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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퇴색되어 가는 기억

영대신문 국장과 생계형 칼럼니스트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번호는 행정적인 문제로(지금 신분이 석사 학위 받고 2학기에 박사과정 들어가려고 준비하는..그래 백수, 무적자 상태인지라..원고료를 받아야 해서) 익명으로 칼럼이 올라 갔습니다. 혹시 영대 남아 있는 구 시대의 망령 내지 살아있는 이들이 있다면 영대신문 펼쳐서 제일 뒷면에 있으니 열심히 읽으시라..개인적으로 한국의 신우익들에 의해 기억투쟁의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시대의 기억들이 사후적으로 그다지 우리네 삶에 깊게 착근하지 못했고, 대중은 그다지 그런 기억의 착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먹고사니즘, 탈정치화와 같은 것과 관련있다는 이야기도 적고 싶었지만..지면상..요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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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색되어 가는 기억


  지난해 어쩌면 한국 사회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지 모르는 재판 하나가 광주에서 대구지법 서부지청으로 이관되었다. 그 재판장에는 분노한 어머니들과 고개를 파묻고 있는 깡마른, 스무 살 갓 지난 어린 청년이 서있었다. 그 청년은 바로 넷우익의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회원이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재판정의 피고석에 앉게 된 이유는 그가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올린 하나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 사진은 1980년 5월, 부당한 신군부의 쿠데타에 죽음으로 맞선 광주의 민주시민들의 유구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들의 관을 끌어안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그 엄숙한 사진을 가리켜 기다리던 택배를 받은 이의 모습이라 비유했다. 억울하게 죽은 아들을 부여잡는 어머니를 택배 받은 것에 비유한, 감히 글로 옮기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그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실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사회 통념과 도덕에 비춰볼 때 소름끼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추잡한 사진은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폭력성, 저급함, 역사와 정치에 대한 반달리즘의 문제를 일약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그리고 헌법상 자유인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기점이 될지도 모를 이 중요한 재판은 소리 소문 없이 현재 3차 공판을 거쳐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한국 사회는 ‘퇴행적 기억투쟁’을 맞이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권위주의 시기의 기억은 반공과 보수 이데올로기에 준거한 재평가를 맞는다. 식민지 경험에 대한 근대화론에 입각한 재평가 시도, 이승만의 복권을 시도한 건국 논쟁,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 재평가 등 억압적 구체제의 기억을 탈각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어느새 교과서 문제, 4.19혁명이나 5.18광주항쟁과 같은 민주화 이행의 기억에 대한 폄훼에 이르렀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인혁당 사건’을 언급하며 이야기한 ‘두 개의 재판’은 바로 기억투쟁의 현실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점점 한국 사회에서 부당한 권위주의 체제에 의해 가해진 국가 폭력과 고통의 기억은 희석되고 매도되어갔다. 굳이 이런 굵직굵직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기억투쟁의 현상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지난 2013년 6월, 대구교대에서 대구 5.18 관련 단체들이 주최한 강연회가 석연치 않은 외부 압력에 의해 행사 직전에 취소되었으며, 본교 종합강의동 앞 과거 영남대 출신 인혁당 피해자와 민주화 운동 시기 희생된 동문들을 기리던 작은 비목은 언젠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이는 한국사회에 기억과 증언을 둘러싼 크고 작은 균열과 파열들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런 경향이 한 개인의 부도덕, 윤리 혹은 역사의식의 부재, 책임성의 결여와 같은 수준으로 환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은 기억을 퇴색시키는 외부의 요인에 기인한다. 그것의 한 축은 친일, 권위주의, 독재, 폭력과 학살의 경험으로 지배의 토대가 취약한 보수세력의 기억투쟁이다. 그리고 다른 한 축은 바로 신자유주의 이후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고통과 억압, 피해의 기억 보단 성공, 승리, 영광의 기억을 갈구하는 대중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기억투쟁이 커져가는 것은 이 두 축이 조응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대중은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대중이 기억투쟁을 키운 당사자이면서도 기억투쟁의 대상인 고통, 억압, 폭력, 학살의 당사자들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


  사실 억압과 폭력, 가해의 기억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다. 재일교포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이야기했듯 많은 이들은 사실이 무언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학살과 폭력, 억압의 주체들에 대한 책임에 비해 대중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구태여 먼 사례를 따지지 않더라도 일상 곳곳에 ‘악의 평범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전 시대를 겪은 많은 이들에서 친일, 권위주의, 학살에 관한 암묵적 방관, 부작위를 정당화하는 자기 변호의 논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민 대중만큼 중요한 기억의 당사자는 없다. 많은 경우 그들은 가해자에 대한 암묵적 방관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증인이다. 기억을 지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다. 나와 다르지 않은 누군가의 고통과 억압을 외면하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연대다. 그리고 공적 기억을 보전하고, 끊임없이 그 기억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최소한 시민이 져야할 책임이다.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억 투쟁의 현실에서 대중의 시민성, 시민적 책임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시민이 스스로 과거 자신들의 부작위와 암묵적 방관에 책임을 느낄 때 자신들의 취약한 지배의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해 시작된 이 퇴행적 경향을 멈춰 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