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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 잉여

해무

1. 이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설국열차의 냄새가 난다. 봉준호가 직접 연출하진 않았지만 기획과 각본, 제작 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감독도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함께 한 이라는 점이 그런 냄새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영화의 결말을 철저히 비교해서 보라, 기존 구조의 붕괴와 해체, 탈주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남녀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의 조건에 살아남은 것 등..물론 해무의 결말은 설국열차의 결말이 주는 상상력과는 조금 다른 상상력을 제공한다. 아니 설국열차의 결말이 상상력을 제공한다면 해무의 결말은 약간의 상상력과 함께 여운을 준다.

 

2. 그리고 이 영화에는 좌파적 비판 정신이 묻어난다.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영화의 전개를 이끄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영화는 '전진호'라는 배에 대한 김윤석의 물신주의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건 단순한 집착이나 애정과는 구분되는 감정이다. '전진호'는 돈을 벌어오는 생산수단으로써 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배 바깥에선 실추되고 퇴색된 자신의 삶과 대조되는 권력구도를 의미하며,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배는 하나의 사회이며 구조이고, 배는 그것이 창출하는 가치의 여부와 별개로 물신화되어 어떻게든 지켜얄 대상으로 여겨진다.

 

3. 다른 한편 국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문제, 그리고 악의 문제, 조직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조직의 문제는 '전진호' 내부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동료애, 의리 등 여러 수사로 설명가능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관게는 철저히 경제적 이해, 개인의 욕망을 목적으로 한 관계다.그리고 이 관계는 배와 동일시 되며 자연스럽게 물신화의 대상이다. 이 조직, 관계의 실질적 의미와 별개로 이것은 당연히 지고지순하게 지켜져야 하는 대상이다. 김윤석이 박유천에게 이야기하듯 이 조직 외부는 상정되지 않는다. 고로 모든 목적은 이 조직(배와 김윤석 권력)의 유지이다. 악의 문제는 이 조직의 문제로 부터 이어진다. 이 배와 조직의 안녕을 위해 악은 강요되고 당연시 된다. 선택의 여지를 고민하는건 배신자다. 문성근이 그렇게 죽지 않나? 문성근은 단지 고뇌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는것 만으로 김윤석과 전진호에 대한 배신으로 나인찍히고 죽는다. 국가주의, 국민주의, 민족주의 문제는 영화 중반부..극의 긴장도를 올리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조선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밀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지만 국민이 아니기에 보호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선원들에게 같은 민족으로써 인간적 대우를 요구하지만 선원들은 이중의 권력관계(국민과 비국민, 밀입국자와 선원)을 통해 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그리고 결국 이 이중의 권력관계에서 조선족들은 죽음을 맞는다.

 

4. 악의 문제..문성근과 박유천 그리고 김상호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들 군말없이 조선족들의 시신을 토막내고 그들의 신원을 확인 할 수 있는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린다. 김상호와 문성근, 박유천이 약간의 거부감 정도를 표현하지만 물신화된 배의 구조 내에서 김윤석의 명령은 거부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박유천은 한예리에게 불가피함과 자신의 선함을 설명하려 한다. 문성근은 죽어버린 조선족 교사의 사진을 건지려 함으로써 자신의 선함을 확인하려 한다. 이희준들에게선 마치 아렌트가 보여준 아이히만의 모습, 문성근에선 일본 리버럴들이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모습 등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문성근의 모습은 마치 꽃잎의 ''이 자신이 자신의 고뇌와 갈등, 상처와 아픔을 안고 배에 숨어사는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5. 사실 배라는 배경도 그렇고, 명령이란 이름에 무책임한 선원들, 타자의 고통에 무신경한 선원들, 알량한 금품에 눈이 멀어 역할을 하지 않는 공무원 등 이 영화의 많은 부분에는 세월호가 읽힌다. 인간으로 지니는 윤리와 공적 책임 보다 개인의 각자도생과 안위가 더 중요한 현실이 읽혀서 이 영화는 더 비극적이다.

 

6. 그리고..근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이 수년 간 이어지며 지브롤터 해협에서 발레아레스 제도, 티레나해, 이오니아해, 에게해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럽으로의 엑소더스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을 막으려는 서구 공권력의 행동도 활발하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출발한 시리아와 레바논 난민들의 배는 그들을 영해 밖으로 몰아내려는 그리스 해군의 배에 의해 침몰했으며, 시칠리아 해협에선 나닌선의 좌초와 전복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한 난민선이 침수되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배의 무게를 줄인다며 다른 난민들을 죽이고, 산채로 바다에 던진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지중해는 난민의 수중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해무의 중간 밀입국 조선족들이 전진호로 건너오는 장면 기억하는가? 우리는 이런 시대에 과연 내셔널리즘(국가주의, 국민주의, 민족주의)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내셔널리즘 이대로 괜찮을까? 과연 국민이 무엇이고 국경이 무엇이기에 왜 이토록 목숨을 건 엑소더스가 이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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