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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헬조선의 윤리학. 2015년 9월 9일 대구신문

​(어떻게 이런 지도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헬조선의 윤리학. 2015년 9월 9일 대구신문



이시훈(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본색 소사이어티 대표)




#1. 요즘 한국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가장 뜨거운 것이 무엇이냐 묻거든, 단연코 ‘헬조선’이라 답하고 싶다.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조선이 결합된 이 말에는 과거 고도성장과 급격한 붕괴 과정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와 사회의 현실들이 녹아있다. 각자도생, 우승열패와 승자독식의 논리와 더불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상이한 삶의 조건이 투영된 갈등이 헬조선이란 말 안에 담겨있다. 그리고 이 말의 내포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의미는 청년 세대가 어릴 적 훈육되고 교육되며 받아들인 도덕과 규범, 가치들이 통용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조소일 것이다.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헬조선의 상식’이란 이름으로 적힌 글은 “넌 왜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어서 가해자를 힘들게 하니”라며 ‘헬조선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2. 지난 7월 말 구미지역의 한 국회의원을 둘러싼 성폭행 사건이 있었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피해자의 피해사실 번복으로 사건이 진실공방의 늪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우연히 지하철에서 한무리의 어르신들 주고받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하철을 꽉 매운 어르신들의 목소리 중 한 단락이 지하철의 소음과 두터운 이어폰 사이를 비집고 들려왔다. “그 의원 잘생기고 괜찮이 보이더만 아마 보험하는 그 년이 꼬드겨서 그랬을끼라”

위의 두 장면은 서로 다른 세대에서 드러나는 헬조선의 윤리의 두 단면을 보여준다. 처음 두 장면을 마주했을때는 저것이 한 개인의 우발적이고 삐뚤어진 사고와 정서, 태도의 발현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짚어보면 “넌 왜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어서 가해자를 힘들게 하니”라고 댓글을 적은 네티즌과 지하철에서 성폭행 가해자를 두둔하는 노인은 ‘헬조선의 윤리’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간 우리의 도덕 체계와 윤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약자를 보호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현실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배우고 믿어왔던 것과는 극적으로 다른 모습들이다. ‘헬조선의 윤리’에는 약자를 보호하고 수난 받고 고통 받는 이에게 연대하고 연민하기 보단 강자를 동경하며 승자를 숭상하는 한편 심지어 가해자를 옹호하는 의식-무의식으로 가득하다. 많은 성범죄에 대해 사람들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옹호하고 정당화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역으로 성범죄가 한국의 남성지배 질서와 밀접하게 이어져있음을 방증한다. 성범죄의 절대 다수는 권력관계의 발현이고, 바로 ‘헬조선의 윤리’는 이 권력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자와 약자로 교묘하게 치환하여 사고한다. 구미의 국회의원이 여성 보험판매원을 성폭행한 사건에서 의원을 동정, 옹호하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해자가 남성이고 더욱이 정치권력을 지닌 국회의원인데 반해 피해자는 우리 곁에 흔하게 존재함에도 무시 받고 천대 받는 보험판매원이다. 우리가 가진 정상적인 도덕과 윤리 규범이라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월등이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이에게 더 엄중하고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헬조선의 윤리’는 ‘강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 책임을 왜곡한다.

다른 한편 ‘헬조선의 윤리’는 가해자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를 도리어 공격하기도 한다. 2009년 1월, 용산 개발이라는 허황된 메가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보증금도 받지 못하고 가게를 잃은 이들이 망루에 올라갔고 이 망루에서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 전 국민이 생중계로 바라보고 목전에 구조헬기와 해경 순찰선이 있음에도 가족들을 진도 해역에 묵어야 했던 세월호 참사의 경우가 그 대표적이다. ‘헬조선의 윤리’는 세상으로부터 내몰려 망루에 올라서야 했던 불과 얼마 전까지 작은 가게의 자영업자였던 사람들과 자식 잃은 서러움과 무책임한 국가에 대한 분노로 광화문 광장에 선 유가족들을 빨갱이네, 보상금에 눈이 먼 자들이네, 정당한 공권력을 공격했네 등 일반적인 도덕이나 정의에 대한 관념으로 납득하기 힘든 논리로 공격해왔다. 진상규명을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한여름의 땡볕을 50일 가까이 맞으며 단식한 아버지에게 ‘헬조선의 윤리’가 ‘폭식투쟁’으로 응답했음은 ‘헬조선의 윤리’가 가진 피해자 공격의 논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헬조선의 윤리’는 특별한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지하지 못할뿐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의 욕망과 의식 저변에 숨어 있다. 단지 그것이 드러나는 사례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극적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연대성과 약자에 대한 연민, 타자의 고통을 마주하는 능력의 위기이며, 타자를 상상하는 힘의 위기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결여되고 붕괴된 자리에 피해자를 피해자로 대하지 않는 ‘헬조선의 윤리’가 자리 잡고 있다. ‘헬조선의 윤리’는 평소에는 잠복해있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강력한 성찰적 계기에 파열음을 일으키며 등장한다. ‘헬조선의 윤리’야 말로 앞으로 우리가 인간의 선량함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쳐야할 상대가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