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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냉면론

냉면론




<문제의 그 평양냉면>



2년 전 여름인가 종열이랑 부산안면옥을 갔다. 부산안면옥은 대동면옥과 더불어 괜찮은 평양식 냉면을 하는 대구 최고의 냉면집이다.(가게 자체가 한국전 때 월남한 집이다)
난 부산안면옥의 명태회를 듬뿍 얹어 주는 그 특유의 전분 그득한 찰짐을 안은 함흥식을 좋아해서 그걸 먹고 종열이는 슴슴 닝닝한 육수에 메밀맛 듬뿍인 평양식을 먹었다.

그때 옆테이블에 아지매 두 분이 냉면을 먹는데 한 명이 계속 투덜댄다. 냉면이 왜이래 맛이 없냐면서 인근 강산면옥(대구 냉면의 대중적 오리지널은 강산면옥애 있다) 물냉면과 비교를 하며 같은 물냉면을 먹던 종열이에게 물냉면 맛 없죠? 라고 물어왔다.

종열인 이 집의 평양식 냉면이 처음이라 우리가 흔히 먹는 물냉면에 비해 낯설고 '맛'이 없었던지 "네"라고 나지막히 답했고 아지매들이 자리를 뜨며 가게는 다시 평화로워 졌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이른바 우리가 먹는 냉면론의 문제를 드러낸다. 옥류관에서 랭면을 먹어본 이들의 글이나 실제 먹어본 서울과 대구의 평양식 물냉면은 '맛' 없음 즉 무미함과 담백함 속에서 뚝뚝 끊어지는 면발에서 나는 그 메밀 특유의 내음(젖은 수건 냄새랑 약간 비슷하다)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대개 흔히 접하는 짭고 단 육수에 전분 들어가고 메밀 색 내려고 메말 태운 가루를 넣은 그 냉면과는 사실 형태만 같고 전혀 다른 냉면이다. 우린 후자를 '평양식 물냉면'이라 학습하였고 어느새 냉면은 특유의 슴슴 닝닝한 풍미와 뚝뚝 끊어지고 메밀향 나는 것에서 후자의 냉면으로 그 정체를 옮겨왔다.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물론 미감은 상대적일 수 있다. 냉면에 어떤 이데아와 같은 근원적 형태가 있고 그것의 절대성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단지 뭐랄까 자신이 길들여지고 학습한 그 미감 외에 더 풍부한 미감의 세계가 있을 가능성을 닿지 말자. 익숙치 않은 그것이 비록 당장 당신의 미감을 충족시키진 못할지언정 그것의 '맛'에 대해 겸손할 필요성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겸손함을 포기한다면 당신은 계속 그 다시다 듬뿍 들어간 고무 같은 면발의 냉면만을 먹을테니까. 세계의 모든 맛이 맥도널드의 그것과 같이 언제 어디서 누구든 맛 볼 수 있는 맛은 아니며 그 맛을 이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겸손을 요구로 하는 맛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것은 나의 쏘울 푸드..명태회와 돼지 수육, 배, 오이가 목을 때리는 면과 버무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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