, 기아, 신기루 속에 며칠을 헤매다가 마침내 그는 최후를 결심합니다. 자신이 묘지로 정한 모래 구덩이 속으로 막 몸을 던지려는 순간 문득 눈 앞에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라디오 앞에서 나팔통처럼 귀를 열어 놓고 그의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얼굴과 그의 종적을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료들의 초조한 모습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난자는 내가 아니라 오히려 저들인 셈이고, 저들을 ‘조난’에서 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전신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저들이 나를 사막에서 구출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저들을 ‘조난’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그 절체 절명의 순간에 아낌 없이 깨달은 것이지요. 인간은 항상 인간의 샘터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샘터의 노예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인간이 자유에 처단된 존재라고? 철없는 소리. 나는 지금 샘터의 노예이며, 친구들의 노예이고, 가정과 사랑의 노예이다. 마치 탯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연줄’로 서로 얽히고 매여 있는 것이다.” 자유는 책임을 넘어 노예로 바뀐 것입니다.

  대강 이런 것이 1960년대의 저희 세대를 매료시킨 참여의 논리였습니다. 여러분의 대학 생활은 그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되고, 이웃과 사회에 흔연히 구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거듭 요청하는 책임 있는 자유의 내용입니다. 공부하라는 권고와 참여하라는 주문은 언뜻 서로 반대되는 당부들로 들릴 법하나, 저는 그 둘이 학문과 생활에서 충분히 조화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공부는 참여를 가슴에 새길 때 의미가 있고, 참여는 공부의 바탕 위에서 힘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학문과 참여를 둘이 아니라 하나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은 양자의 마찰과 혼란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생텍스의 체험을 여러분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만, 예비 지식인으로서 그런 고뇌와 결단을 비록 작품을 통한 간접 체험으로나마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4. 사랑과 혁명을 위하여


  지금까지 메마른 얘기만 했으니, 이제 축축한 ‘사랑 이야기’ 하나를 덤으로 들려 드리고 제 말을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프랑스의 작가 겸 좌파 이론가 로제 가로디(Roger Garaudy)는 프랑스 공산당에서 노선 투쟁을 벌이다가 1970년 제 19차 전당 대회에서 쫓겨납니다. 소신을 버리든지 당을 떠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당 지도부의 지시에 맞서 그는 양자를 모두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무려 36년 동안이나 공산당에 헌신해 온 지식인이 바로 그 공산당에서 제명당하는 사건이니 언론과 여론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신문 기자가 대회장을 메우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회의 장면을 낱낱이 중계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사회주의의 승리에 불굴의 신념을 피력했지만, 어제까지 함께 혁명에 헌신했던 동지 2000여 명의 대의원 가운데 누구도 그의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평소 정직하고 용감한 사람들이었지만, 당의 분열을 걱정하며 결국 당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투표 결과 제명이 결정되자 그는 울분과 모욕감으로 자살까지 생각하면서 회의장을 뛰쳐나왔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기자들을 피해서 가로디는 마구 차를 몰았고, 한 시간 가량 이리저리 돌다가 마침내 어떤 집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더니, 식탁에는 두 사람 몫의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차렸습니다. 오래 전에 헤어진 한 여인의 집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가장 엄격한 봉쇄 수녀원이 카르멜(Carmel)인데, 여기는 살아서 들어가 죽어서야 나오며 부모가 찾아와도 가운데 장막을 치고 만나는 곳입니다. 여기 들어가려던 처녀를 가로막고는 천상의 하느님보다 지상의 헐벗은 인간이 세뇌 공작을 폈습니다. 그렇게 유혹하여(?) 같이 살다가 자신이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체포된 뒤 흐지부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실로 25년 만에 그 여인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식탁을 보고는 황급히 “미안하오. 혹시 누구를 기다리고 있소?” 하고 남자가 묻자,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누구를 기다렸습니다. 바로 당신이에요. 라디오로 당신 사건을 계속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쫓겨난 당신이 여기 이외에 달리 갈 데가 없을 것 같았어요. 25년 전에 당신이 좋아했던 포도주와 호밀빵을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미어지는 식사 끝에 여인의 이마에 키스하면서 그는 “사랑이 없으면 혁명도 없다”는 진실을 가슴에 새깁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는 혁명은 무책임하고, 혁명이 없는 사랑은 무의미합니다. 그 책 『인간의 소리』를 읽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남자의 배반이나 여자의 쑥맥 같은 용서를 들추면 이야기의 ‘향기’가 날아갑니다. 아무튼 우리도 그런 사랑 하나, 그런 혁명 하나를 만들 수만 있다면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여든, 혁명이든 뜨거운 사랑이 함께해야 합니다. 진정 알차고 멋진 대학 생활을 통해서 그런 사랑을 준비하십시오.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