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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우겸의 죽음

우겸의 죽음

명나라가 영락제 시절을 지나 나름 잘 나가던 시절, 어이 없는 사건으로 붕괴 직전에 내몰린 적이 있다. 명나라 5대 황제 정통제 시기 변방의 교역 문제로 야기된 오이리트계의 남진은 명나라와 몽골의 대전으로 이어졌다. 명나라는 아려졌다 시피 후한 이후 최고로 환관의 정치적 역할과 위상이 높은 시대였고, 최고권력을 행사하던 환관 왕진은 정통제에게 친정을 진언하며 전투원과 비전투원 구별 없이 죄다 끌어 모은 50만의 대군을 이끌고 산서성으로 향한다.
결과는 알려졌듯이 명나라 50만 대군...사실 군대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전투우너과 비전투원이 혼재된 거대한 무리는 10분의 1이 될까 말까한 몽골군에게 탈탈 털린다. 몇 차례의 대패에 황제와 이 거대한 무리는 토목보라는 변방의 요새에 들어가게 되는데 물이 없는 이곳에서 전력을 상실한 명나라의 거대 행렬은 말그대로 해체 당해버린다. 전횡을 일삼고 이 원정을 주도한 왕진은 명나라 대신과 장군들의 분노로 죽었다고도 하고 도망치다 몽골군에 죽었다고는 하는데 여튼 죽는다. 왕진을 믿고 원정을 했다가 50만명을 한방에 저승길로 보낸 정통제는 몽골의 포로가 된다. 중원에 도읍을 둔 종국 제국의 황제가 포로가 된 건 아마 서진 회제 사마치와 정강의 변 당시 금나라에 잡힌 북송의 흠종과 휘종 정도일 거시다. 그 쪽팔리는 일이 명나라에 벌어졌으니 북경의 명 정부는 얼마나 멘붕이었을까?

원래의 수도 남경 천도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몽골의 항복 요구와 진격 소식이 북경에 날아든다. 왕진이 멍청하게 조정의 최고 결정권자들을 다 데려 가서 길동무 삼은 터라 정부는 패닉이었는데 그때 절강성 출신의 남자가 나선다. 그 이름은 우겸. 병부상서로 북경 방위의 책임을 맡은 우겸은 정통제의 동생을 황제로 옹립하고 황제와 우겸을 중심으로 수습된 조정은 놀라게도 북경에서 몽골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낸다. 결국 몽골은 오르도스를 지배한데 만족하고 철수하며 포로가 된 정통제를 송환(이라 적고 투척이라 읽자)한다. 아 상상해보라 얼마나 쪽팔리는 일ㅇ니가? 도망쳐 구사일생 돌아온것도 아니고,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중국사에 몇번 없는 황제 포로라니...그것도 황제가 된 동생이 이 위기를 극복한 상황에서 송환 되었으니 아마 범인들의 경험 가능한 쪽팔림과는 비교가 안되는 쪽팔림을 정통제는 겪었을 것이다. 그래도 동생이 착해서 태상황제라고 대우 해주고 잘 살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쪽팔ㄻ을 당할때 본성이 드러난다. 정통제는 쪽팔림을 성찰의 계기로 삼는 인간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는 결국 정변을 일으켜 황위를 되찾는다.(되찾는건지 찬탈한건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토목의 변이라는...이 초유의 똥을 치운 재상 우겸은 살해당한다.

우겸은 지방관으로 있을때 평판이 좋은 이였다. 나름 위민의 길을 가서 평과 인심이 좋았고, 사태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의지하고 그를 중심으로 뭉쳐 북경을 사수했으니 흔한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변 과정에서 되도 않은 음해를 받고 죽는다. 물론 한 백년 정도 지나서 복권이 되고 시호를 받지만 죽은게 되돌아 오는건 아니다.

새삼 우겸의 죽음이 떠오른다. 비상 시국에 비상시국에 맞는 대책을 세운 능신은 죽었고, 부끄럼을 잃고 욕심에 찌든 놈은 다시 자금성의 주인이 되었다.

뭔가 묘하게 지금의 정세가 오버랩 된다. 그냥 착각인가? 신성모 같은 놈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그런가? 자칭 대단한 책략가 행세 하는 야당의 수장이 있는 세상이라 그런가? 난 누군가에서 우겸과 왕진, 정통제가 다 보인다. 그래서 종나게 불안하다. 토목의 변 같은 쪽팔림을 겪을것 같은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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