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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회색지대

영대신뭄 1612-회색지대

 

 

이시훈(정치외교학 박사과정, 본색 소사이어티 대표)

 

  201549일 오후 5, 경북대 동문 사회대 앞 여정남 공원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날은 한국의 군부 정권이 저지른 대표적 사법살인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의 기일이었다. 당일 오전 경북대 출신으로 인혁당 사건에 의해 희생된 여정남을 기리는 공원에서 조촐한 추모식이 있었는데, 그 추모식의 온기가 가시기 전에 여정남 공원은 150명 가량의 초로의 군인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동문을 통해 집에 가던 학생들은 이 놀라운 풍경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으로 교정을 빠져나가기도 하며, 자기들끼리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들은 49일 저녁에 예정된 베트남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 증언회에 항의하기 위해 경북대에 모인 파월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쳐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했다.”는 구호와 베트남전이 적화를 막기 위한 전쟁이었고, 그 전쟁의 결과 지금의 한국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의 변을 확성기를 통해 끈임없이 역설했다.

  이미 서울 조계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서울 증언회와 이재갑 작가의 학살 관련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리셉션이 서울지역 파월 군인들의 거친 항의와 충돌 우려로 인해 취소되었기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감이 경북대 동문 일대를 감쌌다. 실제 증언회가 예정된 4합동 강의동 앞에 모인 많은 경북대 학생과 교수들은 혹시나 하는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 채 증언회가 시작되고도 한참이나 입구를 지켜야 했다.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은 행사가 시작된 직후 언론 취재 중단과 행사 주제 변경을 요구했으며, 결국 730분 경 자진해산했다. 4합동 강의동 앞을 지키던 교수와 학생들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나타남이 주는 물음은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역사를 복기해 볼 때 역사라는 공간 안에는 환희와 기쁨의 순간보다 수많은 폭력과 고통, 학살과 전쟁, 죽음의 흔적들이 더 많은 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 속에는 너와 나’, ‘친구와 적’, ‘피해자와 가해자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들이 있다. 프리모 레비의 저작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회색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레비의 여러 저술에서 볼 수 있는 카포(나찌 수용소 유태인 감시자)와 존더코만도(나찌 수용소 유태인 작업부대)는 이 회색지대를 대표하는 이들이다. 레비에 따르면 아우슈비츠와 같은 잔인한 폭력과 학살의 역사 속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원되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한 이들이 바로 회색지대에 놓인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베트남전 참전군인 다수는 이 회색지대 안에 존재한다. 그들은 베트남인에게는 잔혹한 가해자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군부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동원되어 파병되었으며, 전쟁 수행의 주체인 미국이 화학전에 노출된 이들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는 일상 속의 그들은 대개 가해자로만 존재한다. 그것도 자신들을 끊임없이 정당화시키려 노력하는 가해자로 말이다.

  물론 면책을 위한 회피와 정당성의 역설은 어떠한 면책도 가져올 수 없다. 그렇기에 진정한 면책은 참회와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요컨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은 자신들이 베트남의 적화를 막기 위한 신성한 전쟁에 참전했음을 역설한다. 분명 베트남전은 동서방의 두 이데올로기 축의 대리전 양상을 띤다. 하지만 동시에 베트남 전쟁에는 이전부터 이어져온 민족해방의 역사 역시 존재한다. 보통의 베트남인들에게 과연 미국이 사회주의를 막기 위해 들어온 구원군이었을까? 추측컨대 그들은 과거의 프랑스나 일본과 같은 식민통치의 연장선상에 놓인 점령군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전쟁에 한국군이 투입된 것이다. 설사 그 전쟁이 정당한 전쟁이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우리 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과 강간의 역사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명하게 기록된 역사 앞에 그 전쟁의 정당함을 역설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수사 이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전쟁에 동원되고, 미국의 화학전으로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이 자신들의 학살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할 때 피해자로서 면책의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파월 군인들의 학살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베트남전에 파병된 군인들의 급여 중 상당수는 한국으로 송금되었고, 이 돈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종잣돈으로 쓰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파월 군인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이 행한 잔혹함을 밑천삼아 일어선 것이다. 그런 우리에겐 당연히 베트남에서 우리 군의 총부리에 죽어간 이들을 기억할 책임 역시 존재한다. 물론 매년 많은 청년들이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을 통해 베트남으로 평화봉사를 떠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베트남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만행이 우리 사회의 기억 속에 하나의 부끄러운 역사로 자리잡고 있지는 않다. 파월 군인들이 피해자로서 학살 피해자와 손잡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와 해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사진은 내 술친구,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촬영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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