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경산이 39도 찍던 그 날 아침에 가창댐에 있었던 한국전쟁 시기 가창골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위령제를 다녀왔습니다.

중간에 대구 10월 문학회(10월항쟁을 기리는 문학회입니다.) 선생님들이 쓰신 시를 낭송하시는데 그 중에 이정연님이 쓰신 시가 유달리 귀에 들어와서 여기에 옮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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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세상


이정연(대구 10월 문학회)


우리는 왜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는가

아우슈비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스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몸부림치며 벽을 긁은 손톱자국이 보이는 듯한데

경대병원으로 병문안 가던 삼덕동 어느 골목이나

여름 운피스 사러 현대백화점 가던 반월당 어디쯤에서

1946년 10월에 쌀을 달라, 친일경찰을 처단하라고 외치던

군중의 무리 속 누군가와 내 발자국이 똑같이 포개졌을지 모르고

그 발자국의 주인이 멀지도 않은 가창골에서 학살되어

가창댐 아름다운 수변공원 아래 수장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는가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땅과 쌀과 밥그릇을 빼앗고

아비와 아들과 딸을 빼앗고

이름과 글과생각을 빼앗고

한용운과 이육사와 윤동주를 빼앗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은 기억하면서

1950년 여름, 한 번에 서른 명씩 하루에 열 번

한 달 동안이나 쓰리코타에 실어간 사람들

해방 후 필요 없어진 무기 재료 코발트 광산을 다시 열어

수직굴이 가득 차도록 집어넣고 탄광을 봉한 후

육십 년이 넘도록 모른 척하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고개를 들고 보라,

먼 곳의 학살만 기억하고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

우리가 만든 2014년을

어느 한 군데 마음 놓고 숨쉴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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