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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낭비

노란봉투와 노란봉투 사이

노란봉투와 노란봉투 사이

 

이시훈




 

 

늦은 밤 집에 돌아 와보니

야윈 아내 거치른 손으로

편지가 왔노라고 내미는 노란봉투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지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러

조심히 뜯어 본 노란봉투

 

<귀하는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창백한 형광등 불빛

눈물이 흘러 가슴에 흘러

주먹이 불끈 떨리네

세상아 이 썩어빠진 세상아

맘 놓고 일할 권리마저 없는

세상아 이 미쳐버린 세상아

뒤집어 엎을 세상아

병들어 누워계신 어머니

무슨 일이냐 물어 오시네

한구석 겁에 질린 딸아이

얼굴이 샛노래 지네

 

백자 곡, <노란봉투>

 

 

  근래 SNS에선 4만 7천원이라는 제법 구체적인 돈 단위를 자주 볼 수 있다. 4만 7천원, 셔츠나 청바지를 괜찮은 옷 가게에서 한두 장 사서 입거나, 근사한 식당에서 좋은 밥 한 끼 하고도 남을 것 같은 이 금액의 뒤엔 항상 노란봉투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노란봉투, 그것은 바로 쌍용자동차의 매각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사측과 경찰이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가한 손해배상 가압류 47억원과 그에 관한 시사IN 기사에서 시작한 모금운동을 의미한다.

  1970년대 미국 주도의 세게 경제 체제가 재편되었다. 이른바 브래튼우즈 체제로 불리던 전후의 세계경제 질서는 1971년 이후 급격한 해체와 재편을 맞이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대두였다. 한국전쟁 이후 지루하게 이어진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국가 주도의 발전국가의 길을 걸으며 제법 온전한 경제발전을 경험한 한국이었지만, 세계화라는 수사로 포장된 이 새로운 변화 앞에선 한국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1990년대에 들어 급격히 들어온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1997년 겨울 이른바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충격파를 통해 극적으로 그 면모를 드러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새로운 한국 경제 체제의 본질은 바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시장중심의 경제 구조, 금융자본의 자립화, 공공부문의 축소에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오랜 경제 성장 과정에서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위기와 충격 앞에서 다시 희생을 강요받았다. 전통적인 의미의 평생직장은 사라졌으며, 거리엔 실업자와 구직자, 파산자들이 가득했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라는 이전 시기 낯선 단어들이 언론의 주요한 면에 가득했다. 민중가요 부르는 백자의 노래 <노란봉투>에서 보이는 해고를 통지받은 노동자의 찰나는 나와 다르지 않은 이들의 일상 곳곳을 스쳐갔다.

  이런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문제가 바로 연대의 상실이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이 항상 예비 된 시대를 사는 이들이 겪은 생존의 위기, 실존의 위기 앞에서 우린 점점 연대성을 상실해갔다. 삶의 방법은 연대와 협력에서 각자도생으로, 경쟁으로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너의 고통은 더 이상 연대하고 함께 나눠져야 할 고통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서로의 고통에 무뎌져 갔다. 그 연대성과 상실과 고통에 대한 무뎌짐이 무서웠던 것은 어느 개인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에 가득 찬 공기마냥 우리 사회, 우리 일상에 그것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는 본질적으로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너와 나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부단한 인정과 이해, 투쟁, 고민과 독해를 요구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 하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그 타자성과 연대성을 위한 고려를 지극히 귀찮고 번거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우린 그렇게 너의 고통을 외면하는 법에 익숙해졌고, 그것의 편안함에 눈 뜨게 되었다. 철거와 폭력에 맞서 권리금이라도 지키려다 뜨거운 화마에 휩싸인 용산의 평범한 작은 식당의 사장님도, 최루액을 맞아가며 일할 권리를 위해 싸우던 노동자들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 어느 이름모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삶의 터전을 위해 싸운 강정과 밀양, 청도의 할매들에게도 우린 그렇게 무뎌져갔다.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던 그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해고를, 강제철거를, 파산을, 가압류를 알리는 노란봉투를 맞이했던가...

 

노란봉투와 4만 7천원, 학생들에겐 큰 부담이 될지 모르지만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소상공인이라면 술값 한번 아낀 돈일 것이다. 그리고 그 4만 7천원들이, 그리고 학생들의 4,700원들이 모여 쌍용차 손해가압류와 싸우고 있다. 이것은 우리 생각하는 그간의 운동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운동이다. 그간 우리에게 운동은 적대가 존재하며, 타격의 대상이 존재하는 운동이었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투쟁이 있었고, 그것은 늘 뭔가 어렵고 아픈 것이었다. 그리고 노란봉투는 이른바 ‘힐링’과도 다른 정서를 지닌다. 비록 그 자체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힐링’과 노란봉투는 일견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낙오할 위기에 처한 청년들에게, 고통의 일상화 속에 아픈 대중에게 막연한 인내와 단말마적인 고통의 완화를 제시하는 ‘힐링’과 노란봉투는 그 본질이 다르다. ‘힐링’에 타자에 대한 연대가 존재하는가? ‘힐링’에서 고통은 온전히 나의 것인데, 과연 고통에 타자가 들어올 공간이 존재하는가? 도리어 ‘힐링’은 그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구조의 모순을 은폐하고 그 고통을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환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란봉투와 4만 7천원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바로 연대성의 회복이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하는 작은 과정이며, 비록 노란봉투에는 적대와 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 했듯 구조의 문제를 해결 할 힘도 없다. 하지만 노란봉투와 4만 7천원에는 구조와 체제에 대한 저항을 위해 필요한 연대의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너에 대한 인식과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연대의 힘이야 말로 권력, 돈, 물리력과 같은 물적 토대를 갖지 못한채 고통 받는 이들이 실존을 온전히 지킬수 있는 힘이다.







서울에서 문화운동 하는 후배들의 웹진인 뮤니에 글을 실어달라해서 뚝딱하고 하나 써서 보냈다. 그게 어제 올라왔기에 트랙백으로 여기에도 하나 올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