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의 유산(대구신문 3월 3일 발행)


이시훈

(본색 소사이어티 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2016년 늦겨울은 한국 정치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집권 여당과 정권의 무리한 테러방지법 입법 시도에 맞선 민주당과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야3당은 170시간에 이르는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이 글이 쓰이는 동안 32명의 야당 의원들이 잠과 끼니, 배변의 안온함을 내려놓고 밤낮으로 돌아가며 국회 단상을 지켰다. 제 6공화국 헌정사 최초의 ‘사건’에 사이버스페이스를 중심으로 국민들의 호응도 컸다. 인기 예능방송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이름을 따 “마이 국회 텔레비전”이라는 애칭으로 필리버스터를 부르는 이도 있었고, 몇몇 의원들의 헌신적이고 감동적인 호소와 각자의 영역과 경험, 전문성을 살린 설득은 국민들의 반향과 호응을 일으키며 필리버스터 어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장 방청객과 생중계 관람자들이 점점 늘어났고 SNS에선 주요 의원에 대한 환호와 열광이 이어졌다.

날강도나 세금 도둑놈 취급 받기 십상인 우리 국회에서 활동과 전문성, 발언으로 국민들의 열성적 지지를 받은 적이 있었던지 돌이켜보게 될 정도로 필리버스터는 놀라운 경험을 만들어냈다. 특히 필리버스터의 원조인 미국 보다 더 엄격한 필리버스터의 제도적 요건에도 불구하고 기존 캐나다가 가진 필리버스터 기록을 큰 차이로 뒤집었고, 김광진, 은수미, 정청래 등은 우리 헌정사의 필리버스터 기록들을 경신했다. 비록 이런 기록과 호응이 필리버스터의 본질은 드러내기엔 부족하지만 이 필리버스터의 의미를 쉽게 체감해볼 수는 있어 보인다.

필리버스터라는 이 생경한 경험의 호출은 우리 정치에 여러 의미를 가진다. 요컨대 다수당, 다수결의 윤리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 정치는 단순 다수 대표제-소선거구제라는 현행 선거구 제도부터 주요한 의결까지 과반수 혹은 다수결을 통한 의사결정을 택해왔다. 하지만 정치적 구조와 대표성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런 결정 구조는 언제나 다수에 대한 전횡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동시에 과연 대표되지 않는 소수의 문제를 남겨둔다. 필리버스터는 일부 의원들의 위상을 올려두었고, 테러방지법에 대한 공론을 일으켰지만 일정 시점 이후엔 결국 이 문제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져야 한다. 흔히들 민주주의는 다수결, 과반수라는 착각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런 물음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공론의 장을 확장하고 심화 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타협과 설득, 숙의가 거세된 다수결이나 과반수는 민주주의적이기 보단 훨씬 전체주의적이고 대화와 상호 침투 가능성을 닫는 적대의 방식일 수 있다. 필리버스터는 비록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일지언정 다수결을 넘어선 공론과 숙의의 가능성을 열었다.

한편 이번 필리버스터는 비례대표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필리버스터에서 대표적인 활약을 한 의원들 상당수가 비례대표제를 통해 원내에 들어온 의원들이다. 많은 이들이 마치 비례대표제로 원내에 들어온 의원들을 2군 선수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결국 지역구를 뚫고 올라온 이들을 더 높게 치는 풍토와 연관이 있다. 한편 비례대표 제도 도입 초기에는 비례대표로 들어온 의원들이 지역구 출신과 구별 되는 의정활동을 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사실상 여러 지표에서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원 간 의정활동의 차이가 크지 않음이 확인되며 비례대표를 낮게 보거나 심지어 비례대표제를 탐탁지 않아 하는 여론이 종종 목격 되었다.

하지만 이번 필리버스터에서 비례대표제로 입성한 의원들의 헌신과 발언들은 분명히 돋보이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비례대표는 기존 소선거구제에서 입성이 쉽지 않은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에게 원내 진출의 길을 열었고, 그들 가운데 몇몇은 점점 우리 정치의 중요한 자산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는 유감스럽게도 점차 취약해져가고 있다. 이번 20대 총선 선거구 확정 과정에서 의원 정수를 유지하며 지역구를 증원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는 큰 폭의 감축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비례대표는 부나 권력이 없는 이들이 중요한 정치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경로로 존재하고 있다. 더 많은 청년, 더 많은 여성, 더 많은 소수자의 원내 입성을 위해 더 강고하고 확장된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필리버스터는 바로 비례대표제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새삼 보여주고 있다. 성인 남성, 엘리트 중심의 국회에 다양성의 가능성을 비례대표제가 열어주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가능성이 희박해져 가는 상황에서 이뤄진 마지막 입법자들의 저항이다. 누군가는 이미 정해진 결말(테러방지법 통과)을 위한 쇼라고 하지만 적어도 필리버스터에 임한 의원들은 정의화 의장의 직권성장 철회나 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위해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열 몇 시간 단상 위를 고독히 지켜야 했다. 작은 가능성을 향한 이 시도는 결국 패배와 철수로 끝날 것이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제 정당들은 선거 모드로 돌입 할 것이고, 필리버스터의 기억은 탈각되어 남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170시간이 이르는 필리버스터의 기억은 우리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새로운 경험을 열었고, 직간접적으로 여러 질문들을 던졌다. 본문에서 이야기한 다수결의 윤리학과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은 그 중에 몇 가지일 뿐이다.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우리 정치의 미래 전망이 다시 생활공간에 들어오길 기대한다.



http://www.idaegu.co.kr/news.php?code=op03&mode=view&num=19071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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