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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 잉여

극비수사

극비수사

 

 


원래 새벽 1시에 하는 무뢰한을 보려고 시내를 나갔다가 갑자기 쇼핑을 하면서 짐이 생겨 1시 무뢰한을 포기하고 마침 시간이 맞은 극비수사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나름 알려진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독불장군 형사와 묘한 도사가 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납치 사건을 추적, 수사하는 영화라기에 유사한 형태의 수사물, 범죄물을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인접한 장르가 대개 보여주는 형태의 긴장감과 위기 혹은 액션, 스릴러 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사 과정 자체는 상당히 평이하고 극의 주된 에너지원으로 긴장감을 부여하기 보다는 단지 무언가를 풀어나가기 위한 소재라는 인상이 강하다. 즉 경찰이 납치범을 잡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극의 요소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인물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우선 고 형사를 맡은 김윤식이 납치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의 전형과 달리 상당히 거칠고 감정에 충실하다. 주도권과 공을 둘러싸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동료들을 향해 폭발적으로 그들을 쏘아 붙이기도 하고, 그에 대한 보복이 들어오자 유해진과 멱살 잡고 고성을 지르기도 하며, 처음에는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피하기도 한다. 즉 뭔가 냉정하고 차분하게 일을 풀어가고 단서를 모으는 캐릭터는 아닌 것이다. 특히 KBS 본관 앞 범인과의 조우에서 보여주듯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 철저히 놓여 있는 인간으로 고형사를 보여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기한 인물은 유해진이 맡은 김도사다. 모두가 죽었다 하고 심지어 용하다는 스승(이재용)도 죽었다는 아이를 홀로 살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로 인해 범인으로 의심까지 받고 구타와 고문까지 당하지만 그래도 그는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 김윤식과 함께 이동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한 확신 그리고 어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한편 김도사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흔히 보기 힘든 캐릭터다. 대개 도사, 무당에 대한 지배적인 묘사와 그는 거리가 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경희대 법대 출신이라는 그의 캐릭터 설정처럼 무()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고뇌하고 확신과 불확실성 사이에 흔들리는 지식인에 가깝다. 대개 우리 영화들이 무당이나 도사를 매우 우스꽝스럽고 요란하게 혹은 매우 엄숙하고 무섭게 표현하는 것과 달리 그는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아이들과 아내의 생계를 걱정하며 런닝꾸 차림에 머리 감고(등장하는 장면을 복기해보라) 양치질 하다 오는 손님을 맞는(끝부분을 되돌아 보길 바란다.) 인물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로서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렴풋하게 본 것을 토대로 움직이는 인물로 나온다. 정말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무를 보여준 것 같다.

한편 영화의 또 다른 방점은 조직 권력의 문제 그리고 그런 지배적 흐름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가진 어떤 확고함, 소신들이다. 확고함, 소신이라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의 것이기에 흔들리고 또 흔들리지만 결국 그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형사의 완고함, 확고함 그리고 아이가 살아 있다는 무의 소신이 납치 사건 자체보다 더 확실히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 보인다. 아이를 구해놓고도 지배 논리 속에서 외면되고 소외되지만 결국 그 확고함, 소신은 그들을 복권시켰고 잠시 회의적으로 흘러가는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가져간 것은 아닌지...

 

영화를 볼 때 이 영화가 스릴과 긴장이 넘치는 영화라기 보단 완고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점(심지어 범인도 절대악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70년대 사람들이 사는 풍경을 보여주는 마치 아날학파의 책 같은 장면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사실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것 없는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시간이 잘 간다. 시간을 오래 견딜 것인지의 여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2시간이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 영화를 볼 때 소리와 냄새를 자기 자리 밖으로 내보내지 마라 제발 좀...그리고 의자 좀 차지 마라 내가 당신 보다 다리가 길어도 30센치는 길것임에도 난 앞 자리를 한번도 차지 않았다. 내가 당신과 오늘 영화 시작까지 몇 번 눈을 마주쳤는지 돌이켜 보기 바란다. 예의가 없으면 혼자 어디 구석에 홀로 살아라 좀


덧2. 참고로 난 돌려서 거는 전화기를 써본 마지막 세대(어릴때 외갓집인가 큰집에서 썼었다.)이고 그리고 공중전화랑 친숙한 마지막 세대인것 같다. 같이 본 후배는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난 선불제 전화카드도 모아봤고, 후불제 전화카드라는 신기원도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