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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 잉여

프리모 레비와 이탈리아 일간지 『La Stampa』1986년 인터뷰 중

인터뷰어:『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는 두 개의 동사가 끈질기게 반복된다. 때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이해하다’와 ‘용서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이 책을 읽기 위한 두 개의 올바른 열쇠인가?

 

프리모 레비: ‘이해하다’는 네, 맞습니다. 40년 전부터 저는 독일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헤매고 있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제게는 하나의 삶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화학자입니다. 제 주위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죠.

 

인터뷰어: 그렇다면 용서한다는 것은?

 

레비: ‘용서한다’는 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제게 짐 지워진 말이지요. 왜냐하면 제가 받는 모든 편지들은, 특히 젊은 독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오는 편지들은 용서라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가 용서를 했는지 묻지요. 저는 제가 제 나름의 기준에서 올바른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는 경우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만약 제 앞에 아이히만이 있었다면 저는 그에게 사형판결을 내렸을 거에요. 제게 물어오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용서는,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독일인들이 누구입니까? 저는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네 죄를 사하노라”라는 말은 제게는 구체적인 의미가 없는 말이죠. 저는 그 누구도, 사제조차도 단죄하고 용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뉘우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나 말로만 뉘우치는 것은 안됩니다. 저는 말로 하는 뉘우침으로는 만족하지 않아요. 팩트로써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물론 너무 늦지 않게 증명해야겠지만 말이죠.

 

 

프리모 레비와 이탈리아 일간지 『La Stampa』1986년 인터뷰 중

프리모 레비, 2014,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57~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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