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두 번째 이야기-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영남대에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분들과 안녕하다는 분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쭙습니다. ‘여러분, 안녕들 하신가요?’

‘안녕’이라는 물음은 지난한 일상에 찌든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고액 등록금은 물론이고 토익성적, 취업스펙 경쟁에 우린 언제나 순응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당연히 여기며 우리는 추운 겨울 자취방에 보일러 하나 마음대로 틀지 못하면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삼각김밥과 컵라면에 의지하면서도 우린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경쟁 속에서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친구, 동료들과의 단란한 맥주 한잔의 여유조차 포기하며 그 경쟁을 넘어 사회로 나아갔을 때 우리의 아픔은 과연 해결될까요? 얼마나 더 경쟁에 순응해야 우린 행복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연봉이, 수입이, 차 값이, 집 평수가 얼마나 되어야 우린 도대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학자금 대출 부채, 하우스 푸어, 취업경쟁 속에서 우린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마저 유보해야 하는 삶이 아니던가요? 세상은 우리의 고통을 우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더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 우리의 무능, 우리의 게으름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요?

돌아보면 우린 행복한 삶을 위해 그 경쟁을 마다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에게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살 것을 강요합니다. 그야말로 목적과 수단의 전치가 지금 우리의 삶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계속 달려가더라도 ‘안녕’할 수 있을까요?

철도와 의료 부문의 공공성 훼손 문제에서 시작하여 전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통해 우리의 아픔을 외칩니다. 그리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은 과연 당연한것인가?”

저희는 이 순응과 경쟁, 외면과 소외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너 우리의 아픔과 고통은 이제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태초부터 존재했던 당연한 아픔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뒤틀린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결과입니다. 전국에서 여러 대자보를 훼손하는 극우 청년들 역시 그들의 삶의 아픔과 좌절 앞에 일베와 같은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던가요? 저흰 그들의 행동 역시 우리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반영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묻고 싶습니다. 이 고통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몸부림으로 이 고통의 고리를 끊고 참된 삶을 살 수 있을지 절실하게 학우 여러분과 고민하고 싶습니다.

이 대자보는 선동이 아닙니다. 감성팔이도 아닙니다. 저항하라고 강요하지도, 따르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 대자보는 우리의 아픔을 담고 있는 노래이며, 아픈 우리의 현실과 그것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 체제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공적 담론의 장을 찾고자 하는 모색입니다. 우린 성별도, 삶도, 가정의 환경도, 생각도 모두 다른 주체들입니다. 하지만 우린 다르지 않은 고통에 직면해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나의 문제인지 주변의 문제인기가 다를뿐입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기본인 관용과 차이에 대한 인정의 자세로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다른 학우 여러분의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린 이 아픔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찾고 싶습니다.

 

학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하시다면 응답해주세요,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참 된 ‘너‧나‧우리’를 꿈꾸는 대구경북 지식-만남 공동체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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