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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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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로 빛이 물러나고 있다. 마치 세계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드러내고 규정하는 것 같던 그 강렬한 빛이. 동쪽의 들판과 하늘은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간헐적으로 하늘의 구름이 서쪽의 석양을 노랗고 붉게 비춰주지만 빛은 떠나가고 있다. 들판의 벼와 돌과 풀들이 하나로 뭉텅그려져 색의 뭉치로 보인다. 그토록 모든걸 섬세히 드러내던 빛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대구에 도착 할때쯤이면 온전히 어둠과 인공의 빛만이 남을 것이다.

이곳들이 불과 몇 시간 전 내가 본 그 찬란한 들판이었나 의심하고 스스로 물으며 오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기차는 그 기억이 호출 되는 것 보다 빠르게 모든 풍경을 과거로 밀어낸다. 이젠 내가 기억 하는게 좀 전의 풍경인지 오전의 그것인지를 생각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이 예정 되지 않은 여행의 상들도 기억 속으로 밀려간다. 남은건 현상용액둘에 담겨질 필름 두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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