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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 잉여

루시

루시(LUCY), 2014년 9월 6일)

 

1. 이디오피아? 수단? 예전의 지식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70년대 초반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엄습해오던 그때, 일단의 젊은 연구자들이 그들의 캠프에서 술을 마시며 비틀즈의 ‘루시 인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틀어놓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하나의 뼛조각들에 환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아프리카 내륙에서 고인류의 흔적을 찾는 연구팀이었다. 그들은 기존 오스피랄로피테쿠스 중에서도 새롭고 오래된 종의 뼈를 찾아냈고, 골격 상당수가 보전된 이 여성의 뼈에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있던 비틀즈의 노래 제목을 따서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2. 인류는 1억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유전자를 다른 개체로 전승해왔다. 우린 그것을 번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유전자 재생산 과정에서 이전 세대 개체들의 지식과 경험의 전달이 이뤄진다. 우리는 이전 세대로부터 지식과 경험을 전달 받는다고 할때 외부에서 받는 일종의 학습만을 생각하지만, 그것이 이 전승의 전체는 아니다. 그 하나의 예로 고고인류학 하는 이들은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분석을 살필 수 있다. 고고인류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 분석을 통해 그들의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조건들을 찾아내고 그 조상들의 이동경로를 추적, 재구성 하는데 성공했다. 인류는 유전적 각인과 교육, 번식을 통해 종의 생존을 도모해왔고, 현재에 이르렀다.

 

3. 스칼렛 요한슨(루시)는 지극히 재수 없는 일에 연루되어 한국계 마약 보스 미스터 장에게 C.P.H.라는 새로운 약물을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C.P.H.라는 약물의 파우치를 배 속에 넣은 채 어딘가로 전달하는 역할을 강제로 맡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고로 인해 이 C.P.H.4 파우치는 그녀의 배 안에서 터지게 되고 이로 인해 그녀는 기존의 인류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

 

4. 사실 이후의 스토리는 특별한 것이 없다. 이 물질의 흡입으로 생긴 변화와 그 변화를 매개로 획득한 지식은 전달하려는 루시와 그녀를 제거하고 루시로 인해 유럽 경찰에게 빼앗긴 C.P.H.4를 되찾으려는 미스터 장과 그 부하들의 싸움이 이어진다.

 

5. 문제는 그래서 뤽 베송이 뭘 말하려 하느냐다.

 

- 시간과 존재의 문제? 모건 프리먼이 역할을 맡은 노먼 교수는 권위 있는 뇌 연구자다. 그리고 그는 영화 전반부의 강의에서 인간의 존재론이 시간성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존재의 유한성, 시간 앞에 두 가지 생존전략을 택하게 되는데 하나가 불사를 향한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유전자의 재생산이다. 뤽 베송은 존재와 시간에 관한 메시지를 노먼과 루시의 대화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철학에 대해 식견이 높은 누군가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의견을 달 것이라 기대한다.

- 루시의 변화 과정에서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확장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의 몸, 나의 존재, 나의 시간에 갇혀 있다. 이것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오전한 나만 의 것이다. 하지만 루시는 나라는 외형을 넘어서서 물질과 시간, 존재를 통제하게 된다. 루시의 변화는 일종의 자기 존재의 확장이다. 처음 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애니메이션 건담의 뉴타입과 같다. 상대의 존재를 어떤 새로운 감각으로 인지하고, 그 존재를 온전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강력한 인상으로 사물의 본질과 내포를 직관하고(침투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과 누군가의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며, 사물(남의 몸까지)을 통제한다. 그리고 마침내 뇌의 활성화가 고도화 되는 순간 그녀는 인간 존재의 본원적 목적인 시간성을 초월하게 된다. 즉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구속하는 시간의 순행이라는 틀에 갇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젠 체세포의 개방으로 외형마저 변화하고, 다른 물질들을 흡수하기 시작하며, 뇌가 100% 열린 순간 이젠 우주의 근원을 깨닫고 스스로의 ‘형태’ 마저 초월해 버린다. 그리고 단 두 가지를 남긴다. 모건 프리먼에게는 자신의 뇌 활성화 과정에서 축적한 모든 것이 담긴 USB를, 피에르 반장에겐 ‘난 어디에나 있지(I am everywhere)’라는 메시지를

 

- 그래서 루시는 신인가? 그녀는 처음 노먼과의 대화에서 자신에게서 점점 인간적인 부분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두려움, 욕망 따위가 사라지고 있다고, 그러나 그는 지혜의 전승이라는 인간적인 행위를 이어간다. 비록 고전적인(?) 전승의 방법(번식)을 택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는 노먼이 말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의 하나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남겼다. 우리는 그녀가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에서 그녀가 점점 신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루시의 마지막은 철저히 인간적이다.

그리고 왜 루시는 고인류 루시와 미켈란 젤로의 천지창조를 흉내낸걸까? 루시는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인간이다. 세계의 근원을 목도한 순간 그녀의 형태는 증발한다. 짐작컨대 그녀의 형태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시간, 세계로 확장된 것일지 모른다. 굳이 천지창조를 굳이 연상케 하는 이유는 그녀 스스로가 인간 진화의 매개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인 의사는 C.P.H.4가 강력한 신경물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아기가 잉태될 때 산모의 몸에서 미량의 C.P.H.4가 생성되고 아기를 이것의 폭발적 에너지를 이용해서 뼈와 신경, 뇌를 만든다고 했다. 루시는 어쩌면 단순한 신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세계를 진화시키는 C.P.H.4로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루시는 일반적인 관념에서의 단순한 신 보다는 프로메테우스와 선지자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가 아닐까? 마치 건담의 아무로와 샤아라는 최초의 뉴타입처럼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지만 한편으론 다른 인간에게 경외시 되고, 인간을 초월했으며 동시에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예고하는 담지자가 루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족: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적인 사고를 해서, 루시가 루시를 만남으로써 인류가 진화했다는 설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6. 그런데 여전히 찝찝하다. 뭐가? 최민식과 피에르 반장... 너흰 누구냐?

 

- 최민식이 분한 미스터 장은 현재의 인간이 아닐까? 루시가 새로운 인간성을 이야기한다면 최민식은 낡은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루시는 개인적 욕망과 두려움, 감정들을 상당수 상실했다. 대신 루시에게는 전승(비록 유전적 전승은 아니지만)의 의지가 남아있고, 새로운 변화를 통한 깨우침(배움)의 의지가 작동한다.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키지만 그 이유는 철저히 이타적이다. 하지만 미스터 장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과 욕망, 고통, 분노에 충실하다. 그런 면에서 최민식은 구 인류를 표상하는 존재일수도 있다. 처음 루시가 미스터 장의 아지트를 쳐들어가서 미스터 장의 양 손에 칼을 꽂은 후 주고 받은 대화를 기억해보자, 루시는 미스터 장에게 너의 고통이 너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다시 건담의 예시로 돌아와보자, 지구연합정부는 뉴타입의 존재를 부정하고 금기시한다. 그들은 철저한 올드타입의 원형을 보여준다. 타자를 향한 자아의 확장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해관계, 권력에 대한 집착 등 이기성을 가진다. 만약 뉴타입과 올드타입과 같은 하나의 단절성이 작동한다면 그건 분명 미스터 장과 루시에서 찾을수 있다.

문제는 미스터 장의 행동에서 개연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뤽 베송이 미스터 장을 영화 히트의 로버트 드니로와 같이 철저히 안건적인 악당, 일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좀 더 투철하게 세속과 진화의 서사가 대립되지 않았을까? 캐릭터의 정체성이 너무 불분명하다.

 

- 피에르 반장은?...루시는 그에게 키스하며 기억을 되살리는 존재라고 했다. 규명해야할 부분이다. 피에르는 루시를 지키는 존재다. 모건 프리먼이 지식의 존재라면 피에르는 누군가를 지키는 존재..? 좀 더 고민해서 설명해야 할 부분이다.

 

- 그런데 다시 반복하지만 두 캐릭터는 그 존재 이유가 너무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7. 갈무리

 

- 어떤 캐릭터도 빛나지 않는다. 스칼렛 요한슨의 빛나는 외모만이 눈에 들어온다.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관객에게 좀 더 분명히 드러냈으면 어떨까?...캐릭터들의 관계의 외피는 분명하지만 그것의 함의는 너무 많은 상상과 추측을 요구한다.

- 루시의 초능력이 가진 화려함이 루시의 존재를 독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 뤽 베송이 너무 많은걸 담으려다가 실패한게 아닐까..? 단순 극적인 전개는 좋지만 메시지의 전달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 올해 본 외화 랭킹의 경신을 가늠했지만...여전히 랭킹엔 변화가 없다.

- 생각해보면 뤽 베송 영화가 최근 얼마 사이에 잊혀졌던것 같다. 트랜스포터나 택시 이후에 흥행한 작품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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